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구는 1966년 3월 체결된 ‘브라운 각서’를 통해 제3세계 열전의 적극적 참여를 위해 ‘발전’을 추구했던 한국 ‘발전국가’의 역설에 주목했다. 박정희 정권은 ‘브라운 각서’를 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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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1966년 3월 체결된 ‘브라운 각서’를 통해 제3세계 열전의 적극적 참여를 위해 ‘발전’을 추구했던 한국 ‘발전국가’의 역설에 주목했다. 박정희 정권은 ‘브라운 각서’를 공...
본 연구는 1966년 3월 체결된 ‘브라운 각서’를 통해 제3세계 열전의 적극적 참여를 위해 ‘발전’을 추구했던 한국 ‘발전국가’의 역설에 주목했다. 박정희 정권은 ‘브라운 각서’를 공개하면서 한국군 현대화에 대해서는 실제 내용보다 더 많은 것을 얻어낸 것처럼 과장했고, 해외 근무수당 및 전사상자 보상금과 같이 한국군 ‘용병론’의 근거가 될 만한 내용은 비공개했다.
박정희 정권이 재선 이후 본격적으로 ‘브라운 각서’의 이행 수준에 대해 불만을 제기하자 미국은 한미공동실무작업반을 통해 ‘브라운 각서’의 이행 수준을 거의 100%에 근접한 것으로 평가했다. 한국 측은 1968~1969년까지도 이행 수준을 부정적으로 평가했지만 언론과 야당의 책임 추궁에 직면하여 미국의 해석에 손을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이처럼 브라운 각서’는 파병을 통한 ‘발전’을 추구하면서도 군사적, 경제적 성과를 실제보다 과장해야 했던 박정희식 ‘발전국가’의 역설을 지탱하는데 활용되었다. 본 연구는 박정희 정권을 경제성장의 상징으로 이해해 온 기존 인식을 비판적으로 재검토하고, 냉전과 개발의 결합이 낳은 한국 ‘발전국가’의 역설을 이해하는데 기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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