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군은 한국전쟁을 일으킬 때, 승리의 3대 요소를 기습, 속도전, 기갑전력에 두고 남침계획을 세웠다. 북한군의 계획대로 전쟁은 초반부터 북한군 전차부대가 남침의 선봉에 서서 국군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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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경기대학교 정치전문대학원, 2010
학위논문(석사) -- 경기대학교 정치전문대학원 , 외교안보학과 , 2011. 2
2010
한국어
서울
Combat Pattern Analysis of Tank Battles in Korean War
vii, 61 p.: 삽도; 26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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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교수:조성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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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군은 한국전쟁을 일으킬 때, 승리의 3대 요소를 기습, 속도전, 기갑전력에 두고 남침계획을 세웠다. 북한군의 계획대로 전쟁은 초반부터 북한군 전차부대가 남침의 선봉에 서서 국군과 유엔군을 압도하며 낙동강 전선까지 밀고 내려갔다. 200여대의 전차와 180여대의 자주포를 보유하였던 북한군에 비해 국군은 전차한대 없이 북한군과 싸우다 전쟁 초반에 치욕적인 패배를 당하였다. 이후 미 육군 전차부대와 미 해병대 전차부대가 낙동강 전선에서 북한군 전차부대를 격파하면서 한국전쟁 전차전의 분기점을 만들었다. 미군 전차부대는 인천 상륙작전 이후 서울 탈환, 38선 돌파, 평양 점령 작전에서 전차부대 고유의 적전선 돌파임무를 수행하였고 중공군 개입이후 전선이 서울 이남의 평택 선(線)까지 밀려내려 갈 때도 아군의 보병부대를 전차포 화력으로 지원하는 임무를 수행하였다. 1951년 6월부터 전선이 교착되자 공산군에 비해 열세인 아군 지상군 병력의 전력을 보완하기 위해 아군 전차부대는 아군 보병부대에 대한 융통성있는 화력지원을 하여 공산군의 남하를 저지하였다. 그러나 피아 확전을 자재하는 분위기 속에서 아군(국군, 유엔군) 전차부대는 전차 고유의 돌파작전은 하지 못하다가 2년 뒤 휴전이 이루어졌다.
본 논문은 과거 6.25 전쟁시 피아 전차부대의 전과를 집중 연구함으로써 향후에 다시 일어날지 모르는 한반도에서의 전쟁을 대비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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