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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시대 선상기(選上妓)에 의한 궁중정재와 민간연희의 교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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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www.riss.kr/link?id=A76249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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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이 연구의 목적은 선상기(選上妓)에 의해 궁중 정재와 민간의 연희가 서로 교섭되는 양상을 밝힘으로써 ‘상하층 문화의 상호 교류’라는 균형적인 영향관계를 규명하는 데 있다. 전문적인 악가무(樂歌舞)를 필수조건으로 하는 정재의 특성상, 궁중에는 오래 전부터 이들을 전문적으로 교육하던 기관이 존재했으며, 여기서 배출된 기녀들이 오랜 기간 동안 궁중의 정재를 담당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에 따라 3장에서는 궁중 정재 연행의 주체였던 기녀들이 뽑혀 올라오고 다시 돌아갔던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구체적인 사료(使料)를 찾아서 궁중 정재가 지방 관아로 전파되는 시기를 확인하였다. 조선시대에는 전기부터 정기적으로 지방에서 뽑혀 올라와 ‘경기(京妓)’으로 일하던 기녀들이 다시 자신이 속해 있던 관아로 돌아가면서, 궁중의 정재를 지방 관아로 전파하게 되었다. 특히 조선 후기에는 진연이 있을 때만 잠깐 서울로 올라와 정재에 참여하였다가 다시 자신이 속해 있던 관아로 돌아가는 예가 잦아지면서 궁중 정재가 지방과 민간으로 급속하게 퍼져 나가게 되었다. 정재(呈才)를 위해 서울에 왔던 안주기(安州妓) 양대운(陽臺雲), 그리고 공주기(公州妓) 해월(海月)의 예를 통하여 기록상으로도 명확하게 여기들이 서울로 올라왔다가 귀향한 사실을 확인하였다. 이 과정에서 궁중 정재의 모습은 상당한 변화를 가져왔다. 평양, 안주, 의주, 선천 등지와, 진주 교방에서 연행되었던 정재는, 의상과 연행 규모 면에서 궁중과는 다른 모습을 보였다.
      4장에서는 반대로 민간의 연희가 궁중으로 들어온 예를 찾았다. 검무와 항장무ㆍ사자무ㆍ관동무와 같은 것은 궁중보다 민간에서 먼저 연행되었는데, 이들 연희가 궁중으로 들어온 데는 지방에서 올라온 여기(女妓)들이 직간접적으로 많은 영향을 미쳤음을 문헌을 통해 확인하였다. 그러나 민간의 연희가 궁중으로 들어오는 과정에서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연행 장소와 참여 계층이 다르고, 연행 목적이 다르기 때문에 민간에서 연행하던 것과 같은 내용과 형식으로 공연할 수 없었다. 궁중이라는 특정 장소와, 왕실이라는 특정 계층을 위해 연행할 수 있도록, 연행 규모는 커졌으며 의상도 화려해지고, 정재에 참여하는 여기의 숫자도 많아졌다.
      이러한 연구를 통하여, 조선시대에는 선상기에 의하여 궁중의 연희가 민간으로, 민간의 연희가 궁중으로 유입되면서 상하층의 문화가 상호 교섭되는 양상을 구체적으로 확인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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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연구의 목적은 선상기(選上妓)에 의해 궁중 정재와 민간의 연희가 서로 교섭되는 양상을 밝힘으로써 ‘상하층 문화의 상호 교류’라는 균형적인 영향관계를 규명하는 데 있다. 전문적인 ...

      이 연구의 목적은 선상기(選上妓)에 의해 궁중 정재와 민간의 연희가 서로 교섭되는 양상을 밝힘으로써 ‘상하층 문화의 상호 교류’라는 균형적인 영향관계를 규명하는 데 있다. 전문적인 악가무(樂歌舞)를 필수조건으로 하는 정재의 특성상, 궁중에는 오래 전부터 이들을 전문적으로 교육하던 기관이 존재했으며, 여기서 배출된 기녀들이 오랜 기간 동안 궁중의 정재를 담당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에 따라 3장에서는 궁중 정재 연행의 주체였던 기녀들이 뽑혀 올라오고 다시 돌아갔던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구체적인 사료(使料)를 찾아서 궁중 정재가 지방 관아로 전파되는 시기를 확인하였다. 조선시대에는 전기부터 정기적으로 지방에서 뽑혀 올라와 ‘경기(京妓)’으로 일하던 기녀들이 다시 자신이 속해 있던 관아로 돌아가면서, 궁중의 정재를 지방 관아로 전파하게 되었다. 특히 조선 후기에는 진연이 있을 때만 잠깐 서울로 올라와 정재에 참여하였다가 다시 자신이 속해 있던 관아로 돌아가는 예가 잦아지면서 궁중 정재가 지방과 민간으로 급속하게 퍼져 나가게 되었다. 정재(呈才)를 위해 서울에 왔던 안주기(安州妓) 양대운(陽臺雲), 그리고 공주기(公州妓) 해월(海月)의 예를 통하여 기록상으로도 명확하게 여기들이 서울로 올라왔다가 귀향한 사실을 확인하였다. 이 과정에서 궁중 정재의 모습은 상당한 변화를 가져왔다. 평양, 안주, 의주, 선천 등지와, 진주 교방에서 연행되었던 정재는, 의상과 연행 규모 면에서 궁중과는 다른 모습을 보였다.
      4장에서는 반대로 민간의 연희가 궁중으로 들어온 예를 찾았다. 검무와 항장무ㆍ사자무ㆍ관동무와 같은 것은 궁중보다 민간에서 먼저 연행되었는데, 이들 연희가 궁중으로 들어온 데는 지방에서 올라온 여기(女妓)들이 직간접적으로 많은 영향을 미쳤음을 문헌을 통해 확인하였다. 그러나 민간의 연희가 궁중으로 들어오는 과정에서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연행 장소와 참여 계층이 다르고, 연행 목적이 다르기 때문에 민간에서 연행하던 것과 같은 내용과 형식으로 공연할 수 없었다. 궁중이라는 특정 장소와, 왕실이라는 특정 계층을 위해 연행할 수 있도록, 연행 규모는 커졌으며 의상도 화려해지고, 정재에 참여하는 여기의 숫자도 많아졌다.
      이러한 연구를 통하여, 조선시대에는 선상기에 의하여 궁중의 연희가 민간으로, 민간의 연희가 궁중으로 유입되면서 상하층의 문화가 상호 교섭되는 양상을 구체적으로 확인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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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In this paper, I try to examine the relationship of the high and the low classes cultural interchange through the relative aspect of the Royal Dances and the Folk Plays.
      For examining this problems, I confirm that the time when the royal dances spreaded the local authorities as I found the materials for history which the dancers who played the royal dances were picked up in the local area and entered the palace and then went back to their local authorities after they finished their role. In early Joseon Dynasty, the dancer from local authorities worked at the palace as the Keong-dancers and then they went back to their local authorities. Through this process, the royal dances spreaded over the local authorities. Especially in the late foseon Dynasty. the royal dances spreaded rapidly over the local and the folks because the royal dancers often joined the Court Banquets in Seoul and went back the local authorities as soon as it finished. I can confirm this because of the records which the local dancers such as Anju-dancer Yangdaewun and Kongju-dancer Haeweol joined the Court Banquets in Seoul. Through this system, the royal dances were changed a lot. The local dances were different from the royal dances for example the clothes and the scale.
      On the other hand Gummu, Hangjangmu, Sajamu, and Gwandongmu played in the local authorities before it played in the palace. I confirm it from the documents that the royal dances accommodated the local plays through the local female dancers. However there were many changes the process of incoming the local plays into the royal dances. Because of the different places, purposes, and classes, the local plays couldn't play the same stories and forms in the palace. In order to play this local plays in the palace, the scale was bigger, the clothes were luxury, and the more female dancers joined.
      Through this research, I can confirm the culture of the high and the low classes were connected with each other because the royal dances accommodated the folk plays vice ver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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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n this paper, I try to examine the relationship of the high and the low classes cultural interchange through the relative aspect of the Royal Dances and the Folk Plays. For examining this problems, I confirm that the time when the royal dances spr...

      In this paper, I try to examine the relationship of the high and the low classes cultural interchange through the relative aspect of the Royal Dances and the Folk Plays.
      For examining this problems, I confirm that the time when the royal dances spreaded the local authorities as I found the materials for history which the dancers who played the royal dances were picked up in the local area and entered the palace and then went back to their local authorities after they finished their role. In early Joseon Dynasty, the dancer from local authorities worked at the palace as the Keong-dancers and then they went back to their local authorities. Through this process, the royal dances spreaded over the local authorities. Especially in the late foseon Dynasty. the royal dances spreaded rapidly over the local and the folks because the royal dancers often joined the Court Banquets in Seoul and went back the local authorities as soon as it finished. I can confirm this because of the records which the local dancers such as Anju-dancer Yangdaewun and Kongju-dancer Haeweol joined the Court Banquets in Seoul. Through this system, the royal dances were changed a lot. The local dances were different from the royal dances for example the clothes and the scale.
      On the other hand Gummu, Hangjangmu, Sajamu, and Gwandongmu played in the local authorities before it played in the palace. I confirm it from the documents that the royal dances accommodated the local plays through the local female dancers. However there were many changes the process of incoming the local plays into the royal dances. Because of the different places, purposes, and classes, the local plays couldn't play the same stories and forms in the palace. In order to play this local plays in the palace, the scale was bigger, the clothes were luxury, and the more female dancers joined.
      Through this research, I can confirm the culture of the high and the low classes were connected with each other because the royal dances accommodated the folk plays vice ver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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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Table of Contents)

      • [국문초록]
      • 1. 서론
      • 2. 선상기(選上妓) 제도와 관기(官妓) 제도
      • 3. 관기(官妓)의 선상(選上)과 귀향(歸鄕)
      • 4. 궁중 정재의 전파
      • [국문초록]
      • 1. 서론
      • 2. 선상기(選上妓) 제도와 관기(官妓) 제도
      • 3. 관기(官妓)의 선상(選上)과 귀향(歸鄕)
      • 4. 궁중 정재의 전파
      • 5. 민간 연희의 궁중 정재화
      • 6. 결론
      •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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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1 김학주, "한중 두 나라의 가무와 잡희" 서울대출판부 1994

      2 "한국전통연희사" 2004

      3 "한국전통무용연구" 일지사 1981

      4 정병호, "한국의 전통춤" 집문당 1999

      5 윤광봉, "한국연희시연구" 1997

      6 "한국 가면극, 그 역사와 원리" 열화당 1998

      7 "조선후기의 鄕妓와 궁중정재" 민속원 2002

      8 "조선후기 選上妓의 사회제도사적 접근-순조 기축년  진찬의궤 를 중심으로" 국립국악원 제7집 : 1995

      9 이능화, "조선해어화사" 동문선 1992

      10 "조선조 1718세기 女樂과 男樂" 한국음악사학회 제11집 : 1993

      1 김학주, "한중 두 나라의 가무와 잡희" 서울대출판부 1994

      2 "한국전통연희사" 2004

      3 "한국전통무용연구" 일지사 1981

      4 정병호, "한국의 전통춤" 집문당 1999

      5 윤광봉, "한국연희시연구" 1997

      6 "한국 가면극, 그 역사와 원리" 열화당 1998

      7 "조선후기의 鄕妓와 궁중정재" 민속원 2002

      8 "조선후기 選上妓의 사회제도사적 접근-순조 기축년  진찬의궤 를 중심으로" 국립국악원 제7집 : 1995

      9 이능화, "조선해어화사" 동문선 1992

      10 "조선조 1718세기 女樂과 男樂" 한국음악사학회 제11집 : 1993

      11 국립중앙박물관, "조선시대풍속화" 국립중앙박물관 2003

      12 서인화, "조선시대 진연 진찬 진하병풍" 국립국악원 2000

      13 고려대학교 박물관, "조선시대 기록화의 세계" 고려대학교 박물관 2001

      14 "조선시대 궁중연향과 여악 연구" 민속원 2001

      15 김일출, "조선민속탈놀이연구" 과학원출판사 1958

      16 한영우, "정조의 화성행차 그 8일" 효형출판 1998

      17 임미선, "정조대의 예술과 과학, 1795년 화성에서의 진찬과 양로연, 원행을묘정리의궤" 문헌과해석사 2000

      18 정은혜, "정재연구 1" 대광문화사 1993

      19 "정재  항장무 의 연희전승과 극 연출 방식" 고려대민족문화연구원 (36) : 2002

      20 김동욱, "이조기녀사서설(사대부와 기녀)" 숙명여대 아세아문제연구소 제5집 : 1966

      21 "우희(優戱)와 판소리가면극의 관련 양상" 한국민속학회 34 : 2001

      22 이형대, "어부 형상의 시가사적 전개와 세계 인식, 한국 고전시가와 인물 형상의 동아시아적 변전" 소명출판 2002

      23 신경숙, "안민영과 기녀" 한성대 (10) : 1999

      24 "숙종말 영조초의 당악정재와 향악정재" 민속원 1999

      25 김은정, "선천의  항장무 를 보고" 문헌과해석사 (봄호(통권 18호)) : 2002

      26 "선유락과 어부사" 문헌과해석사 (8) : 1999

      27 사진실, "선유락 의 공연 양상과 연극사적 의의" 동양연극학회 (1) : 2000

      28 전경욱, "북청사자놀음" 문화재청 2001

      29 성무경, "교방가요를 통해 본 19세기 중후반 지방의 관변 풍류" 한국시조학회 17 : 2001

      30 임미선, "교방가요(敎坊歌謠) 소재 선락(船樂)의 형성 배경과 연행방식" 국어문학회 35집 : 2000

      31 "공연문화의 전통" 태학사 2002

      32 이용기 편,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소" 1992.

      33 "英朝朝 進宴 및 純祖朝 進饌의 呈才女伶攷" 한국문화연구소 제17집 : 1996

      34 송방송, "18세기 전기의 당악정재와 향악정재" 진단학회 (85) : 1998

      35 김종수, "18세기 이후 內宴의 樂歌舞 差備 考察" 한국음악사학회 20집 :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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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 평가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2020-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KCI등재
      2017-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KCI등재
      2013-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10-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8-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5-01-01 등재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KCI등재
      2004-01-01 등재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2002-07-01 등재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KCI등재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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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준연도 WOS-KCI 통합IF(2년) KCIF(2년) KCIF(3년)
      2016 0.52 0.52 0.53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0.59 0.64 0.965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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