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SS 학술연구정보서비스

검색

인기 검색어

    다국어 입력

    http://chineseinput.net/에서 pinyin(병음)방식으로 중국어를 변환할 수 있습니다.

    변환된 중국어를 복사하여 사용하시면 됩니다.

    예시)
    • 中文 을 입력하시려면 zhongwen을 입력하시고 space를누르시면됩니다.
    • 北京 을 입력하시려면 beijing을 입력하시고 space를 누르시면 됩니다.
    닫기
    KCI등재

    장유의 사유방식에 대한 한 이해-생태학적 인식의 모색- = A Study on Jang Yu's Way of Thinking-focused on the ecological cognition-

    한글로보기

    https://www.riss.kr/link?id=A104143356

    • 0

      상세조회
    • 0

      다운로드
    서지정보 열기
    • 내보내기
    • 내책장담기
    • 공유하기
    • 오류접수

    부가정보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This paper is an essay on researching the ecological cognition resident in Jang Yu(張維: 1587∼1638)'s way of thinking.
    Jang Yu asserted it as follow "there is no scholar in our country(我國無學者)", his opinion is due to the opened mind-正學 can't advance without 雜學. He maintained that the mutual control between 正學 and 雜學 set scholars on 實得.
    Jang Yu's concern is concentrated on 氣. Specially, he said "氣 of the entire life thing is '太虛之氣'. So according to his theory, it is impossible to form a judgement on 氣 from a point of view-'good and bad(善惡)', 'superiority and inferiority(優劣)' and 'purity and impurity(淸濁)'.
    Jang Yu considered human being and society as the part organically connected with the infinite. He attempted to climb over the discriminative cognition and propose the equal origin of life by regarding life in the same light with death.
    Jang Yu denied the transcendental worth of culture and history, regarding these as the passing thing. In result, he freed himself from the human-centered way of thinking and came to the ground-it is possible to endow the entire life thing with the equal value. So it may be called 'the conversion to the ecological cognition'.
    번역하기

    This paper is an essay on researching the ecological cognition resident in Jang Yu(張維: 1587∼1638)'s way of thinking. Jang Yu asserted it as follow "there is no scholar in our country(我國無學者)", his opinion is due to the opened mind-正...

    This paper is an essay on researching the ecological cognition resident in Jang Yu(張維: 1587∼1638)'s way of thinking.
    Jang Yu asserted it as follow "there is no scholar in our country(我國無學者)", his opinion is due to the opened mind-正學 can't advance without 雜學. He maintained that the mutual control between 正學 and 雜學 set scholars on 實得.
    Jang Yu's concern is concentrated on 氣. Specially, he said "氣 of the entire life thing is '太虛之氣'. So according to his theory, it is impossible to form a judgement on 氣 from a point of view-'good and bad(善惡)', 'superiority and inferiority(優劣)' and 'purity and impurity(淸濁)'.
    Jang Yu considered human being and society as the part organically connected with the infinite. He attempted to climb over the discriminative cognition and propose the equal origin of life by regarding life in the same light with death.
    Jang Yu denied the transcendental worth of culture and history, regarding these as the passing thing. In result, he freed himself from the human-centered way of thinking and came to the ground-it is possible to endow the entire life thing with the equal value. So it may be called 'the conversion to the ecological cognition'.

    더보기

    국문 초록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본고는 張維(字: 持國, 1587∼1638)의 사유방식에 내재되어 있는 생태학적 인식을 모색하고자 하는 시론이다. 장유는 우리나라에는 학자가 없다 (我國無學者)고 주장하는데, 이는 雜學이 없이는 正學도 발전할 수 없다는 개방된 인식에서 나온 것이다. 그는 잡학과 정학의 상호 견제, 발전이 학자들을 '實得'으로 이끈다고 주장했다. 장유는 주자 철학의 핵심인 理氣論에서 理가 차지하는 절대적 우위, 보편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의 탐색과 사유는 氣에 집중되어 있다. 특히 '太虛의 氣'에 대해 깊이 사유한다. 그는 사람에게 있는 것은 모두가 氣質之性이라 하면서, '사람과 다른 생물들의 기는 바로 太虛의 기'라고 주장한다. 장유는 '氣는 선하다'고 단언하여 기에 선악, 우열, 청탁의 차별이 없다고 하였다. 기는 가치 판단의 대상이 아닌 것이다.장유는 유기체의 소멸, 죽음을 적극적으로 사고하였다. 그는 죽음에 대한 성찰을 통해 삶의 주체(各一, 我我)가 이욕의 굴레에서 벗어나 절대 자유를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이런 방식은 天人合一이나 道의 體現이라는 도학적 사유와는 거리가 먼 것이다. 장유는 道體의 내면적 응시를 통한 내재적 초월을 추구한 도학자가 아니었다. 그는 전 생애를 통하여 四端의 지속적 확충을 추구하는 修養論도 신뢰하지 않았다. 장유는 인간의 존재, 사회를 개별적, 차별적 차원이 아니라 전우주의 공간, 시간과 유기적 관련을 지닌 '전체 중의 부분'으로 접근하여 사유한 것이다. 그는 삶과 죽음을 동일시하는 사고를 통해 형체의 간격, 사물의 차별을 극복하고 생명 근원의 동일성을 자각하고자 하였다. 그의 죽음에 대한 성찰은 공간과 시간에 대한 무한대적 확장으로 이어진다. 장유는 이런 사유를 거처 虛名과 利益의 노예가 되기 쉬운 인간에게 현실적 조건을 뛰어 넘어 진정한 가치를 추구하기를 권한다. 장유는 문화, 역사의 초월적 가치를 부정한다. 문명의 역사, 계몽의 진리까지도 小와 速의 대상으로 만들어 버린다. 그는 人類가 존중하는 문화, 가치 체계도 '홀연히 있게 되었다가 눈 깜작할 사이에 없어지고 마는' 일시적인 대상으로 본다. 전 우주에서 나의 존재와 나의 삶 이전과 이후의 시간을 함께 사유한다면, 있는 것(有: 존재, 삶)이 잠시(暫)가 되고 오히려 없는 것(無: 소멸, 죽음)이 정상적인 상태(常)라는 것을 인정하게 될 것이다. 역사, 문화부터 부귀영화와 장수를 추구하는 인간의 욕망까지 인간 중심적 사고 전체가 한갓 꿈이 되는 순간이다.장유의 횡단적 사유의 기저에는 正學과 雜學, 經書와 緯書를 통괄하는 지적 탐색, 성찰이 있었다. 좀 더 적극적으로 해석하자면, 장유는 죽음과 삶에 대한 통합적 인식, 평등한 기론을 통하여 인간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나 모든 생명체의 동일한 가치를 인정하는 지점까지 이를 수 있었다. 거침없이 전개되는 장유의 논변을 따라가 보면, 그 기저에 인간의 선험적 인지능력과 理의 절대성을 부정하는 파격적 사유의 단초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부분에서 가히 생태학적 인식으로의 전환이라고 이름할 수 있을 것이다. 장유의 경우에는 자신의 존재에 대한 小와 速의 인식에서 그 가능성이 열렸다. 이런 시각은 인간을 만물의 영장, 특이한 존재로 특화시키는 데서 탈피하여 생태계의 그물망을 이루는 하나의 고리로 인식할 때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번역하기

    본고는 張維(字: 持國, 1587∼1638)의 사유방식에 내재되어 있는 생태학적 인식을 모색하고자 하는 시론이다. 장유는 우리나라에는 학자가 없다 (我國無學者)고 주장하는데, 이는 雜學이 없이...

    본고는 張維(字: 持國, 1587∼1638)의 사유방식에 내재되어 있는 생태학적 인식을 모색하고자 하는 시론이다. 장유는 우리나라에는 학자가 없다 (我國無學者)고 주장하는데, 이는 雜學이 없이는 正學도 발전할 수 없다는 개방된 인식에서 나온 것이다. 그는 잡학과 정학의 상호 견제, 발전이 학자들을 '實得'으로 이끈다고 주장했다. 장유는 주자 철학의 핵심인 理氣論에서 理가 차지하는 절대적 우위, 보편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의 탐색과 사유는 氣에 집중되어 있다. 특히 '太虛의 氣'에 대해 깊이 사유한다. 그는 사람에게 있는 것은 모두가 氣質之性이라 하면서, '사람과 다른 생물들의 기는 바로 太虛의 기'라고 주장한다. 장유는 '氣는 선하다'고 단언하여 기에 선악, 우열, 청탁의 차별이 없다고 하였다. 기는 가치 판단의 대상이 아닌 것이다.장유는 유기체의 소멸, 죽음을 적극적으로 사고하였다. 그는 죽음에 대한 성찰을 통해 삶의 주체(各一, 我我)가 이욕의 굴레에서 벗어나 절대 자유를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이런 방식은 天人合一이나 道의 體現이라는 도학적 사유와는 거리가 먼 것이다. 장유는 道體의 내면적 응시를 통한 내재적 초월을 추구한 도학자가 아니었다. 그는 전 생애를 통하여 四端의 지속적 확충을 추구하는 修養論도 신뢰하지 않았다. 장유는 인간의 존재, 사회를 개별적, 차별적 차원이 아니라 전우주의 공간, 시간과 유기적 관련을 지닌 '전체 중의 부분'으로 접근하여 사유한 것이다. 그는 삶과 죽음을 동일시하는 사고를 통해 형체의 간격, 사물의 차별을 극복하고 생명 근원의 동일성을 자각하고자 하였다. 그의 죽음에 대한 성찰은 공간과 시간에 대한 무한대적 확장으로 이어진다. 장유는 이런 사유를 거처 虛名과 利益의 노예가 되기 쉬운 인간에게 현실적 조건을 뛰어 넘어 진정한 가치를 추구하기를 권한다. 장유는 문화, 역사의 초월적 가치를 부정한다. 문명의 역사, 계몽의 진리까지도 小와 速의 대상으로 만들어 버린다. 그는 人類가 존중하는 문화, 가치 체계도 '홀연히 있게 되었다가 눈 깜작할 사이에 없어지고 마는' 일시적인 대상으로 본다. 전 우주에서 나의 존재와 나의 삶 이전과 이후의 시간을 함께 사유한다면, 있는 것(有: 존재, 삶)이 잠시(暫)가 되고 오히려 없는 것(無: 소멸, 죽음)이 정상적인 상태(常)라는 것을 인정하게 될 것이다. 역사, 문화부터 부귀영화와 장수를 추구하는 인간의 욕망까지 인간 중심적 사고 전체가 한갓 꿈이 되는 순간이다.장유의 횡단적 사유의 기저에는 正學과 雜學, 經書와 緯書를 통괄하는 지적 탐색, 성찰이 있었다. 좀 더 적극적으로 해석하자면, 장유는 죽음과 삶에 대한 통합적 인식, 평등한 기론을 통하여 인간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나 모든 생명체의 동일한 가치를 인정하는 지점까지 이를 수 있었다. 거침없이 전개되는 장유의 논변을 따라가 보면, 그 기저에 인간의 선험적 인지능력과 理의 절대성을 부정하는 파격적 사유의 단초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부분에서 가히 생태학적 인식으로의 전환이라고 이름할 수 있을 것이다. 장유의 경우에는 자신의 존재에 대한 小와 速의 인식에서 그 가능성이 열렸다. 이런 시각은 인간을 만물의 영장, 특이한 존재로 특화시키는 데서 탈피하여 생태계의 그물망을 이루는 하나의 고리로 인식할 때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더보기

    참고문헌 (Reference)

    1 이동환, "「조선후기 천기론의 개념 및 미학이념과 그 문예 사상사적 연관」" 28 : 2001

    2 정연봉, "「조선전기 성정의론과 장유의 천기론」 민족문화연구 23" 1990

    3 김상일, "「장유의 천기적 시의식과 창달의 시풍」" 21 : 1999

    4 김은정, "「장유의 잡체시 연구」" 11 : 199-236, 2003

    5 우응순, "「장유의 양명학적 세계관과 시세계-안산 우거 시절을 중심으로」" 29 : 35-59, 2003

    6 정민, "「임진시기 문인지식인층의 明軍 교유와 그 의미」" 태학사 101-137, 1999

    7 강민경, "「이수광 유선시의 환상과 초월」" 26 : 2000

    8 김세정, "「생태계의 위기와 유가 생태철학의 발전 방향」" 85 : 2003

    9 최석기, "「계곡 장유의 학문정신과 문론」 한국한문학연구 910집" 1987

    10 지두환, "「계곡 장유의 생애와 사상-한국양명학 성립과 관련하여-」 태동고전연구 7" 1991

    1 이동환, "「조선후기 천기론의 개념 및 미학이념과 그 문예 사상사적 연관」" 28 : 2001

    2 정연봉, "「조선전기 성정의론과 장유의 천기론」 민족문화연구 23" 1990

    3 김상일, "「장유의 천기적 시의식과 창달의 시풍」" 21 : 1999

    4 김은정, "「장유의 잡체시 연구」" 11 : 199-236, 2003

    5 우응순, "「장유의 양명학적 세계관과 시세계-안산 우거 시절을 중심으로」" 29 : 35-59, 2003

    6 정민, "「임진시기 문인지식인층의 明軍 교유와 그 의미」" 태학사 101-137, 1999

    7 강민경, "「이수광 유선시의 환상과 초월」" 26 : 2000

    8 김세정, "「생태계의 위기와 유가 생태철학의 발전 방향」" 85 : 2003

    9 최석기, "「계곡 장유의 학문정신과 문론」 한국한문학연구 910집" 1987

    10 지두환, "「계곡 장유의 생애와 사상-한국양명학 성립과 관련하여-」 태동고전연구 7" 1991

    11 이의철, "「계곡 장유 인식론의 다층적 양상 연구」" 25 : 113-168, 2002

    12 이동환, "「漢文學 解釋論理의 一摸索-仁의 內涵과 관련하여」" 창립 20주년 특별호 123-132, 1996

    13 강명관, "「16세기 17세기 초 진한고문파의 산문비평론」" 41 : 167-205, 2002

    14 박희병, "한국의 생태사상" 돌베개 1999

    15 한명기, "임진왜란과 한중관계" 역사와 비평사 1999

    16 박희병, "운화와 근대" 돌베개 2003

    17 김욱동, "생태학적 상상력" 나무 심는 사람 2003

    18 한국기호학회 편, "생태주의와 기호학 문학과 지성사" 문학과 지성사 2001

    19 이강수, "노자와 장자" 길 1997

    20 최중석, "나정암과 이퇴계의 철학사상" 삼산 2002

    21 정민, "16,17세기 유선시의 자료개관과 출현동인" 국학자료원, 1995

    더보기

    동일학술지(권/호) 다른 논문

    동일학술지 더보기

    더보기

    분석정보

    View

    상세정보조회

    0

    Usage

    원문다운로드

    0

    대출신청

    0

    복사신청

    0

    EDDS신청

    0

    동일 주제 내 활용도 TOP

    더보기

    주제

    연도별 연구동향

    연도별 활용동향

    연관논문

    연구자 네트워크맵

    공동연구자 (7)

    유사연구자 (20) 활용도상위20명

    인용정보 인용지수 설명보기

    학술지 이력

    학술지 이력
    연월일 이력구분 이력상세 등재구분
    2027 평가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2021-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KCI등재
    2018-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17-10-30 학회명변경 영문명 : 미등록 -> Society for Korean Literature in Classical Chinese KCI등재
    2017-10-12 학술지명변경 외국어명 : Journal of Korean literature in Hanmun -> Journal of Korean Literature in Classical Chinese KCI등재
    2015-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11-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9-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7-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4-01-01 등재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KCI등재
    2003-01-01 등재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2002-01-01 등재 등재후보학술지 유지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1999-07-01 등재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KCI등재후보
    더보기

    학술지 인용정보

    학술지 인용정보
    기준연도 WOS-KCI 통합IF(2년) KCIF(2년) KCIF(3년)
    2016 0.77 0.77 0.79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0.9 0.86 1.77 0.28
    더보기

    이 자료와 함께 이용한 RISS 자료

    나만을 위한 추천자료

    해외이동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