谿谷 張維(1587~1638)는 임병양란과 인조반정 등 내우외환의 어려운 환경에서 고위 관직을 두루 역임한 정치가이자 사상가이다. 그는 조선 후기 문화 사상계의 주요 담론이 된 眞假論과 그 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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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명남 (성균관대학교)
2025
Korean
KCI등재
학술저널
195-213(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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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운로드谿谷 張維(1587~1638)는 임병양란과 인조반정 등 내우외환의 어려운 환경에서 고위 관직을 두루 역임한 정치가이자 사상가이다. 그는 조선 후기 문화 사상계의 주요 담론이 된 眞假論과 그 바...
谿谷 張維(1587~1638)는 임병양란과 인조반정 등 내우외환의 어려운 환경에서 고위 관직을 두루 역임한 정치가이자 사상가이다. 그는 조선 후기 문화 사상계의 주요 담론이 된 眞假論과 그 바탕이 되는 天機論를 최초로 주창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계곡은 우리나라의 학문은 다양함이 없고, 주자학에 구속되어 학문의 발전과 인재 양성이 이루어지지 않는 실정을 통절하게 비판하고, 양명학뿐만 아니라 노장까지도 수용했다. 그는 이러한 사유를 바탕으로 가치와 질서의 모순과 불합리를 인식하고 비판하면서 체제의 혁신과 새로운 가치 질서를 추구했다. 그는 이러한 모색을 사회사상 및 문화예술 등으로 확산했다.
그는 진가 담론을 주로 문학비평 이론으로 사용하면서 문학 이론의 범위를 넘어 존재와 인식 전반의 진정성을 물었다. 임병 양란 이후 실학의 전조가 나타나고 문학·예술방면에서도 전쟁의 상처로 인하여 새로운 감각이 필요했던 시기에 계곡은 모든 예술을 정주학적 사유로 귀결시키려던 종래의 시각을 탈피하여 그의 천기론적 사유로 해석하려고 했다. 이런 사유의 연장선상에서 서예의 心畫은 천기를 담는 그릇이며, 천기는 心畫의 근원적 토대임을 말했다. 즉 서예는 주체 본심의 산물, 곧 마음이 작용한 결과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의 서예인식에 관한 글 거개는 고정학적인 진가론에 치우쳐있다.
요컨대 계곡은 기교적 미감이나 형식적 감상이 아닌, 자연의 이치와 작가의 성정을 중시한 천기론적 문예인식과 서예인식을 견지했다. 그의 이러한 서예인식은 조선중기 서예미학을 더 풍부하게 했다고 하겠다.
玉洞 李漵 書藝 自得論에 관한 考察 - 筆意不踰矩의 自得美學 -
이응노의 서예적 쓰기와 추상적 그리기 - ‘구성(Composition)’ 작품을 중심으로 -
조선 시대 『노걸대(老乞大)』언해서의 서체 변화에 대한 고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