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안은 당나라의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로써 주변 각국의 유학생을 끌어 들였다. 많은 신라 구법승이 당나라로 유학와서 불교를 공부했으며, 그 중에서도 자장, 원측, 의상이 가장 뛰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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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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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155-175(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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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안은 당나라의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로써 주변 각국의 유학생을 끌어 들였다. 많은 신라 구법승이 당나라로 유학와서 불교를 공부했으며, 그 중에서도 자장, 원측, 의상이 가장 뛰어났다. 그러나 그들이 장안에서 유학 생활을 한 기록은 여러 역사 기록에 흩어져 있고, 양도 매우 적기 때문에, 역사 문헌의 검증과 불교 사상의 탐구를 통해 그들과 장안의 도선 율사와의 관계를 추측해 보려고 한다. 자장과 도선에 관해서는 그들이 종남산의 운계사에서 함께 머물렀기 때문에, 서로 교류했을 가능성이 있다. 게다가 자장이 귀국한 후, 도선이 중시한 사분율(四分律)을 중심으로 신라의 계율 체계를 구축했고, 대중에게 설법한 보살계도 도선의 남산 삼대부”(南山三大部)를 바탕으로 한 것이다. 그리고 자장이 창건한 통도사의 석제 계단은 장소 선정, 계층 배치, 부도 모양, 석등 설치 등에서 도선의 관중 계단(關中戒壇) 설계 철학과 일치한다. 도선은『속고승전(續高僧傳)』에 자장의 전기를 썼는데, 그 내용의 신빙성이 높아 두 사람이 비슷한 기질을 가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원측과 도선은 장안에서 제일 큰 사찰인 서명사(西明寺)에서 거의 10년 동안 함께 지내면서, 자주 불법을 논의했을 것이다. 도선이 정업사에서 입적한 후, 원측도 서명사를 떠나 운계사, 풍덕사 일대에서 8년 동안 은거했고, 원측이 입적한 후, 그의 제자들이 도선탑 옆에 그의 사리를 나눠서 탑을 세웠는데, 이를 통해 두 사람의 관계가 얼마나 깊었는지를 알 수 있다. 도선은 계체(成體)가 알라야식(阿赖耶識)의 선한 씨앗(善種子)이며, 누구나 수행을 통해 선한 씨앗을 얻어 부처가 될 수 있다고 주장했는데, 이는 원측의 유식 사상과 비슷하다. 도선이 의상에게 천재 공양(天齋供養)을 청하고, 의상이 도선에게 불아(佛牙)를 구했다는 기록은 믿을 수 없지만, 의상이 공부했던 지상사와 정업사, 풍덕사의 거리, 두 사람이 일생 동안 엄격한 계율을 지킨 것, 그리고 통일 신라 시대 사천왕사탑의 기초 형식과 관중 계단의 관계를 고려하면, 두 사람 사이에 연결점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결론적으로 장안 불교의 지도자였던 도선이 동시대에 당나라로 유학 온 신라 승려들에게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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