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구는 제5공화국(1981년 3월 3일 ~ 1988년 2월 24일) 시기 출판통제정책의 유형과 사례들을 분석하고, 이를 통해 출판통제정책이 담고 있는 지배이데올로기와 이에 저항했던 청년지식인들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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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 성공회대학교 문화대학원, 2014
학위논문(석사) -- 성공회대학교 문화대학원 , 문화예술경영학과 , 2014. 8
2014
한국어
700 판사항(21)
서울
vii, 158 p. : 도표 ; 26 cm
지도교수: 김창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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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제5공화국(1981년 3월 3일 ~ 1988년 2월 24일) 시기 출판통제정책의 유형과 사례들을 분석하고, 이를 통해 출판통제정책이 담고 있는 지배이데올로기와 이에 저항했던 청년지식인들의 출판문화운동 양상과 이 운동이 지니고 있는 문화적 의미와 성격을 규명하고자 한다.
제5공화국이 출범하고 유지되었던 1980년대는 정치사적으로 볼 때 30여 년에 걸친 군부정권 시대의 후반기에 해당한다. 1961년 5·16 군사쿠데타로 집권한 이후 1979년 10·26 사건으로 권좌에서 물러날 때까지 대통령 박정희는 18년간 대한민국을 통치해왔다. 박정희 정권은 반공주의와 경제성장우선주의를 지배이데올로기로 내세워 ‘한국적 민주주의’란 미명 아래 권위주의 독재체제를 이끌어왔다. 이 시기를 군부정권의 전반기에 해당한다고 본다면, 1979년 12·12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한 전두환 정권 시대와 1987년 그의 후속세력이라고 할 수 있는 노태우 정권 시대는 군부정권의 후반기라고 할 수 있다.
박정희 정권 시기 경제성장의 이면에는 노동자·농민의 희생과 민주주의와 인권이 억압당하는 상황이 존재했다. 박정희 정권은 분단 상황을 앞세워 반공이데올로기를 더욱 강화하는 한편, 긴급조치 등으로 유신독재체제를 계속 유지해 나가려다가 YH 사건과 부마항쟁 등 민주주의와 인권을 갈구하는 민중의 저항에 부딪혔다. 유신체제에 대한 위기의식이 높아지는 가운데 결국 권력 내부자의 총에 맞아 죽는 10·26 사건이 발생했다. 10·26 사건은 유신체제의 위기를 고조시켰던 민중의 저항이 없었다면 발생하기 어려웠지만, 이 사건이 없었다면 제5공화국 역시 존재할 수 없었다.
권위적인 유신체제의 정점이었던 박정희의 후원과 비호 속에서 군내의 요직을 두루 차지하고, 정보를 장악할 수 있었던 신군부 세력은 ‘80년 서울의 봄’을 통해 분출되었던 민주화 열기를 진압하고 정권을 이어가기 위해 5월 광주의 희생을 요구했다. 5공 정권은 광주항쟁의 유혈 진압이라는 엄청난 대가를 치르고서야 성립될 수 있었다. 이것은 시민사회에 대한 국가의 일방적인 힘의 우위에 의한 통치의 마지막 단계였다. 5공 정권은 출범부터 정치적 정당성이 없었기 때문에 이를 보완하는 수단으로 처음 출범부터 마지막 순간까지 국가 강권력(hard power)에 의지하지 않고서는 정권을 유지할 수 없었다. 군부정권 후반기에 이르러 강권적 통제만으로 더는 정권의 안정을 보장할 수 없게 되자 5공 정권은 강권적 통제를 위장하기 위해 다양한 수단과 방법(soft power)을 취하게 되었다. 억압적 국가장치(RSA)에 의한 직접적인 폭력과 더불어 국가의 막강한 홍보기관, 거대언론기업의 대중매체, 지배권력 블록의 사설연구기구, 대학의 연구기관 등과 같은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ISA)들을 총동원해 진보적 이념의 확산을 저지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한편, 개혁 없는 체제 안정에 기여하는 보수이념을 전파·홍보하는 이데올로기 투쟁, 또는 문화투쟁(Kulturkampf)을 전개했다.
5공화국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문화정책을 국가의 주요 정책으로 입안하는 등 문화·예술 전반에 관심을 보인 정권이었다. 이 시기는 유신체제 이래 지속해 온 경제성장으로 삶의 질 향상과 문화 복지에 대한 대중의 욕구가 성장한 시기였다. 5공 정권은 정치·경제 분야의 억압적 통치체제와는 달리 문화 분야에서는 과거의 규제와 통제 지향에서 지원과 조장 위주로의 정책적 변화가 점차 가시화되기 시작한 시기였다. 이에 따라 문화의 자율적 기능이 높아지고 다양한 형태와 내용의 예술 활동이 일정 한도 내에서 보장되었다. 5공 기간 중 정치·경제·사회적으로는 사용할 수 없었던 ‘민주주의’라는 용어가 유독 문화 분야에서는 ‘문화적 민주주의’ 또는 ‘문화 민주화’와 같은 방식으로 즐겨 사용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문화의 상징성과 효용성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숨은 의도가 있었다.
광주항쟁을 국가폭력으로 억압하는 등 정통성이 부족한 상황에서 집권하였기 때문에 5공 정권은 문화정책을 지배체제의 이데올로기를 강화하려는 수단으로 활용했다. 그러나 1970년 전태일 열사의 죽음과 1980년 광주항쟁 등의 영향으로 대학의 청년지식인들을 중심으로 시작된 친미·반공 이데올로기에 대한 저항과 지배질서에 대한 본질적 회의가 출판문화운동을 통해 널리 퍼져 나가기 시작했고, 5공 정권은 출판문화운동에 대해 사상 유례가 없는 통제정책을 펼쳤다. 5공 정권은 반공법을 국가보안법으로 통합하고, 비민주적이며 권위주의적인 정권에 저항하는 언론을 탄압하여 대규모 언론해직자를 양산하는 언론기본법 등을 제정하였다. 그 과정에서 이에 저항하는 청년세대 지식인들은 정부의 억압에 저항하는 수단으로 출판문화운동을 펼치며 저항이데올로기로서의 민주화 담론을 널리 유포하였다. 제5공화국 정부는 이에 대한 억압수단으로 국가보안법, 출판법, 등록허가제 시행과 등록 취소, 납본제도를 이용한 사전 검열 등을 실시하였고, 출판사에 대한 불법적인 압수수색과 도서압수를 비롯해 출판인 구속을 자행하였다.
이러한 연구를 통해 당시 출판문화운동이 지니고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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