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구는 1970년대 농촌 새마을운동의 지배메커니즘의 핵심을 ‘자조(自助:self-help)’와 ‘동의(同意:agreement)’라고 보았다. 박정희가 주장하는 ‘자조’라는 부분이 어떻게 농민들에게 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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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1970년대 농촌 새마을운동의 지배메커니즘의 핵심을 ‘자조(自助:self-help)’와 ‘동의(同意:agreement)’라고 보았다. 박정희가 주장하는 ‘자조’라는 부분이 어떻게 농민들에게 투...
본 연구는 1970년대 농촌 새마을운동의 지배메커니즘의 핵심을 ‘자조(自助:self-help)’와 ‘동의(同意:agreement)’라고 보았다. 박정희가 주장하는 ‘자조’라는 부분이 어떻게 농민들에게 투영되었고, 어떤 ‘동의’의 과정을 거쳐 ‘동원’에 이르게 되었는지를 전남 화순군 도장면 도암마을 자료를 분석해 살펴 볼 것이다.
박정희는 당시 농촌의 낙후문제를 국가정책의 실패가 아닌 농민들의 ‘자조’정신의 결여에서 원인을 찾고 그 책임을 농민들에게 전가시켰다. 새마을운동에서 강조된 ‘자조’는 농민들의 적극적인 의견이나 요구 제기가 아닌 정부정책의 목표달성을 위해 필요한 동원기제였다. 이를 위한 실천적 방안으로 마을마다 새마을건설단을 조직하여 마을단위로 사업을 진행하는 방식을 채택한 것이다. 주민 개개인의 이해와 마을의 이해가 동일시되는 농민들에게 동원은 선택이 아니라 의무사항이었다.
1970년대 한국의 농민들은 국가가 만들어 놓은 새마을운동이라는 특정한 양식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국가가 요구하는 자력갱생의 농민으로 동원되어야만 국가의 일원으로 인정받을 수 있었다. 이를 이용하여 박정희는 농촌 새마을운동의 과정에서 반드시 필요한 농민의 헌신과 희생을 일방적으로 ‘자조’라는 이름으로 포장하여 동원의 정당성을 부여했다.
강력한 중앙집권적 행정조직에 의하여 수직적으로 구성된 새마을 운동 조직체계로 인해 1970년대 새마을운동은 신속하고 체계적으로 진행되었다. 실제 도장마을에서는 농민 동원의 가장 핵심 인적자원인 마을이장은 국가로부터 준공무원으로서의 위상을 부여받았다. 각종 국가정책을 실시하는 행정의 최말단 집행자로 임무를 부여받고 마을을 통제하고 주민들을 동원하였다.
또한 마을별로 담당 공무원에 의해 세세한 부분까지 직접 관리된 사업진행 방식에 강압적이고 관료주의적인 성격이 더욱 강화되고 전시행정적인 측면이 강해지면서 농민들도 불만을 토로하는 등 많은 부작용이 발생하였다. 공무원이라는 행정조직이 사업을 직접 지도 관리하여 시행된 새마을운동은 분명 초기에는 강력한 추진력이 발휘되었다. 하지만 결정→시행→보고라는 일방적인 명령과 지시의 절차를 갖고 있는 행정조직의 성격상 마을의 특수성과 다양성은 무시된 채 관(官)주도로 획일적이고 강제적으로 사업이 진행되기도 하였다.
공무원을 중심으로 한 강력한 행정력에 의한 ‘위로부터의 조직’에 직‧간접적으로 편입되어 동원된 농민들에게 종자선택에서 구입까지 모든 것이 일괄적으로 시행되는 상황에서 농민에게 선택권은 없었고, 모든 사업을 이장을 비롯하여 담당 공무원들이 관리하는 이러한 구조 속에서 이루어진 농민의 동원은 국가라는 체제 안에서 강력한 행정력 의해서 어쩔 수 없이 반드시 해내야 하는 것이 근대화의 기수로서 1970년대를 살아가야하는 농민의 역할로 설명된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는 박정희에 의해 주도된 1970년대 농촌 새마을운동에서 농민은 국가에 의해 강요된 죄의식인 ‘자조’를 기반으로 하여 위로부터의 조직에 의해 관리되어 체제가 요구하는 동의와 합의 속에서 형식적인 자발성과 능동성으로 동참해야 했다. 또한 지배질서의 강력한 힘에 의해 조직화된 승인으로서의 동의를 바탕으로 한 농민의 동원을, 체제 안에서 살아가야하는 1970년대 농촌 농민의 동의에 대한 명확한 기준도 없이 이를 단순히 자발적 동원이라는 말로 설명하기에는 역부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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