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여러 민족은 각기 고유한 역사와 문화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문화와 역사는 지리적 시대적 그리고 환경적인 여건 속에 주변 국가들과 여러 민족의 영향을 받으며 이질성과 동질성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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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 성균관대학교, 2008
학위논문(석사) -- 성균관대학교 생활과학대학원 , 생활예절.다도전공 , 2008. 2
2008
한국어
395 판사항(22)
서울
viii, 132 p. : 삽도 ; 26 cm.
지도교수:姜育發.
참고문헌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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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운로드세계 여러 민족은 각기 고유한 역사와 문화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문화와 역사는 지리적 시대적 그리고 환경적인 여건 속에 주변 국가들과 여러 민족의 영향을 받으며 이질성과 동질성 가...
세계 여러 민족은 각기 고유한 역사와 문화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문화와 역사는 지리적 시대적 그리고 환경적인 여건 속에 주변 국가들과 여러 민족의 영향을 받으며 이질성과 동질성 가운데 동화 또는 융합하거나 독특한 민족 나름의 고유문화를 형성하고 있다. 차문화도 이와 같다고 본다.
차문화의 이질성과 동질성 가운데 한국의 차문화가 가장 성행하고 전성기였던 고려시대는 말차 문화였으며 그 시대의 주변국이었던 동북아시아에 속한 중국의 송(宋)나라, 요(遼)나라 명나라 그리고 일본의 가마꾸라와 무로마찌 시대의 말차문화를 비교연구 하였다.
말차문화는 가루차를 찻그릇에 넣고 뜨거운 물을 부어 차선으로 휘저어 마시는 행위 즉, 점차법(點茶法)으로 차를 마시는 행위와 그와 관련된 행동양식과 사유(思惟)들을 말하며 말차(抹茶)와 관련된 다구(茶具)와 풍습과 제도 등이 포함된 것들을 말차문화라고 한다.
말차를 나타내는 표현문에서「말(末)」이 본자(本字)이며 가루를 뜻하고「말(抹)」은 파생자로 바르다, 가루 등을 뜻하지만, 한국(고려)과 중국(송)은「말(沫)」 과「말(末)」을 일본은 「말(抹)」인 글자를 썼다.
한(고려), 중(송), 일(가마꾸라)의 음차(飮茶) 표현문을 비교하여보니 일본(가마꾸라)은 「전(煎)」,「점(點)」을 썼고, 중국(송)은 「자(煮)」, 점(點)」,「전(煎)」을 , 한국(고려)은 「자(煮)」, 점(點)」,「전(煎)」,「전(煎)」의 표현문들을 다양하게 나타내며 많은 우수한 시문(詩文)들을 남겼다.
말차(末茶) 제다법에서도 한국(고려)은 중국(송)의 말차 제다법 같이 찻잎을 씻고 찧고 고(膏)를 짜서 갈아서 권(圈)과 모(模)에 눌러 단차(團茶)를 만들었으나 일본(가마꾸라)는 송(宋)후기에 말차가 전파되어 고(膏)를 짜지 않고 잎차형태에서 찻가루를 만드는 말차였다.
점차법((點茶法)이란 덩어리 고형차를 다마(茶磨)로 부드럽게 잘 간 다음 가루를 차솥에 넝어 끓이지 않고 찻사발에 직접 넣고 연고(軟膏)와 같이 끈적끈적하게 만든 후 적당히 끓인 물을 부어 다선(茶?)이란 다구로 잘 저어 거품을 내어 마시는 방법이다.
중국(송)은 점차법에 대한 많은 문헌들이 남아있으며 특히 휘종의『대관다론(大觀茶論)』에서 분차(分茶)를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명나라의 건국 태조 황제인 주원장(朱元璋)이 1391년 덩어리 고형차인 단차(團茶)의 제조를 폐지하는 칙령을 내려 이 칙령으로 중국의 말차문화는 영원히 사라지고 포차법(泡茶法)시대가 등장하였다. 포차법은 찻잎을 그대로 직접 다기(茶器)에 넣고 물을 부어 우려내는 오늘날 한국의 다관(茶罐)같은 다호(茶壺)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고려는 송나라의 점차법을 그대로 이어오다가 조선왕조 때 중국과 마찬가지로 맥이 끊어지게 된다. 반면 일본도 송의 말차문화가 가마꾸라 때부터 전파되어 무로마찌 때 다도가 성립되어 오늘날까지 발전시켜왔다.
조선의 실학자인 이익(李益)은『성호사설(聖湖塞說)』에서 조선의 가례(家禮)에서 행하였던 점차법이 고려의 점차법 임을 증명하였으며 이 문헌기록을 일본인들이 보고 오늘날 일본의 다도문화와 거의 같다고 하였다. 따라서 현재 우리의 말차문화가 왜색다도도 사이비다도도 아님을 밝혀주었다.
고려의 말차문화는 고려의 문인(文人)들의 시문집에 탁월한 문학성과 예술성을 나타내는데 큰 영향을 끼쳤으며. 찻그릇인 청자 다완은 도자기의 공예와 기술이 최고의 경지였음을 나타낸다.
고려의 말차문화가 일상생활 속에 평상심(平常心)이 도(道)인 것 같이 다선일미(茶禪一味)의 생활이요 실천이었다.
고려시대의 말차 음다(抹茶飮茶)를 현대의 일상생활에 생활차가 될 수 있도록 말차제다에 개발과 연구가 필요하다.
대기나 환경오염 속에 인간의수명은 늘어나는데 맑은 정신으로 건강하게 오래 살려면 정신보건기능성 음료로 차(茶)가 꼭 필요하다고 본다. 뿐만 아니라 약용, 미용, 식품용 그리고 산업용으로 말차가 다용도로 쓰일 수 있음을 현대의 과학으로 차(茶)의 효능들이 속속들이 밝혀지고 있음에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고려시대의 말차문화는 고려만의 차문화가 아니었다.
고려를 인접한 중국(요, 송)과 주변국인 일본(가마꾸라, 무로마찌)의 말차문화가 함께 하고 있었다. 시간적 간격 차이는 있었지만 말차문화는 서로 동질성과 이질성을 함께 하면서 한(고려), 중(요, 송), 일(가마꾸라, 무로마찌) 삼국이 각자의 독특한 차문화를 형성하였다.
오늘날도 역시 마찬가지로 우리만의 차문화는 있을 수 없다고 본다. 문명과 과학의 발달은 세계를 하나로 공존하는 가운데 주변국들 간에 서로의 관심 속에 차문화를 가꾸어가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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