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최초의 흑인대통령 버럭 오바마는 선거기간 동안 북한과 직접 만나 북핵문제를 비롯한 한반도의 문제를 해결 하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진전된 평화안은 아직 제출되고 있지 않으나 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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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 고려대학교 정책대학원, 2009
학위논문(석사) -- 고려대학교 정책대학원 , 국제관계학과 , 2009.2
2009
한국어
서울
77 p. : 삽도 ; 26 cm.
지도교수: 이신화
참고문헌 : p. 75-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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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최초의 흑인대통령 버럭 오바마는 선거기간 동안 북한과 직접 만나 북핵문제를 비롯한 한반도의 문제를 해결 하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진전된 평화안은 아직 제출되고 있지 않으나 국내외적으로 상당한 기대감을 갖게 하는 것이 사실이다. 미국의 대북전략은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사안이기 때문이다. 지난 부시행정부의 대북정책은 임기기간 중 큰 수정을 한 번 하였는데 그것은 선핵포기노선에서 대화노선으로 변화를 의미한다. 물론 본질적으로 북에 대한 불인정과 적대정책에는 변화가 없고 단지 형식적 변화라고 평가할 수도 있으나 이라크 전의 장기화, 이란핵 문제 등장 등으로 북핵에 대한 결론을 맺어야 하는 부담이 크게 작용한 측면을 간과할 수 없다.
1기 부시 행정부는 북한을 테러지원국, 인권탄압국가, 대량살상무기 개발국으로 규정하고 제네바 합의를 파기하는 등 노골적인 대북적대정책을 진행한 바 있다. 1기 부시 행정부는 2001년 1월 취임 직후 클린턴 행정부 때 협상타결 일보 직전까지 갔던 미사일 협상을 중단시켰다. 대북정책검토 시간이 필요하다는 명분이었다. 이어 부시행정부는 2001년 9.11테러가 발생하자 9.11테러와 아무런 관계가 없었고 오히려 9.11테러에 대한 유감을 표하고 반테러 국제협약에 가입하는 등 성의를 표한 북한을 이라크 . 이란과 함께 ‘악 의 축’으로 규정하고 선제공격대상에 포함시켰다.
9.11 이후 미국 외교를 규정하는 가장 큰 요인은 9.11 테러 자체라 할 수 있다. 이라크 처리, 주한미군 감축 및 재배치, 북핵 문제, 동맹국 정책, UN 및 다자외교 등 거의 모든 국제․외교․안보 관련 사안은 9.11 테러와 전반적인 미 군사안보전략의 변화를 떠나서 생각할 수 없다. 미국인들은 북한이 테러조직들에게 대량살상무기나 관련기술을 판매할 능력과 의도가 있다는 점을 우려하며, 이렇게 볼 때 북핵 문제는 ‘테러와의 전쟁 속의 북핵문제’라 할 수 있다. 테러와의 전쟁은 미국의 외교정책이기 이전에 미국민의 생명과 본토 안전이 걸린 국내안보 정책이기 때문에 북한에 대한 적대적 강경정책을 필연적으로 제출하게 되는 것이다.
부시 행정부는 2002년 10월. 북한이 고농축 우라늄을 이용해 비밀리에 핵무기를 개발하고 있다는 의혹을 제기하며 제네바 합의의 파기를 선언했고 이 후 일관되게 핵을 제거하기 전에는 어떤 대화도 하지 않는다는 선 핵포기노선 즉 대북 비타협- 적대노선을 견지하였다. 이는 곧 북한의 심각한 반발을 불러 일으켜 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NPT)탈퇴, 핵개발선언으로 이어졌고 한반도 위기가 극에 다다른 시점에서 2기 부시행정부는 6자회담을 통한 대화노선으로 대북전략을 수정하게 된다. 대화노선으로 수정이 이루어졌으나 6자회담은 순탄하게 결실을 맺기보다 방코델타 아시아은행(BDA)계좌 동결건으로 다시 유회되고 이 틈에 북한은 미사일발사, 핵실험 등 군사적 대응을 지속한 바 있다. 그러나 이런 마찰이 극심해 질 때 마다 북미양국은 6자회담을 통해 한 가지씩 진전된 합의를 도출하게 되는데 미국의 테러지원국 해제 이 후 향 후 한반도 완전한 비핵화와 영구평화 수립을 위한 과제가 남아 있는 상황에 놓여있다. 이 논문은 이런 부시행정부의 선핵 포기노선의 배경과 전개과정, 어떤 경로를 통해 대화노선으로 전환되었는지 고찰하고 향 후 오바마 정부의 과제와 한반도 평화를 둘러싼 미국의 대북전략의 올바른 방향은 무엇인가 진단해 보는 것을 목표로 한다.
제 2 절 연구범위와 방법
미국의 대북전략수립은 그 역사가 상당히 깊다. 1950년 한반도 전쟁 이 후 미국은 주둔하면서 동아시아에서 한반도의 군사전략적 위치를 대단히 높게 평가한 바 있다. 북한에 대하여 그 존재를 인정하기보다 군사적으로 제압하는 것을 기본으로 한반도 전술을 운용하였고 이에 대항하는 북한은 재래식 무기와 나아가 핵개발에 집중하면서 미국과 대결해 왔다. 이 논문에서 미국의 대북적대정책의 오랜 역사를 고찰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제목에서 밝히고 있다시피 1기와 2기 부시행정부의 대북전략 변화를 6자회담을 중심으로 고찰하고 향 후 오바마 행정부의 과제와 전망을 세워보는 것에 그 범위를 국한하고자 한다. 그러나 6자회담은 당시의 형성되는 정세를 일정 반영하여 합의가 이루어지므로 그 조문만을 연구하는 것은 타당한 방법이 아니다.
2005년 9.19 베이징 공동성명 채택 직 후 미국은 경수로 제공에 대해 초강경 입장을 밝히고 북한을 위조지폐 제조 및 유통의 혐의를 근거로 금융제재를 부과했다. 이에 대한 북한의 반응은 2006년 7.5 미사일 발사실험, 10.9 핵실험으로 나타났다. 6자회담은 2003년에 시작되어 2004년 2, 3차 회담, 2005년 4차 회담으로 이어지고 2006년 12월, 5차 회담이 진행되어 결국 2007년 2.13합의, 10.3합의라고 하는 큰 결실을 맺게 된다. 이 후 올해 들어 금융제재의 해제와 북의 냉각탑 폭파, 테러지원국 해제라는 결실을 맺은 바 있으나 마지막 단계인 완전한 핵 폐기와 관계정상화, 평화협정이라는 지난한 길을 앞두고 있다.
부시행정부의 대북전략의 변화는 크게 1기와 2기의 차이라고 볼 수 있지만 엄밀히 따지면 2기 중반이 후 부터의 변화라고 해야 한다. 왜냐하면 1기에 이어 2기 행정부 출범 당시에도 여전히 행정부 내의 네오콘 강경파가 주류를 이루었고 실제 대북강경노선의 본질적 변화는 없었기 때문이다. 6자회담을 중심으로 대북전략 변화의 계선으로 삼는 경우도 있으나 역시 타당하지 않다. 왜냐하면 6자회담이 처음 시작된 2003년은 부시행정부의 대북강경정책이 가장 피크를 이루는 시기였고 사실상 6자회담에서 성과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2005년 9.19 공동성명이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부시행정부의 대북전략의 변화를 고찰하는 것은 단순히 1,2기로 나누거나 혹은 6자회담의 시작으로 전후의 차이를 분석하는 것은 방법적으로 유용성이 떨어진다. 도리어 미국이 왜 강경정책을 고수하였는지, 또 왜 대화와 타협으로 노선을 변경했는지를 그 전후 맥락을 살펴보고 북의 대응을 함께 분석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부시행정부의 대북전략은 실패도 성공도 아닌 미완의 진전으로 볼 수 있다. 돌아보면 부시정부 초기에 발생한 9.11테러로 말미암아 미국의 모든 대외정책은 대테러전쟁, 힘에 의한 일방주의 정책으로 일관하게 되었고 이는 곧 대북전략에 있어서 융통성을 발휘할 수 없는 계기로 작용하였다. 2002년 10월 미 켈리 특사가 북한 측에 우라늄 농축 방식의 핵개발 의혹을 제기하고 북한은 이에 대해 모호한 답변을 하였고 이에 2차 북핵 위기가 발생하였다. 북한은 핵문제가 미국의 대북적대시정책의 산물인 만큼 북 미 양자협의를 통해 풀어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하였고 반면 부시행정부는 양자협의의 산물인 제네바 합의는 실패하였다고 주장하였다. 이에 따라 2003년 4월 북경에서 미⋅중⋅북의 3자회담이 개최된 뒤, 4개월 뒤에 6자회담이 개최되었다.
2년여가 지난 2005년 9월 19일 북핵 폐기를 위한 기본적인 합의가 6개국 공동성명의 형태로 도출되었다. 이 합의로 한반도 안보상황은 대립⋅갈등국면에서 화해⋅협력 쪽으로 방향을 틀었고 북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의 발판이 만들어졌다. 특히 1994년 제네바 합의 때는 미국이 북한의 붕괴가능성을 상정하고 임했는데 이제 북한과 평화공존을 약속하고 한반도평화체제를 논의하기로 하는 등 북한의 생존을 전제로 동북아 질서를 구상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북한과의 상호주권 존중 및 평화공존, UN헌장의 목적과 원칙의 준수를 약속한 것은 힘의 우위에 입각한 일방주의적인 동북아 안보전략 추진이 어렵다는 것을 인식하고 협력적인 동북아 안보질서 구축을 대안으로 고려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의미가 있다 할 것이다. 이어 순탄하게 북미관계가 발전하지 못하고 미국이 방코델타아시아(BDA)은행의 북한계좌를 동결하는 등 대북금융제재를 강화하고 대량살상 무기 확산방지구상(PSI)의 대북 적용 등 대북제재를 강화하자 북한은 오히려 미사일 발사실험, 2006년 10월 9일 핵실험마저 감행하기에 이르렀다.
물론 부시행정부는 일본을 앞세워 유엔안보리에서 대북제재결의안을 채택하는 등 대북압박강화에 돌입하였는데 곧 이어 미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이 참패하자 미국의 대북정책에 획기적인 변화가 이루어졌다. 부시행정부가 대북정책기조를 북한정권에 대한 도덕적 평가에 입각한 체제붕괴와 압박에서 실용적 현실주의와 협상으로 180도 전환 한 것이다. 북에 대한 악의적인 무시에서 벗어나 직접대화와 협상을 시도하고 ‘나쁜 일에는 보상이 없다.’는 원칙을 수정하여 단계적으로 주고받는 방식의 합의를 모색하며 ‘선핵 폐기 노선’을 포기하고 ‘행동 대 행동’의 노선을 수용한 것이었다.
이런 맥락에서 2007년 1월 중순 베를린 북미양자 회담이 개최된 후 2월 13일에 9.19공동성명의 초기 이행조치로서 북한의 핵 폐쇄를 거쳐 불능화 단계까지의 상호행동기본구도에 대한 6자 합의가 도출되었다. 2.13합의 역시 이행에 많은 진통을 겪었으나 핵 폐쇄라는 초기단계를 통과한 후 10.3합의의 이행과정으로서 북한의 핵 신고와 불능화의 마무리단계에 이르렀다. 이제 이러한 2단계 작업이 잘 이행되면 마지막 단계로서 북한 핵의 완전한 폐기 및 제 3국 이전과정으로 진입할 것이지만 최종단계인 3단계는 현재까지보다 더욱 험난한 협상과정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분석하였다시피 미국의 대북전략이 강경 일변도일 때 북한과 어떤 협상의 결실을 기대하기 힘들었다는 사실을 올바르게 평가할 필요가 있다. 미국은 오랫동안 미국을 신뢰할 수 없었고 침공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 있었으며 북핵 개발을 국가체제의 생존에 대한 마지막 보루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9.11테러 이 후 미국의 대외전략은 테러 방지 및 확산을 막기 위해 힘에 의한 일방 주의적 압박을 기본으로 삼고 있었다. 결국 두 입장은 조금도 양보 없이 진행되었고 이런 미의 강경정책은 북한의 끊임없는 반발을 불러 일으켜 결과적으로 핵개발을 막지 못하고 핵실험을 허용하는 상황을 불러온 것이다. 핵실험 후 이라크전의 부담, 중간선거의 패배 등을 거치면서 미국이 대북전략을 일방 주의적 강경정책에서 대화협상노선으로 전환하면서 상당한 성과가 나타났음을 알 수 있다.
대화노선으로 전환 이 후 미국의 인내와 노력은 북한의 신고가 잘 이행되지 않고 지연됨에도 불구하고 대북 식량 지원을 늘리고 북미 간 접촉을 진전시킨 것을 통해 진지하게 보여준 바 있다. 먼저 북한의 태권도 시범단이 2007년 9월 LA 등 미국 5개 도시를 순방하면서 시범경기행사를 벌였고 2007년 10월 30일에는 미국의 구축함 윌리엄스호가 소말리아 근해에서 신속하게 나서 미국의 대북관계개선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북한의 초청으로 뉴욕필하모니 오케스트라의 평양 방문공연이 2008년 2월 26일 개최되어 미국국가가 연주되었다. 외교적 접촉도 활발하게 벌여 2008년 1월 말 성김 국무부 한국과장과 왕자루이 중국공산당 대외연락부장이 북한을 방문하였고 베이징에서 2월 19일 힐 - 김 계관회동이 있었고 2008년 5월 9일 성김 미 국무부 한국과장은 평양을 방문한 뒤 1만 8천 800쪽에 달하는 북핵 관련 자료를 갖고 귀국하였고 이어 김 계관부상과 힐 차관보는 베이징에서 양자회담을 전개하는 등 활발한 접촉을 전개한 바 있다.
부시행정부의 대화노선으로 전환 이후 북의 태도를 살펴보면 상당한 변화와 몇 가지 긍정적인 예측을 가능하게 하는데 북한 정부는 최소한 핵 신고와 불능화에 대한 의지를 갖고 있다고 보여 진다. 영변 핵시설의 설계도를 미국 기술진에게 공개하고 6자회담에서 경수로 건설을 요청하지 않고 미국주도의 불능화를 허용하고 냉각탑을 붕괴하고 2008년 핵 신고서에 1990년대 초반 핵 활동을 추정하는 결정적인 단서가 될 액체 핵폐기물 저장소 2곳을 신고한 점이 그것이다. 특히 2008년에 들어 북한은 식량난이 심각해지는데 중국이 대외식량반출을 통제하고 남한 이명박 정부와의 관계도 단절되어 남한으로부터 식량지원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 국제곡물가격이 급등한 점 등으로 인해 미국과의 관계개선의 필요성이 급증하고 있기 때문에 북핵문제 해결에 대한 북의 적극성을 객관적으로 뒷받침하고 있다 할 것이다.
북한이 과연 검증과정에서 적극적으로 협조할지는 아직 미지수이다. 미국은 24시간 전에 예고하는 불시사찰과 핵시설, 핵물질에 대한 제한 없는 자유접근, 핵과학자들의 면담, 시료추출 등을 요구하고 있는데 군부의 통제아래 있는 이런 사찰대상에 대하여 만족할 만한 접근과 사찰이 가능할까 의문이다. 적어도 미국이 북한의 아시아개발은행(ADB)과 국제 통화기금(IMF) 등의 국제기구 가입을 보장하고 실질적인 관계정상화와 한반도의 평화실현을 위한 구체적 대안 등이 제시되지 않으면 북한은 지금의 우호적 분위기만 유지하면서 북핵 검증의 구체적 방안은 차기 오바마 행정부와 담판 지으려 할 것으로 보인다. 최근 6자회담의 무산역시 이런 맥락에서 고의적 해태라고 해석할 수 있다.
부시행정부의 일방적 선핵 포기노선을 폐기하고 북과 대화로 전환한 이래 가장 중요하게 작용한 원리는 북미 간 ‘행동의 동시성 확보’이다. 향후에도 이 원리는 북핵문제진전의 관건으로 보인다. 그동안 북한의 협상행태를 살펴보면 위기고조시에는 모호성을 유지하면서 비합리적 행위자임을 보여주는 한편 배수진을 치는 벼랑 끝 전술불사의 특징을 보이지만 본격적인 협상국면에 진입하면 입장을 표변하여 포괄적 일괄타결, 근본 카드 활용 및 단계별 동시행동 방식을 구사해 왔다. 특히 북한은 구체적인 협상에 들어가면 일단협상카드를 여러 개로 쪼개 각각의 보상을 받아 이익을 극대화하는 소위 살라미 전술을 채택하면서 단계별 동시행동 원칙을 미국 측에 일관되게 주장해왔다.
미 행정부가 북미 간 합의된 내용을 단계별 동시행동에 입각하여 이행할지도 주요관건이다. 10.3합의문에 모호하게 기술되었지만 그 직전에 이루어진 북미양자협의에서 미국 측은 북한이 불능화와 신고를 2007년 말까지 이행하면 미국역시 테러지원국 명단제외와 적성국교역법적용배제를 이와 동시에 진행한다고 약속하였다. 그러나 불능화와 신고가 지연되자 북한에 대한 비난이 제기되고 이에 북한 측은 미국이 적어도 45일이 소요되는 이 조치들을 시행하지 않고 있으면서 북한만 먼저 약속을 이행하라고 하는 것은 상호주의나 ‘동시행동’ 원칙에 어긋난다고 주장하였다. 북미간 합의가 이루어져 북한이 결국 2008년 6월 26일 핵 신고서를 제출하자 부시대통령은 곧바로 북한에 대한 적성국 교역법 적용을 배제하였고 미 의회에 45일 뒤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삭제하겠다고 통보한다고 함으로써 절차를 개시하였다. 미 의회의 북핵문제 진전에 소요되는 비용을 지원하기 위하여 핵실험국가에 대한 지원을 금지한 글렌 수정안을 북한에 대해 적용하지 않는다는 법안을 통과시키고 부시대통령이 서명, 발효시킨 것은 상당한 진전이었다.
미국의 대화노선이 마지막 결실을 맺으려면 지금 북의 최종 행동을 끌어낼 수 있는 보상안이 무엇인가에 대한 답이 있어야 할 것 같다. 왜냐하면 북한은 북핵 3단계 협상에서 근본적인 한반도 비핵화와 체제생존을 동시해결하려고 할 것이기 때문이다. 2008년 4월 말 북한을 방문하여 박의춘 외무상, 김계관 외무성부상, 이근 미주국장과 면담한 찰스 프리처드 한미경제연구소(KEI)소장은 “북한 인사들은 핵폐기 단계인 3단계 협상의 대상은 영변핵시설이어서 핵무기는 포함되지 않는 것으로 생각”하고 “‘미국이 핵보유국인 북한에 익숙해져야 하며 완전한 북・미 관계정상화가 이뤄진 후에야 핵보유고 감축문제를 논의할 수 있다.’고 밝혔다.” 북측은 나아가 “비공인 핵보유국인 이스라엘이 미국의 가장 절친한 친구로 지낸다.”며 “관계정상화가 우선이다.”라고 주장하였다고 한다.
중국의 북핵 전문가인 장리안궤이 교수도 북한의 핵보유의지를 강조하였다. 북한은 핵 계획을 플루토늄계획, 농축우라늄계획, 완성된 핵무기 등 셋으로 나눈 뒤 핵 신고와 냉각탑폭파, 핵 검증 수용 등은 모두 플로토늄 계획과 관련된 것이고 둘째, 셋째 계획과는 관련이 없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플로토늄 계획은 포기하면서 이를 경제, 정치, 외교, 안보 등 북한이 필요로 하는 이익과 교환하되 핵무기와 핵무기제조수단은 계속 보유한다는 것을 전제로 미국, 일본과의 외교관계수립이라는 단계적 목표에 도달하려는 것이다. 이는 미국 등 관련국이 요구하는 한반도 비핵화 목표와 대립한다는 것이다.
부시행정부 1기 북핵 협상에 관여하였던 프리처드의 진술이나 중국 중앙당학교 장교수의 평가가 사실이라면 핵보유 하에서 미국과 타협하려는 북한의 태도는 북핵문제를 협상을 통해 해결하려는 움직임에 큰 난관을 조성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임기를 얼마 두지 않은 부시행정부는 이라크 전후 처리나 이란 핵개발문제 해결 실패를 만회하기 위해 북한의 핵무기 보유에 대한 묵인을 대가로 북한의 핵확산 자제와 영변 핵시설 및 프로그램의 폐기로 만족할 가능성이 있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최근 6자회담무산이 보여주듯 북한 측은 협상을 서두를 이유가 상대적으로 약하다. 식량난 등 경제위기가 심화되고 있으나 북한 측은 미국이 상당한 반대급부를 제시하지 않는 한 협상타결을 서두르지 않고 들어설 오바마 행정부와 타결 지으려 할 것이다. 오바마 행정부는 북의 지도자와 만날 용의가 있음을 밝히는 등 열린 태도를 유지해왔고 가능한 평화적 방식에 의해 북핵문제를 해결하는 유연한 모습을 견지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전통적으로 민주당은 인권문제를 강조했고 이는 북한의 인권상황개선을 지속적으로 압박할 것도 예상해 볼 수 있다. 북핵문제의 마지막단계인 핵 폐기 또는 제 3국 이전까지 성공적으로 마무리 되려면 북 미 양측 최고지도자의 결단이 요구되는데 북한의 최종적인 핵 폐기와 한반도 평화체제, 북 미관계정상화가 교환되어야 할 것이다. 문제는 미국과 북한의 평화체제와 관계정상화에 대한 관점에서 오는 차이가 있다는 것인데 그것은 미군의 존재, 남북 통일의 문제에 대한 것이다.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 당선자는 미국의 외교적 성과를 위해 정전종료와 관계정상화를 받아들일 것으로 보이지만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원래 북을 겨냥하여 존재하던 미군의 철수, 북미 간, 남북 간 평화협정, 북미 간 관계정상화, 남한과 군사적 불균형 해소 및 통일을 위한 다양한 정치 군사 경제적 활동 등을 고려하여 쉽게 결단을 내리지 못할 것이다.
오바마 정부는 그동안 미국이 강경정책으로 압박하면 북은 핵실험을 하는 방식으로 반발하고 미국이 선핵 포기를 접고 동시행동원칙에 의거하여 북미대화를 시도하자 북한은 단순한 핵 폐쇄를 넘어 불능화 단계로 접어 들어가 행동에 옮기고 있는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부시행정부가 6년간 시행하여 실패한 선핵 포기노선을 다시 끄집어내기보다 6자회담을 통한 동시행동을 핵폐기 이행과정의 원칙으로 더욱 확고히 하고 핵포기를 추상적으로 주장하기보다 핵포기 단계를 세분하여 각 단계마다 적절한 상응조치를 제시하여 점진적이고 지속적으로 핵 폐기를 진전시켜 가는 것이 바람직 할 것이다. 한국정부는 북핵문제에 진전이 있고 북미관계가 개선되어도 남북관계가 저절로 개선되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인식하고 유연하고 분명한 입장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 오바마 행정부와 긴밀히 의논하면서 한국정부가 먼저 남북간 대화와 민족공조의 회복을 주장하고 북한이 핵을 포기할 경우, 대북 경제지원 뿐 아니라 상호안보원칙에 의거하여 주한미군을 비롯한 남북 간 재래식 군사력 균형유지를 위해 군축의도가 있음을 제안하는 등 그야말로 북핵문제의 최종적 해결과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주도하고 나서는 전략관이 있어야 한다. 북한과 한국, 그리고 미국의 지도자들은 근본적이고 항구적인 한반도의 평화를 실현하는 문제는 단순하게 한반도의 비핵화를 실현하는 데 그치지 않고 북미간 관계정상화 및 남북간 평화로운 통일을 지향하는데서 찾아야 함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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