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새(國璽)는 국가의 상징이자 국권을 대표한다. 국가 간의 외교를 포함한 모든 국정 행위는 문서로 그 결과를 남기는데, 이 문서에 국새를 날인함으로써 문서가 완성되었다. 대한제국의 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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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 전북대학교 일반대학원, 2016
학위논문(석사) -- 전북대학교 일반대학원 , 사학(한국사) , 2016. 2
2016
한국어
전북특별자치도
ⅵ, 50 p. : 삽도 ; 27 cm
전북대학교 논문은 저작권에 의해 보호받습니다.
지도교수: 하우봉
참고문헌 : p.4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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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새(國璽)는 국가의 상징이자 국권을 대표한다. 국가 간의 외교를 포함한 모든 국정 행위는 문서로 그 결과를 남기는데, 이 문서에 국새를 날인함으로써 문서가 완성되었다. 대한제국의 국새는 “대한제국의 황제가 국정 문서에 사용한 인장”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목적을 위해 〈대한국새(大韓國璽)〉, 〈황제지새(皇帝之璽)〉, 〈황제지보(皇帝之寶〉 3과(顆), 〈제고지보(制誥之寶)〉, 〈칙명지보(勅命之寶)〉 2과 그리고 〈대원수보(大元帥寶)〉가 만들어졌다.
1897년 10월 12일 고종은 환구단(圜丘壇)에서 제사를 올리고 대한제국의 황제로 즉위하였다. 『대례의궤(大禮儀軌)』는 황제 즉위를 위한 논의과정부터 의례의 세세한 진행 내용을 기록한 결과물이다. 의궤를 살펴보면 대례를 주관하고 의궤를 작성한 곳은 ‘보책조성소(寶冊造成所)’였는데, 이는 의례에서 국새의 제작이 매우 중요하였음을 말해준다. 대한제국의 국새는 조선시대와 다르게 인면(印面)을 새겼고, 용뉴(龍鈕)로 모양에도 변화가 생겼다. 이는 대한제국 황제의 국제적 위상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대한제국의 국새는 대한제국의 모든 국정 행위를 증명하였다. 국새를 위한 제도는 1894년에 공문식(公文式)을 마련하여 준비되었다. 그러나 이때에는 제도상의 규정과 실제 사용한 국새에 차이가 있었으며, 1897년에 대한제국의 국새가 제작된 이후 이러한 규정은 완성될 수 있었다. 다만 국새와 관련된 제도가 완비되지 못한 채 대한제국이 몰락하여 1894년의 개혁 이후에 반포된 여러 규정들과 『보인부신총수(寶印符信總數)』, 『이조새보인압부신제(李朝璽寶印押符信制)』와 같은 기록을 통해 그 실체를 파악할 수 있다.
1897년부터 1910년 사이에 생산된 고문서들은 짧은 기간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문서가 남아 있다. 다른 나라와의 조약문서, 외교관에 대한 신임장 등에서부터 각종 법률과 황제의 명령인 칙령(勅令)에 국새가 찍혔고, 이러한 문서들이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등에 보존되어 있다. 개인에게 발급되었던 임명장 가운데 〈제고지보〉를 찍은 칙임관 관고와 〈칙명지보〉를 찍은 주임관 관고 그리고 〈대원수보〉를 찍은 무관(武官) 관고가 다수 남아 있다. 그런데 이 문서 가운데에는 당시에 위조한 것들이 다수 전해지는데, 국새 또한 위조해서 찍었다. 이들 문서의 진위를 판별하는 중요한 방법 가운데 하나가 국새의 날인 상태를 살피는 것으로, 국새의 원본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다.
대한제국은 1910년 8월 29일 일본에 의해 강제로 병합되어 짧은 역사를 마쳐야 했다. 국새도 대한제국의 운명과 같은 길을 걸어야했다. 강제 병합 이후 대한제국의 국새 6과는 조선총독부를 거쳐 일본으로 보내졌다. 대한제국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상징적인 행위였다. 이후 1946년 해방 1주년 기념식에서 일본으로 갔던 국새는 모두 우리나라에 반환되었다. 대한제국의 국새는 처음 만들어질 때부터 대한제국을 상징하는 존재였다. 대한제국이 강제 병합되자 국새도 일본에 빼앗기게 되었으며, 국권을 회복한 후에 그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것이 국새를 반환하는 의식이었다. 대한제국 국새는 이후에도 여러 사건을 겪었다. 1949년 전시회를 통해 일반에 공개되었던 국새 가운데 일부는 전쟁을 거치면서 행방을 알 수 없게 되었다.
현재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전주박물관에 보존되어 있는 국새는 〈제고지보〉, 〈칙명지보〉 가운데 작은 것, 〈대원수보〉이다. 한편 옥으로 만든 〈황제지보〉는 미국에서 돌아와 국립고궁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실물을 확인할 수 있는 대한제국의 국새를 검토하여 당시의 도량형에 대해서도 파악할 수 있다. 국새를 제작할 때 사용하였던 예기척은 흔히 1치[寸]를 2.86cm로 추정하여 왔다. 그러나 4과의 현존하는 대한제국 국새를 모두 직접 측정해본 결과 1촌의 값이 2.67~2.80cm였다. 우리나라 도량형 변천에 대한 연구에서 기준이 되는 역사적 유물들의 분석과 정리는 절대적으로 필요한 작업이다.
일본에서 돌아온 국새 가운데 대한제국의 실질적인 상징이었던 〈대한국새〉는 현재 행방을 알 수 없다. 〈대한국새〉의 실물이 하루 빨리 확인되어 대한제국 국새의 연구도 더욱 세밀해지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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