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논문은 한국전쟁영화의 사회적 의미들을 포착해 보려고 한다. 전쟁영화는 전쟁을 지휘하는 ‘총사령관’이라 할 수 있는 국가(특히 정치지도자)의 모습이 전면화 된다는 점에서 국가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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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한국전쟁영화의 사회적 의미들을 포착해 보려고 한다. 전쟁영화는 전쟁을 지휘하는 ‘총사령관’이라 할 수 있는 국가(특히 정치지도자)의 모습이 전면화 된다는 점에서 국가적 ...
이 논문은 한국전쟁영화의 사회적 의미들을 포착해 보려고 한다. 전쟁영화는 전쟁을 지휘하는 ‘총사령관’이라 할 수 있는 국가(특히 정치지도자)의 모습이 전면화 된다는 점에서 국가적 기획을 드러낼 수 있는 시청각 수단이다. 동시에 관객들에게 전쟁영화는 ‘최첨단 살상기계’들이 제공하는 볼거리를 즐기는 대중오락의 하나다. 따라서 전쟁의 영화적 재현/표상(representation)을 분석하면 전쟁영화를 둘러싸고 존재하는 주체들인 국가-영화계-관객이 추구하는 것이 무엇이며, 이들 사이에 어떤 상호관계가 존재하는지 파악할 수 있다. 이와 같은 관심사를 발전시킴으로써 이 논문은 다음과 같은 사항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첫째, 초기 발전과정에서부터 한국전쟁영화의 인적·물적 토대는 과거 일본의 식민지와 미군정이라는 제국주의적 지배의 영향을 받았다. 일제 강점기의 ‘전시 동원 체제’와 미군정의 문화정책을 통해 한국사회는 ‘문화적 지배’를 경험했다. 특히 자본주의 시장경제와 반공 이데올로기를 경제와 이념 체계의 근간으로 선택했던 신생독립국에게 전쟁영화는 해방 후 국가의 틀을 갖추는 과정에서 중요한 시청각적 수단이었다. 1948년 대한민국 수립 이후에 발생한 ‘여순사건’과 이후 지속된 빨치산들의 저항이 ‘소모적인’ 이데올로기적 대립과 분열을 일으킬 뿐임을 강조한 초기 서사는 향후 한국전쟁영화의 모습을 미리 틀 지우고 있었다.
둘째, 전쟁 직후 1950년대 중반부터 본격화된 한국전쟁영화는 한국전쟁을 과연 어떤 관점에서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 것인가를 둘러싼 ‘의미화’(signification)의 문제를 다루었다. 이 시기에 주도권을 행사한 주요 주체는 전쟁 국면을 통과하면서 규모가 비대해진 군 당국과 이를 전면에 내세워 통치를 수행하는 국가였다. 국가기구들은 검열뿐만 아니라 비평 담론들에 직접 개입해 이론(異論)들을 논파하면서 한국전쟁영화가 다룰 내용을 규정했다. 그 결과 ‘반공’이란 특정 주제만이 정치사회적이고 문화 및 이데올로기적 영역을 지배하는 담론으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한국영화 면세조치나 이른바 ‘우수국산영화’에 대한 해외영화 수입권 보상과 같은 장려정책이 있었지만, 검열을 통한 직접적인 통제정책이 이 시기 영화정책의 사실상 전부였다. 장려정책조차도 이데올로기보다는 국가 재원 확보에 보다 관심을 둔 결과였다.
셋째, 1960년대 초반의 한국전쟁영화는 오락성이 강조됐다. 이 시기의 한국전쟁영화는 5·16쿠테타 직후 취약한 정권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군 당국의 목적과 이를 통해 이윤을 얻고자 했던 영화계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면서 제작됐다. 5·16쿠테타 세력은 내용상 문제가 있다고 판단한 영화들의 상영을 금지하고, ‘난립’ 양상을 띠고 있던 영화사들을 통폐합하는 한편, 최초의 영화법을 제정하는 등 과거보다 기민한 조치를 취하면서 정책적 개입 의지를 강하게 드러냈다. 그러나 적어도 한국전쟁의 구체적인 재현/표현의 내용에 대해서만큼은 허용 또는 방임하는 태도를 보였다. ‘반공’이란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판단하기만 하면 다른 어떤 것이라도 된다는 1950년대 중반부터의 ‘폐쇄적 허용’의 태도가 유지됐기 때문이었다.
넷째, 1960년대 중반부터 한국전쟁영화에 대한 허용 또는 방임 태도가 일변했다. ‘반공’을 국시로 내세웠던 5·16쿠테타 당시의 ‘혁명공약’을 되새기면서 박정희정권은 국가가 허용할 수 있는 이야기 전달방식(storytelling)과 주제만을 직접적으로 지시함으로써 한국전쟁영화는 ‘프로파간다’(propaganda), 즉 선전영화의 성격이 강화된다. 국가는 일제 강점기의 파시즘적 ‘국책영화’를 이데올로기적으로 변용한 ‘반공영화’를 제도화하기 위해 영화정책을 개편하는 한편, 관련 조치들을 단행했다. 검열절차의 정교화, 영화 표현 영역에서 공안정국 조성, 정부가 주관하는 대종상에 우수반공영화상 및 우수반공영화 시나리오상 부문 신설, 이를 근거로 한 외국영화 수입쿼터 보상, 반공 및 계몽 영화 쿼터 할당, ‘군사영화’ 제작지원을 위한 군의 체계적인 지침을 마련해 한국전쟁영화의 양산을 꾀하는 등의 각종 정책수단들을 적극 활용했다.
이로써 1965년 이후의 한국전쟁영화는 곧 ‘반공영화’와 동일시됐고, 이전 시기에 제작된 한국전쟁영화들 전반으로 소급 적용됐다. 영화계나 군 당국이 제작한 것과 상관없이 모든 전쟁영화 또는 군사물은 ‘반공’이라는 대의를 표방하기 위해 존재하는 선전영화로 수렴됐다. 액션드라마와 스파이/간첩물과 같은 하위유형의 전쟁영화일 경우에도, 이야기의 결말과 주제는 ‘반공’이어야 했다. 박정희정권의 취약한 정당성을 확보하고 국가의 미숙한 정책집행 과정에 대한 시민사회의 저항을 억누르기 위한 내치의 수단으로 포획된 것이었다. 하지만 이후의 한국전쟁영화는 질적 저하와 관객의 외면을 불러일으켰다. 관객들은 그렇게 반복되는 한국전쟁 재현에 대해 ‘관심 없음’이란 반응을 보였다. 의미의 변용이나 고민 없는 채로 ‘반공영화’란 유형의 형식 및 내용이 반복되는 경향에 관객들은 피로를 느낄 수밖에 없었다. 한국사회를 철저하게 통제하는 내치 목적에 지나치게 경도된 나머지, 한국전쟁영화를 통해 국가는 한국전쟁에 대한 무비판적 의미의 수용과 무조건적 복종만을 강요하는, 즉 ‘물신 폭력’을 국민들에게 가했다.
다섯째, 한국전쟁영화의 서사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전쟁영화는 관객들에게 ‘물신적 황홀경’이라는 영화적 쾌감을 가져다주지만, 전쟁을 엿본다는 행위로 인해 관객들에게 죄의식을 동반한다. 때문에 전쟁영화에서 자주 나타나는 반전 또는 염전(厭戰)의 태도는 이런 죄의식을 감추거나 완충시켜주는 ‘정서적 알리바이’ 역할을 해왔다. 그런데 한국전쟁영화는 정서적 구성 요소들을 총동원해 ‘반공’이라는 일의적인 주제로 환원시켰다. 한국전쟁영화의 하위유형들 가운데 하나인 전투영화는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전투영화는 한국전쟁에 대한 ‘진지한’ 관심에서부터 점차 볼거리 위주의 오락물 형식을 띠었다. 전쟁드라마, 전쟁멜로드라마, 전쟁사회극(전후사회극)으로 세분할 수 있는 한국전쟁영화의 두 번째 하위유형은 첫 번째의 전투영화 하위유형이 어떤 서사나 주제와 결합하느냐에 따라 달라졌다. 이와 같은 결합방식은 한국전쟁을 어떤 관점에서 볼 것인가와 관계가 있었고, 서사의 전달방식과 그 특성은 한국사회의 특정 정치사회적 국면과 한국전쟁영화 제작 및 소비를 둘러싼 세 주체들의 상호작용에 따라서도 규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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