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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왕릉 석실 및 능상구조의 변천에 관한 연구 = (A) study on the transition of stone chamber and upper structure of king's tombs in Choson dynas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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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www.riss.kr/link?id=T11147153

    • 저자
    • 발행사항

      서울 : 명지대학교, 2008

    • 학위논문사항

      학위논문(박사) -- 명지대학교 대학원 , 건축학과 , 2008

    • 발행연도

      2008

    • 작성언어

      한국어

    • KDC

      610.911 판사항(4)

    • DDC

      720.9519 판사항(21)

    • 발행국(도시)

      서울

    • 형태사항

      xv, 277 p. : 삽화, 도표 ; 26 cm

    • 일반주기명

      참고문헌: p. 229-234

    • 소장기관
      • 국립중앙도서관 국립중앙도서관 우편복사 서비스
      • 명지대학교 인문캠퍼스 도서관 소장기관정보
      • 명지대학교 자연캠퍼스 도서관 소장기관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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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조선은 건국직후부터 고려 말의 문화·정치·경제·사회적 혼란을 불식하고 새로운 집권체제를 구축하려고 노력하였다. 또한 고려시대의 왕릉은 풍수적인 영향으로 구릉지대에 축조되었으며, 광을 깊이 판 덕택에 신라왕릉 보다는 봉분이 작아지게 되었다. 이는 이후 고려와 조선 능제의 기초가 되며 고려 말 공민왕릉은 조선초기 왕릉과 비슷한 형태와 묘제를 갖는다.
    이후 조선은 나라의 토대를 유교적 이념 확립에 두어 전국 각 마을마다 유교적 정치기구를 설립하였다. 또한 유교이념을 위한 주자의 『주자가례』를 비롯한 유교윤리의 실행과 보급 등이 구현되었지만, 한편으로 국가적인 차원에서 의례를 정비하고 시행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이념추구 과정에는 수 없이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먼저 조선초기 국가 의례를 정립하기 위한 노력은 끊임없는 고제연구(古制硏究)를 통해 이루어졌다. 고제연구는 태종대부터 시작하여, 특히 세종대에 학술기관을 중심으로 심도 있는 연구가 진행되어 이후 『세종실록오례의』가 편찬되어 일차적인 정리를 하였다. 이후 성종 5년(1474년)에 더욱 발전시킨 『국조오례의』가 편찬되었으며, 이후 영조 20년(1744년)에 『국조오례의』를 보완하여 『국조속오례의』가 편찬되었다. 이를 다시 영조 28년(1762년)에 들어 『국조상례보편』으로 완성하였다. 이는 조선시대 왕릉을 포함한 정치, 사회, 문화를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며, 특히 제례와 국장, 왕릉 석실묘의 축조 관계를 자세히 알 수 있는 자료이다.
    고려시대에는 품계에 따른 규모와 보수(步數), 봉분 높이 등을 법제화하여 규제하도록 하였는데, 조선시대에도 이와 비슷한 규제가 있었다. 조선시대 묘제를 보면 신분에 따라 능·원·묘로 크게 구분하고 있는데, 왕과 왕비의 묘를 능이라 하고 왕세자와 왕세자비, 왕 친족의 묘를 원, 그 밖에 사대부 일반인들의 묘를 묘라고 하였다. 또한 고려 말의 국장기간은 1개월 이내였고 2달을 넘긴 예가 드물었으나 조선시대에는 5개월로 국장기간을 정하였다.
    조선시대에는 국장을 빈전도감이나 국장도감, 산릉도감의 삼도감(三都監)에 의해 행하도록 하였으며 왕릉의 조성에 관한 부분을 산릉도감에 의해 시행하도록 하였다. 이 산릉도감은 국장에 필요한 입지 선정과 왕릉조성, 석재와 목재 운반 등을 하였으며 왕릉조성에 필요한 역사(役事)를 부리는 역할을 하였다. 또한 의례를 치르고 나서 의례의 전말을 상세하게 기록해 놓은 실행보고서로 산릉도감의궤를 편찬하였다. 그러나 조선중기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그때까지 편찬된 조선전기의 의궤들이 모두 유실되었다. 화재로 인한 소실이 주원인이겠으나 왜병에 의한 약탈도 없지 않았을 것이다. 이에 산릉의궤에 관한 조선전기의 의궤서가 없어 고려에서 이어지는 능제에 대한 연구와 이해가 어려웠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세종실록오례의』와 『국조오례의』, 『국조속오례의』, 『조선왕조실록』을 바탕으로 조선전기의 능제를 포함한 조선왕릉 석실 및 능상구조의 변천과정을 중심으로 본문을 구성하였다. 2장은 서론에 해당하는 부분으로 조선이전 묘제형식로써 능제의 역사적 특징과 성격하는 부분에 해당한다.
    3장은 조선시대 능제의 성격과 변환에 대해 살펴보았다. 건국직후 고려말의 문화, 정치, 사회적 혼란을 불식하고 새로운 집권체계를 구축하려는 노력과 유교이념이 정착되는 시기의 왕릉의 변화와 성격을 고찰하였으며, 오랜 세월동안 유지되어온 조선왕릉 배치방법과 입지 특성 및 침향에 대해 논하였다.
    4장에서는 『세종실록오례의』,『국조오례의』『국조속오례의』, 『의궤서』 등의 고서류를 참조하여 봉분 안에 안치되는 석실과 구조, 형식을 석부재의 용도와 부재의 특징을 설명하였다. 또한 5장에서는 석실 축조방법과 변천에 관하여 서술하였다. 이는 석실 부재간의 맞춤과 이음 등의 결구방법과 석실 부재의 변화, 축조방법, 봉분의 규모와 크기, 형태를 고찰하였으며, 세조 광릉부터 시작된 회곽릉(灰槨陵)의 변화를 조선 왕릉제도의 변천과정을 설명하였다.
    6장에서는 능상에 설치되는 사대석과 석난간, 박석 등의 형식변화와 특징, 부재별 척수규정 등을 설명하였으며, 시대별 변천과정을 통해 왕릉 능상 구조를 살펴보았다.
    7장에서는 능상 축조방법과 변천과정을 중심으로 설명하였으며, 특히 봉분 규모와 축조방법, 상계·중계·하계로 이루어져 있는 층계의 규모와 변천과정은 일정한 상관관계 속에서 변화되는 것을 살펴보았다.
    이상과 같이 문헌자료를 통해 분석된 조선 왕릉의 변천과정을 토대로 현재 잔존하는 현황과 비교하였다. 결과적으로 조선 왕릉 석실구조와 능상의 변천과정은 태종의 능제에서부터 세종의 고제연구로 인한 오례의의 편찬으로 변화됨을 알 수 있었으며 세조의 유명으로 인한 회곽릉과 동원이강릉의 축조는 조선 왕릉의 큰 변화를 주었다. 이후 대한제국의 제릉이 건립되기전까지 이러한 조선 능제는 지속적으로 사용되었다. 따라서 조선 능제의 변천과정을 통해 다소나마 왕릉을 이해하는데 용이해졌을 것으로 생각하며, 새로운 자료와 학술적 연구를 통하여 그간 미개척부분으로 남아있던 조선시대 왕릉 연구에 진전이 있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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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은 건국직후부터 고려 말의 문화·정치·경제·사회적 혼란을 불식하고 새로운 집권체제를 구축하려고 노력하였다. 또한 고려시대의 왕릉은 풍수적인 영향으로 구릉지대에 축조되었으�...

    조선은 건국직후부터 고려 말의 문화·정치·경제·사회적 혼란을 불식하고 새로운 집권체제를 구축하려고 노력하였다. 또한 고려시대의 왕릉은 풍수적인 영향으로 구릉지대에 축조되었으며, 광을 깊이 판 덕택에 신라왕릉 보다는 봉분이 작아지게 되었다. 이는 이후 고려와 조선 능제의 기초가 되며 고려 말 공민왕릉은 조선초기 왕릉과 비슷한 형태와 묘제를 갖는다.
    이후 조선은 나라의 토대를 유교적 이념 확립에 두어 전국 각 마을마다 유교적 정치기구를 설립하였다. 또한 유교이념을 위한 주자의 『주자가례』를 비롯한 유교윤리의 실행과 보급 등이 구현되었지만, 한편으로 국가적인 차원에서 의례를 정비하고 시행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이념추구 과정에는 수 없이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먼저 조선초기 국가 의례를 정립하기 위한 노력은 끊임없는 고제연구(古制硏究)를 통해 이루어졌다. 고제연구는 태종대부터 시작하여, 특히 세종대에 학술기관을 중심으로 심도 있는 연구가 진행되어 이후 『세종실록오례의』가 편찬되어 일차적인 정리를 하였다. 이후 성종 5년(1474년)에 더욱 발전시킨 『국조오례의』가 편찬되었으며, 이후 영조 20년(1744년)에 『국조오례의』를 보완하여 『국조속오례의』가 편찬되었다. 이를 다시 영조 28년(1762년)에 들어 『국조상례보편』으로 완성하였다. 이는 조선시대 왕릉을 포함한 정치, 사회, 문화를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며, 특히 제례와 국장, 왕릉 석실묘의 축조 관계를 자세히 알 수 있는 자료이다.
    고려시대에는 품계에 따른 규모와 보수(步數), 봉분 높이 등을 법제화하여 규제하도록 하였는데, 조선시대에도 이와 비슷한 규제가 있었다. 조선시대 묘제를 보면 신분에 따라 능·원·묘로 크게 구분하고 있는데, 왕과 왕비의 묘를 능이라 하고 왕세자와 왕세자비, 왕 친족의 묘를 원, 그 밖에 사대부 일반인들의 묘를 묘라고 하였다. 또한 고려 말의 국장기간은 1개월 이내였고 2달을 넘긴 예가 드물었으나 조선시대에는 5개월로 국장기간을 정하였다.
    조선시대에는 국장을 빈전도감이나 국장도감, 산릉도감의 삼도감(三都監)에 의해 행하도록 하였으며 왕릉의 조성에 관한 부분을 산릉도감에 의해 시행하도록 하였다. 이 산릉도감은 국장에 필요한 입지 선정과 왕릉조성, 석재와 목재 운반 등을 하였으며 왕릉조성에 필요한 역사(役事)를 부리는 역할을 하였다. 또한 의례를 치르고 나서 의례의 전말을 상세하게 기록해 놓은 실행보고서로 산릉도감의궤를 편찬하였다. 그러나 조선중기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그때까지 편찬된 조선전기의 의궤들이 모두 유실되었다. 화재로 인한 소실이 주원인이겠으나 왜병에 의한 약탈도 없지 않았을 것이다. 이에 산릉의궤에 관한 조선전기의 의궤서가 없어 고려에서 이어지는 능제에 대한 연구와 이해가 어려웠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세종실록오례의』와 『국조오례의』, 『국조속오례의』, 『조선왕조실록』을 바탕으로 조선전기의 능제를 포함한 조선왕릉 석실 및 능상구조의 변천과정을 중심으로 본문을 구성하였다. 2장은 서론에 해당하는 부분으로 조선이전 묘제형식로써 능제의 역사적 특징과 성격하는 부분에 해당한다.
    3장은 조선시대 능제의 성격과 변환에 대해 살펴보았다. 건국직후 고려말의 문화, 정치, 사회적 혼란을 불식하고 새로운 집권체계를 구축하려는 노력과 유교이념이 정착되는 시기의 왕릉의 변화와 성격을 고찰하였으며, 오랜 세월동안 유지되어온 조선왕릉 배치방법과 입지 특성 및 침향에 대해 논하였다.
    4장에서는 『세종실록오례의』,『국조오례의』『국조속오례의』, 『의궤서』 등의 고서류를 참조하여 봉분 안에 안치되는 석실과 구조, 형식을 석부재의 용도와 부재의 특징을 설명하였다. 또한 5장에서는 석실 축조방법과 변천에 관하여 서술하였다. 이는 석실 부재간의 맞춤과 이음 등의 결구방법과 석실 부재의 변화, 축조방법, 봉분의 규모와 크기, 형태를 고찰하였으며, 세조 광릉부터 시작된 회곽릉(灰槨陵)의 변화를 조선 왕릉제도의 변천과정을 설명하였다.
    6장에서는 능상에 설치되는 사대석과 석난간, 박석 등의 형식변화와 특징, 부재별 척수규정 등을 설명하였으며, 시대별 변천과정을 통해 왕릉 능상 구조를 살펴보았다.
    7장에서는 능상 축조방법과 변천과정을 중심으로 설명하였으며, 특히 봉분 규모와 축조방법, 상계·중계·하계로 이루어져 있는 층계의 규모와 변천과정은 일정한 상관관계 속에서 변화되는 것을 살펴보았다.
    이상과 같이 문헌자료를 통해 분석된 조선 왕릉의 변천과정을 토대로 현재 잔존하는 현황과 비교하였다. 결과적으로 조선 왕릉 석실구조와 능상의 변천과정은 태종의 능제에서부터 세종의 고제연구로 인한 오례의의 편찬으로 변화됨을 알 수 있었으며 세조의 유명으로 인한 회곽릉과 동원이강릉의 축조는 조선 왕릉의 큰 변화를 주었다. 이후 대한제국의 제릉이 건립되기전까지 이러한 조선 능제는 지속적으로 사용되었다. 따라서 조선 능제의 변천과정을 통해 다소나마 왕릉을 이해하는데 용이해졌을 것으로 생각하며, 새로운 자료와 학술적 연구를 통하여 그간 미개척부분으로 남아있던 조선시대 왕릉 연구에 진전이 있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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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Table of Contents)

    • 제1장 서론 1
    • 1.1 연구목적 1
    • 1.2 연구방법 및 범위 5
    • 1.3 연구사 10
    • 제1장 서론 1
    • 1.1 연구목적 1
    • 1.2 연구방법 및 범위 5
    • 1.3 연구사 10
    • 제2장 조선이전 묘제형식 고찰 13
    • 2.1 고대 묘제 13
    • 2.2 삼국 묘제 16
    • 2.2.1 고구려 16
    • 2.2.2 백제 18
    • 2.2.3 신라 21
    • 2.3 통일신라 묘제 22
    • 2.4 고려 묘제 27
    • 제3장 조선 능제의 성격과 변환 37
    • 3.1 조선 능제의 정착 37
    • 3.1.1 능제의 정착 37
    • 3.1.2 왕릉의 일반적 고찰 41
    • 3.1.3 국장 절차과정 51
    • 3.2 조선 왕릉 개관 및 특성 57
    • 3.2.1 왕릉 입지와 침향 57
    • 3.2.2 왕릉 배치와 변화 73
    • 제4장 석실 구조와 형식 101
    • 4.1 단릉과 합장릉의 석실 형성과정 101
    • 4.1.1 고려말 석실제도 도입 101
    • 4.1.2 단릉과 쌍릉 구조 103
    • 4.1.3 합장릉의 형성 107
    • 4.2 석실 부재와 결구형식 110
    • 4.2.1 단릉과 쌍릉 결구형식 110
    • 4.2.2 합장릉 결구구조 112
    • 제5장 석실 축조와 변천 119
    • 5.1 천광 축조과정 119
    • 5.2 석실 축조 및 변천과정 130
    • 5.2.1 단릉과 쌍릉 축조방법 130
    • 5.2.2 五禮儀의 축조방법과 변천 134
    • 5.3 회곽릉 도입과 조성 142
    • 제6장 능상구조 특징과 형식변화 149
    • 6.1 능상 부재의 특징과 변화 149
    • 6.1.1 사대석 구조와 변화 149
    • 6.1.2 난간석 구조와 특징 153
    • 6.1.3 석물 척수규정과 양식변화 157
    • 6.2 능상 부재 결구형식 178
    • 6.2.1 사대석 결구형식과 변화 178
    • 6.2.2 난간석의 결구형식 183
    • 6.2.3 박석구조의 변화 185
    • 제7장 능상 축조 및 변천 189
    • 7.1 사대석과 난간석 축조방법 189
    • 7.1.1 사대석 189
    • 7.1.2 난간석 195
    • 7.2 봉분의 규모와 축조 197
    • 7.2.1 구조와 규모검토 197
    • 7.2.2 봉분 축조방법 201
    • 7.3 곡장 재료와 형식변천 209
    • 7.4 층계의 규모와 변천 215
    • 제8장 결론 223
    • 참고문헌 229
    • 부록 237
    • ABSTRACT 2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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