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전 이후 북한의 대중 경제 의존도는 점차 심화되고 있다. 최대 대북 원조를 제공했던 소련의 붕괴 이후 자국 내 경제 비효율과 자연재해, 서방의 경제제재 등으로 인해 북한경제는 피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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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전 이후 북한의 대중 경제 의존도는 점차 심화되고 있다. 최대 대북 원조를 제공했던 소련의 붕괴 이후 자국 내 경제 비효율과 자연재해, 서방의 경제제재 등으로 인해 북한경제는 피폐해...
냉전 이후 북한의 대중 경제 의존도는 점차 심화되고 있다. 최대 대북 원조를 제공했던 소련의 붕괴 이후 자국 내 경제 비효율과 자연재해, 서방의 경제제재 등으로 인해 북한경제는 피폐해졌다. 반대로 사회주의 형제국이었던 중국은 개혁개방 이후 무서운 속도로 발전하여 현재 미국과 중국의 양극체제, 즉 G2시대가 오는 것이 아니냐는 전망이 나올 정도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북한은 자신의 유일한 동맹국인 중국으로부터 경제원조를 받는 것이 최소한의 생존조건이 되고 있다. 특히 식량과 에너지의 경우 거의 전량을 중국의 원조에 의지하고 있는 형편이다.
이처럼 중국의 부상과 북한의 경제 및 군사적 자생능력 상실로 인해 국력의 비대칭성이 심화되면서 중국에게 있어서 북한의 동맹국으로서의 가치는 점차 낮아졌다. 중국은 그 동안 중국에 있어서 한반도의 전략적 중요성을 입술과 치아의 관계, 즉 “순망치한”의 관계로 규정하는 등 중국안보에 있어서 중요요소로 강조해 왔다. 그러나 북한이 국제적으로 돌발행동을 일삼으면서 안정적인 경제발전을 도모하려는 중국과 전통적인 '순치관계'가 아닌 '부담스러운 이웃'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사실 조중동맹은 김일성이 사망한 이후 점진적으로 약화되기 시작했다. 김일성이 사망한 1994년 이후 북한과 중국 사이의 군사 및 안보분야 교류는 급격히 감소하기 시작했으며 가끔씩 이루어지는 회담도 동맹의 상징적인 의미를 확인하는데 그쳤다. 이후 북한의 경제가 급속도로 어려워지면서 북한은 동북아시아의 불안요소로 떠올랐다. 게다가 2003년 북한의 핵무기 개발이 사실로 드러나자 조중관계는 악화일로로 치달았다. 안정적인 발전을 위해 동북아시아의 평화유지와 한반도의 비핵화가 필수적이었던 중국으로서는 북한의 핵위협을 절대 용인할 수 없는 입장이었다. 결국 그 해 1월 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 탈퇴 선언 이후 중국은 기술상의 문제를 핑계로 다칭으로부터 북한에 이르는 송유관 일부를 폐쇄했고 8월에는 북한에 군사대표단을 파견, 조중동맹 조약의 제 2항인 ‘상호원조조항’을 수정할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이는 상대국이 군사 위협에 직면하였을 때 동맹국은 자동적으로 도움을 주어야 한다는 조항이다. 중국은 이를 통해 북미갈등에서 발생될 수 있는 군사 충돌에 대한 연루의 불안에서 벗어남과 동시에 궁극적으로 평양의 계속되는 도발을 자제시키려고 하였다. 그러나 북한은 2005년 2월 핵무기 보유를 공식 선언하였고 이듬해 7월에는 일본열도 너머로 탄도 미사일을 발사하였다. 이에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7월 15일 북한을 비난하는 결의문을 채택하였고 중국은 이에 사상 처음으로 찬성표를 던졌다. 2006년 10월, 북한은 중국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핵실험을 강행하였으며 중국은 이에 대한 국제사회의 비난여론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며 북한에 대한 제재의 안보리 결의안 통과에 찬성했다. 그로부터 3년 뒤인 2009년 5월 25일, 중국 및 국제사회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또다시 핵실험을 강행했다. 중국은 2006년 때와 마찬가지로 외교부 성명을 통하여 북한의 행동에 강력한 반대의사를 표명했다.
북한은 당시 경제적으로 중국에 의지하지 않고서는 국가형태의 유지자체가 불가능한 시점이었다. 더불어 중국은 북한의 유일한 동맹국이었다. 따라서 당시 북한 정권에게 가장 큰 정치적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나라는 중국이라는 데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정작 북한은 중국이 요구하는 바대로 움직이지 않고 독자 노선을 걸어왔다. 이는 결국 양국관계의 경색을 불렀고 중국 내에서도 북한에 대한 무조건적 원조 및 경제 지원을 회의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늘어나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했다. 왜 북한은 자국의 높은 대중 경제 의존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결정에 불복하는가?
이 질문에 대한 연구는 비대칭적 동맹관계, 즉 강대국과 약소국의 동맹관계에서 약소국이 강대국의 압도적인 영향력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자국의 의지를 관철할 수 있는가에 대한 하나의 시각을 제공해 줄 것이다. 나아가 북한의 대중 정책결정과정을 면밀히 관찰함으로써 한국이 북한의 행동을 예측하고 그에 알맞은 정책을 수립하는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본 논문에서는 북한의 핵실험을 사례로 들어 북한의 대중국 불복 원인을 탐구한다. 가장 경제의존을 많이 하고 있는 중국에게 북한이 가장 경제적으로 힘든 시기에 왜 중국이 가장 싫어하는 행동, 즉 핵실험을 실시했는지에 대한 대답을 찾아 나설 것이다. 본고는 이에 대해 북한의 핵실험은 단순히 미국과의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위함이거나 대미 안보전략으로서가 아닌, 대중 외교전략적 이유에 근거한 행동이라고 주장한다. 이는 먼저 북한이 중국의 동맹국으로서 자국의 가치가 평가절하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면서 시작된다. 중국이 미국과의 관계가 개선되고, 국제적 지위가 향상되면서 북한에 대해 예전과 같은 대우를 해주지 않게 되었고 북한은 중국으로부터 방기의 위협에 시달리게 되었다. 이에 북한은 자국의 전략적 가치를 향상시켜야 하는 필요성을 인식하게 되었고, 그 수단으로서 핵실험을 선택했다. 또한 중국으로부터 방기 당할 위협이 커지자 북한으로서는 현재 경제, 군사적으로 자국이 크게 의지하고 있는 중국이 자국을 버렸을 때를 대비하여 자국의 안보전략을 수정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다시 말해 이전과 달리 중국의 예속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지상과제가 된 것이다. 이로 인해 북한은 핵보유를 독립적 안보전략으로 선택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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