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사에서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빼놓고서는 민주화 과정을 논의하기 어렵다. 박종철 고문치사 은폐조작 사건이 ‘6월 항쟁’을 촉발하는 도화선이 됐기 때문이다. 이 사건은 전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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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 고려대학교 대학원, 2012
2012
한국어
서울
(The) investigative reporting on Park Jong-Chul incident and the democratic policy reform in South Korea
vii, 200 p. ; 26 cm
지도교수: 심재철
참고문헌(p. 135-140)과 부록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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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운로드한국 현대사에서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빼놓고서는 민주화 과정을 논의하기 어렵다. 박종철 고문치사 은폐조작 사건이 ‘6월 항쟁’을 촉발하는 도화선이 됐기 때문이다. 이 사건은 전두...
한국 현대사에서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빼놓고서는 민주화 과정을 논의하기 어렵다. 박종철 고문치사 은폐조작 사건이 ‘6월 항쟁’을 촉발하는 도화선이 됐기 때문이다. 이 사건은 전두환 정권의 도덕성에 치명타를 가했고, 결국 대국민(對國民) 항복문서라 할 수 있는 6·29선언을 끌어냄으로써 당시 국민적 염원이던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이뤄냈다.
이 연구의 목적은 박종철 사건 관련 보도가 탐사보도로서 어떤 속성을 갖고 있었으며 한국 정부가 이 사건 언론 보도를 어떤 방식으로 통제했는지 알아보고 이 보도가 어떤 미디어의제와 공중의제를 형성해 한국의 민주화 정책변화로 이어졌는지를 탐구하는 것이다. 또 정책변화 과정에서 영향을 미친 구조적·상황적 요인이 무엇이었는지를 분석하는 것도 이 연구의 목적 중 하나다.
이러한 문제들을 탐구하기 위해 중앙일보, 동아일보, 조선일보의 이 사건 관련 기사를 분석했으며 청와대와 검찰·경찰, 언론사 편집 책임자들을 심층 인터뷰하였다. 이와 함께 정부 인사들의 회고록과 저서, 법원의 판결문 등 문헌자료들도 사실 확인과 분석에 활용했다.
연구 결과 박종철 사건 언론 보도는 관련 기사 속에 악역과, 국민의 분노, 피해자가 등장하는데다 경찰과 정부가 잇따라 이 사건의 축소·은폐를 시도하는 등 탐사보도로서의 속성을 두루 갖춘 것으로 분석되었다.
연구에서는 한국 정부가 사건 초기 언론사에 보도지침을 내려 기사의 크기를 제한했고 이후 정부기관 담당자들의 언론사 출입, 언론인에 대한 연행 조사 위협, 보도 책임자와 경영진에 대한 압박 등의 방식으로 언론 보도를 통제했음을 확인했다.
또 박종철 사건의 언론 보도는 공중의제 형성에 영향을 미쳐 권위주의 정부의 정책변화를 유도함으로써 상당한 수준의 의제설정 효과가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신문들은 이 사건 초기에 고문치사, 2·7추도회, 인권, 진상규명 문제를 집중 보도하다가 1987년 5월 범인 축소·은폐 사실이 폭로되면서 축소·은폐와 함께 6·10대회를 주요 이슈로 삼았다. 이로 인해 국민 사이에서 고문 규탄, 고문 종식, 인권, 추도회, 민주화, 개헌 등의 공중의제가 형성되었다. 이러한 공중의제는 1987년 6월 29일 6·29선언을 통해 정책의제로 받아들여졌다.
연구에서는 이와 함께 박종철 사건 초기부터 관계기관대책회의가 수사의 범위와 시기 등 정책 방향을 결정했던 것으로 분석됐다. 사건 발생 직후인 1월 17일에 열린 관계기관대책회의에서는 이 사건 수사를 경찰이 맡도록 결정했다. 검찰은 2월 27일 범인 축소조작 사실을 파악하고서도 3개월 가까이 수사를 미루고 있었다. 이러한 검찰의 수사 지연도 3월 7일 열린 관계기관대책회의 결정 때문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이는 당시 박종철 사건에 대한 수사 및 대응이 단순히 경찰이나 검찰 차원에서 이루어진 게 아니라 정권 차원에서 진행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범인 축소·은폐 사실이 1987년 5월 폭로되고 이어서 단행된 문책 개각으로 장세동 안기부장 등 관계기관대책회의의 핵심 멤버들이 교체되면서 권력 내부 역학관계에 큰 변화가 생겼다. 이러한 권력 내부의 구조적인 변화와 당시 1년 앞으로 다가온 88서울올림픽이 민주화 정책변화 과정에서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됐다.
이상의 연구결과를 통해 볼 때 박종철 사건 보도는 언론의 추적을 통해 경찰과 정부가 숨기려 했던 진실이 밝혀졌다는 점에서 성공적인 탐사보도 사례라 할 수 있으며, 한국 언론사에도 전환점을 마련하는 계기가 됐다. 즉, 언론의 자유를 옥죄던 정부의 보도지침이 사라졌고 한국 언론에 탐사보도의 물꼬가 트였다. 그러나 이 사건에 대한 전두환 전 대통령의 책임 문제 규명은 후속 연구를 통해 보다 심층적으로 분석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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