본 연구는 조선시대 공신초상의 복식을 통해 관복제도를 연구한 것이다. 관복차림의 공신초상을 대상으로, 초상에 나타나는 관복 특징에 따라 제1기에서 제5기까지 구분하였다. 각 단계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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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 안동대학교 한국문화산업전문대학원, 2021
학위논문(박사) -- 안동대학교 한국문화산업전문대학원 , 융합콘텐츠학과 융합콘텐츠학 , 2021. 2
2021
한국어
경상북도
420 ; 26 cm
지도교수: 이은주
I804:47015-200000366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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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조선시대 공신초상의 복식을 통해 관복제도를 연구한 것이다. 관복차림의 공신초상을 대상으로, 초상에 나타나는 관복 특징에 따라 제1기에서 제5기까지 구분하였다. 각 단계에 해당하는 공신의 전신 초상을 대상으로 관복 구성품별 특성을 고찰하고 그에 근거하여 조선시대 공신초상 관복제도의 변천과정을 문헌연구와 실증자료 분석을 통하여 살펴보았다.
제1기는 공신초상의 관복이 잡색 단령과 하향뿔의 사모로 표현되는 시기이다. 개국(1392), 정사(1398), 좌명(1401), 정난(1453), 좌익(1455), 익대(1468), 좌리공신(1471)을 포함하여 공신초상 6점의 조형적 특성을 고찰하였다.
조선초 삼공신의 완만하고 낮은 사모는 세종 말 높아지기 시작하여 정난공신 이후 좌리공신 초상의 사모는 높이가 거의 두배가 되었다. 삼공신의 좁고 짧은 사모뿔은 단종대 이후 두배 가량 길어졌으며, 하향의 사모뿔은 좌리공신 초상에서는 거의 수평으로 변하였다. 제1기 공신초상의 사모뿔에서 무늬는 표현되지 않았다.
단령은 예복 흑단령 제도가 시작되기 전 제도로서, 잡색 단령으로 표현되었으며 공신초상에서는 주로 옅은 색 단령이 확인되었다. 단령 겉감에 무늬는 표현되지 않았으며, ‘안주름무’양식이 확인되었다. 조선초기 단령 받침옷 색상에 대한 규정은 정해지지 않았으나, 정난공신(1453, 단종 1년) 이후로는 청색 답호와 홍색 철릭으로 표현되는 경향을 보였다. 단령과 답호의 안감은 주로 홍색이며, 단령 겉감과 답호에 무늬는 표현되지 않았다. 공신의 품계는 품대로 표현하였으며, 신발은 3품 이상이 상복(常服)에 착용하는 협금화(挾金靴)임을 알 수 있었다. 조선 초 삼공신 초상에서는 흑화를, 정난(1453)⋅좌리공신(1471) 초상에서는 백화를 확인하였다.
제2기는 공신초상의 관복으로 아청색 흑단령이 등장하여 정착하는 시기이다. 성종 7년(1476)에 제작된 적개공신(1467) 초상을 비롯하여 정국(1506), 정난(1507), 위사공신(1545) 초상 등 7점을 분석하였다.
성종 7년에 그려진 적개공신의 관복은 아청색 흑단령의 구체적인 명칭이 정해지기 이전의 ‘예복 아청색 흑단령’이다. 사모의 모자는 다시 낮아지고 모정 부분은 좁아졌으며 앞으로 휘어진 형태를 하였다. 타원형의 사모뿔을 비롯하여 아청색 단령 겉감과 홍색 안감에 무늬는 표현되지 않았다. 녹색 답호와 홍색 철릭을 단령 받침옷으로 하였으며, 단령과 답호의 ‘안팎주름무’를 확인하였다. 흉배는 직금흉배이며 공신의 흉배와 품대는 공신초상 제작 시기의 품계로 표현되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신발은 협금백화를 확인하였다.
정국공신(1506)의 관복은 아청색 흑단령의 명칭이 정해진 ‘시복 아청색 흑단령’이다. 사모는 모정 부분이 좀 더 좁고 앞으로 더 휘어진 형태였다. 사모는 타원형의 사모뿔에 무늬는 표현되지 않았으며 당상관의 단령 겉감에는 운문이 표현되기 시작하였다. 당하관의 단령 겉감에는 무늬가 표현되지 않아 단령 겉감의 무늬 유무에 의해 당상⋅당하의 구분이 되기 시작하였음을 알 수 있었다. 단령 받침옷으로 당상관은 홍색 답호에 녹색 철릭을, 당하관은 녹색 답호에 남색 철릭이 확인되어 신분에 따라 관행적으로 착용한 받침옷의 색상이 다른 것을 알 수 있었다. 홑단령에 단령과 답호의 무로 ‘안팎주름무’를 확인하였다. 흉배는 직금흉배로, 공신의 흉배와 품대는 공신 책록시 품계로 나타내었다. 신발은 솔기선을 금색으로 장식한 협금흑화였다.
제3기는 공신초상의 관복으로 ‘시복 아청색 흑단령’이 정착되고 당상관 사모뿔에 운보문이 나타나기 시작하는 시기이다. 임란 이전의 광국⋅평난(1590), 임란 이후의 호성⋅선무⋅청난공신(1604)으로 구분하여 공신초상 20점을 분석하였다(임란 이전 2점, 임란 이후 18점).
임란 이전 공신초상의 사모는 모체가 다시 높아지고 당상관의 사모뿔에 운보문이 표현되기 시작하였다. 운문 아청색 흑단령과 홍색 답호에는‘밖주름무’가 확인되었으며, 녹색 철릭, 협금흑화를 착용하였다.
임란 이후 공신초상의 사모 높이는 다시 낮아지고 모정 부분은 각진 형태로 변하였다. 사모뿔은 짧고 넓은 형태로 당상관의 사모뿔에서 운보문이 표현되었다. 운문 아청색 흑단령에는 ‘뒤뻗침무’가 표현되었다. 단령 받침옷으로 홍색, 녹색, 남색 답호에 녹색, 유청색, 남색, 홍색 철릭이 확인되었다. 흑단령의 흉배는 문관은 공작, 운안, 백한을, 무관은 호랑이를 자수흉배로 표현하였고, 종2품의 품대로 학정금대가 등장하였으며, 정탁 초상에서만 협금흑화가 확인되었다.
제4기는 1610년을 기점으로 흑단령의 명칭이 상복(常服)으로 변경되어 공신초상의 관복이‘상복 아청색 흑단령’으로 표현되는 시기이다. 광해군대 위성⋅익사⋅정운⋅형난공신(1613)과 인조대 정사(1623), 진무(1624), 소무(1627), 영사(1628), 영국공신(1644)을 포함하였으며, 공신초상은 광해군대 공신초상 18점, 인조대 공신초상 21점을 분석하였다.
사모 모체는 약간 낮아지고, 사모뿔은 길고 넓어진 형태로 바뀌었다. 당상관의 사모뿔에는 운보문이 표현되었으나 당하관의 사모뿔에는 무늬가 없었다. ‘상복 아청색 흑단령’에서는 뒤뻗침무를 확인하였다. 당상관의 단령 겉감에는 운문이 표현되고 당하관의 단령 겉감에는 문양이 표현되어 있지 않아 단령 겉감의 문양 유무에 의해 신분이 구별되었다.
광해군대 공신초상과 인조대 공신초상에서는 단령 옆선 처리방식과 단령 받침옷에서 차이가 확인되었다. 광해군대 공신초상에서는 단령 오른쪽 옆선 트임에 홍색 답호와 녹색 철릭, 녹색 답호와 남색 철릭, 남색 답호와 녹색 철릭을 단령 받침옷으로 하였다. 홍색 답호 차림은 광해군 5년 공신 책록시 그려진 것으로 보았으며, 녹색 답호 차림은 광해군 11년(1619) 이후 이모 혹은 보수된 것으로 추정되었다. 남색 답호차림은 인조 6년(1628) 이후 이모하였을 것으로 추정하였다.
인조대 공신초상 중 정사⋅진무공신은 좌우 옆선 트임에 녹색 가문라를 안감으로 하는 겹단령 아래 남색 철릭 또는 대창의를 받쳐 입은 모습으로 표현하고, 영사공신 이후는 좌우 옆선 트임에 녹색 또는 남색 가문라를 안감으로 하는 겹단령 아래 대창의를 받쳐 입은 모습으로 표현하는 것이 적절할 것으로 보았다. 단령 오른쪽 옆선 트임에 녹색 가문라와 남색 철릭으로 묘사된 정사⋅진무공신 초상은 이모과정의 결과로 추정하였다.
문관흉배는 관찬서의 흉배제도와 실제 사용된 흉배가 일치하였으나 무관흉배는 1⋅2품의 사자와 해치흉배, 3품의 호흉배가 확인되어 관찬서에 기록된 규정과 다름을 확인하였다. 공신의 품대는 조선초기 품대제도와 다르지 않았으며, 흑화의 협금 휘 장식은 확인할 수 없었다.
제5기는 공신초상의 관복 색상이 유록색으로 표현되고 당상관의 사모뿔에 무아레 무늬가 표현되는 시기이다. 보사(1680)에서 분무(1728)까지 포함하여 공신초상 7점을 분석하였다. ≪훈부화상첩≫의 초상 또한 활용하였다.
사모 모체는 다시 높아지고 사모뿔은 길고 넓은 형태로 바뀌었다. 사모뿔에서는 무아레 무늬가 나타나고 유록색의 단령 겉감에서는 운보문이 표현되기 시작하였다. 단령의 무 양식으로는‘뒤젖힘무’를 확인하였는데, 뒤로 젖힌 무를 앞무 혹은 뒷무에 달린 매듭단추를 이용하여 단령의 뒷길에 고정하였을 것으로 보았다. 단령 좌우 옆트인 무부분을 통하여 단령 안감인 남색 가문라와 가문라 밑에 받쳐 입은 대창의를 확인하였다.
문관 1⋅2품의 흉배로 운학흉배가 사용되었으며, 무관 당상관의 흉배로 사자흉배와 호흉배가 사용되었다. 제4기와는 다른 문관⋅무관 흉배제도가 확인되었다. 공신들의 흑화에서는 더 이상 휘장식은 확인되지 않았으며 대신 신발 밑창을 누빈 납창화(衲昌靴)가 확인되었다.
본 연구의 결과는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인물의 표준영정 제작시 복식부분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자료가 될 것이다. 공신초상의 제작 시기 및 고증뿐만 아니라 일반 사대부 관복본 고증의 기초자료로도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조선시대 흑단령 관복제도를 구체적으로 밝힐 수 있는 복식사 분야의 기초자료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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