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희문이 살았던 16세기는 정치적으로 사림파가 성장하여 기존 훈구파와 대립, 갈등하던 시기로 사림들의 성장 발판을 마련하는 시기이기도 하였다. 따라서 향촌 지배질서도 임진왜란을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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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 건국대학교 교육대학원, 2011
학위논문(석사) -- 건국대학교 교육대학원 , 교육학과 역사교육전공 , 2011.2
2011
한국어
951.054 판사항(22)
서울
Life and view of education of Oh-huimun in the 6th-century gentry as appeared 『swaemirok』
ⅶ, 46 p ; 26 cm
지도교수: 신병주
참고문헌: p. 44-46
서지적, 설명적 각주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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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운로드오희문이 살았던 16세기는 정치적으로 사림파가 성장하여 기존 훈구파와 대립, 갈등하던 시기로 사림들의 성장 발판을 마련하는 시기이기도 하였다. 따라서 향촌 지배질서도 임진왜란을 기...
오희문이 살았던 16세기는 정치적으로 사림파가 성장하여 기존 훈구파와 대립, 갈등하던 시기로 사림들의 성장 발판을 마련하는 시기이기도 하였다. 따라서 향촌 지배질서도 임진왜란을 기점으로 큰 변화를 가져오는 시기이다. 사회적으로 주자학적 가부장제 의식이 널리 보급되었고 유교적 윤리관이 기층사회까지 침투하여 부계친 중심의 문벌의식이 대두하던 시기였다.
오희문의 삶에서 우선 주목되는 것은 제사와 관련된 내용이다. 효를 실천하는 방법의 하나로 다른 누구보다 제례를 중요시 하였던 오희문의 일기에서 보여 지는 새로운 점은 16세기 제사설행방식에 있어서 유교적 제사방식이 완전히 정착되지 못하였다는 점이다. 당시 외가와 처가에 대한 제사를 받드는 윤행이 일반적이었고 이와 연관하여 오희문의 성장과정을 통해 당시 솔서(率壻)의 풍습을 알 수 있었다. 이러한 풍습은 재산균분(均分)상속과 제사를 받드는 것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으로 제사를 자녀에게 분급하는 것은 봉양과 봉제사에서 기인된 것인데, 16세기 가족제도나 제사방식은 아직 부계중심의 성리학적 사회 구축질서가 정착되지 않은 과도기적 성격을 보여 주고 있다는 점이다.
『쇄미록(瑣尾錄)』에서는 꿈에 관한 기록이 매우 많다. 이것은 오희문이 미래에 대한 궁금증과 현실의 답답함을 헤쳐 보려고 꿈을 기록하거나 해석하고자 하였고, 점복이나 굿을 통해 현실을 타개하려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러한 오희문의 무속 신앙에서 보여 지는 특징은 오희문이 무속신앙에 대해 이중적인 잣대를 가지고 있었다는 점이다. 즉 독경이나 굿 등의 행위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포용하지는 않았지만, 점복행위 만큼은 일반적으로 용인하였음을 알 수 있었다. 또한 조선시대 양반들도 우울하거나 무료할 때에 종정도, 바둑, 장기, 쌍륙 등을 즐기면서 이를 해소하려 하였고, 이런 오락들은 지식과 상식을 넓혀주어, 놀이를 통해서 지적활동의 영역을 넓히는 역할을 하였다. 이와 같은 오희문의 꿈과 신앙관, 여가 활동에 대한 기록은 기존 사대부에 대한 인식, 즉 성리학으로 무장되어 있는 합리주의자, 그리고 권위주의자라고 여겨져 왔던 사대부의 모습이 실지로 그렇지만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마지막으로 오희문의 교육관에서 주목할 점은 가문의 영광을 위한 관료 획득이 교육에 대한 열의와 집념의 산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오희문의 교육열과 집념으로 성균관과 가까운 마을로 이사를 하기도 하였으며, 피난살이 와중에도 서당을 보내 학업에 전념할 수 있도록 독려하였다. 기본적으로 초급과정의 교육은 집에서 직접 가르치거나 인근의 유학자에게 수학하도록 하였으며, 어느 정도 학식이 갖추어졌으면 관학기관이나 유명한 유학자에게 보내거나 절에 올라가 공부를 하기도 하였다. 또한 일반 사대부가에서는 딸들에게도 책을 읽히는 등의 모습도 확인할 수 있다.
이밖에 임진왜란 때에는 비정기시인 정시와 별시 그리고 알성시에서 많은 수의 무과를 뽑아 군대에 충당하였고, 경국대전에 공시되어 있는 바와 같이 주소를 쓰지 않으면 합격이 취소되는 사례도 확인되었다. 특히 천인도 실지로 과거에 응시한 사례가 있으며, 서얼도 과거에 등극하였다는 사실과 피난 중에도 일정한 과거급제의식을 치루는 것을 볼 수 있다.
목차 (Table of Cont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