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2년 발족되었던 조선민속학회의 주인공인 송석하의 학문에 대해서 검토하는 것이 본고의 목적이다. 본고에서는 ‘송석하 민속학’의 핵심적인 내용과 구체적인 실천과정에서 등장하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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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수 (서울대학교)
2022
Korean
Song Suk-ha ; Folklore ; Folklorism ; Colonialism ; Wartime ; 송석하 ; 민속학 ; 민속주의 ; 일제식민주의 ; 조선민속학회
KCI등재
학술저널
5-52(4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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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운로드1932년 발족되었던 조선민속학회의 주인공인 송석하의 학문에 대해서 검토하는 것이 본고의 목적이다. 본고에서는 ‘송석하 민속학’의 핵심적인 내용과 구체적인 실천과정에서 등장하는 ...
1932년 발족되었던 조선민속학회의 주인공인 송석하의 학문에 대해서 검토하는 것이 본고의 목적이다. 본고에서는 ‘송석하 민속학’의 핵심적인 내용과 구체적인 실천과정에서 등장하는 민속주의에 대해서 고찰한다. 인멸하는 조선민속의 발굴과 보존에 민속학 실천의 최우선적인 목표를 두었던 송석하의 의지가 조선총독부의 정책에 이용된 민속과 오락이 만나는 지점에 대한 논의를 한다. 민속학과 민속주의의 관계를 엄밀하게 구분하는 것은 칼로 물 베듯한 작업임에도 불구하고, 양자 사이의 관계에 대한 분석 노력이 필요한 이유가 식민주의와의 관계에 착종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논의를 위한 전단계의 작업이 송석하 민속학의 성격을 규정함을 요하고, 그 과정을 밟아 가기 위해서는 송석하가 학문을 하는 과정에 의지하였던 레퍼런스들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 조선의 민속극이라는 장르를 펼치기 위해서 고용하였던 송석하의 레퍼런스들 중에는 영어로 된 서양서들(예를 들면, 에드워드 타일러의 <Primitive Culture>)과 코데라 유키치(小寺融吉)와 같은 일본인들의 연구서들이 포함되어 있다. 코데라의 저서와 논문들이 의존하는 서양서들이 대부분 인류학 서적이었다는 점도 확인되었을 뿐만 아니라 송석하가 고용하였던 레퍼런스들도 대부분 인류학 서적이었다는 점도 밝혀졌다.
‘송석하 민속학’의 문제는 레퍼런스들에 대한 심도있는 검토의 흔적이 없다. 민속학으로서의 송석하 학문이 허약한 점을 보이는 이유가 발견된 셈이다. 따라서 송석하 민속학이 ‘인멸되어 가는 민속의 발굴과 보존’이라는 일종의 사회적 운동으로 이동하면서 자연스럽게 민속주의와 영합하게 되었다는 논리가 성립한다. 만근에 진행되어온 송석하에 대한 연구작업들이 간과하고 있는 문제도 송석하 민속학에 대한 심도있는 검토가 없는 상태에서 만들어진 독사(doxa)라는 점도 발견되었다. 예를 들면, ‘조선의 코데라=송석하’라는 프레임이다. 코데라의 저서들을 정독한 후, 이 프레임을 송석하에게 적용하는 것은 묘한 아이러니를 발생시킨다. 송석하는 민속학자라기 보다는 민속주의 운동가였다는 해석이 가능한 ㄴ것이다. 따라서 필자는 저런 프레임을 용납하지 못한다.
총후의 총동원 상태에서 총독부가 추진하였던 정책적인 사회운동으로서의 향토오락을 내세운 민속주의와 허약한 송석하의 학문이 결합되는 모습의 현장이 ‘조선향토무용민요대회’였던 것이다. 식민주의적인 탄압과 감시하에서 총독부의 정책을 이용하였다는 송석하의 주장도 무시할 수 없다. 문제는 ‘송석하 민속학’이 정책민속주의에 의해서 밀려날 만큼 허약한 상태였다는 점이다.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는 민속학과 민속주의에 대한 문제가 식민주의 하에서 어떠한 상황에 놓이게 되었는 지를 알게 되었다.
일각에서 제기되어 왔던 문화민족주의의 문제는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에서 발생하는 착시현상의일종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그것은 과거의 사실을 현재의 입장에, 그리고 식민주의 공간의 사실을 자유주의 공간의 사실로 혼동한 상태에, 투영한 결과로 만들어지는 시공착시현상(spacio-temporal optical trick)이라고 말할 수 있다. 문화민족주의를 거론하기 전에 먼저 민속주의와 민속학의 관계에 대한 논의가 선행되어야 함도 알게 되었다.
결론적으로, 일제 식민통치하 총후시대에 민속학을 하였던 송석하는 민속학...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It is the right time to discuss about Sohng Suk-ha and Korean Folklore Society which initiated and found by him because the beginning of the society goes back to exactly 90 years ago. Sohng was acknowledged as a known folklorist in Korea during the J...
It is the right time to discuss about Sohng Suk-ha and Korean Folklore Society which initiated and found by him because the beginning of the society goes back to exactly 90 years ago. Sohng was acknowledged as a known folklorist in Korea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Recently some researchers in the field of Korean folklore excavated his academic contribution and some interesting activities was uncovered. However, we still have a great deal of Sohng's effort and academic achievement left behind in various ways. This paper aims at Sohng's academic contribution for Korean folklore and furthermore tries to differentiate his academic contribution from his social activities during his life time. The former can be named as folklore and the latter as folklorism. These two different aspects have been mixed those former researchers.
Folklore is an academic discipline while folklorism is a kind of social activity as well as social movement. A baseball team might perform a kind of folklorism and a political party like Nazi of the Third Empire could play a great deal of folkloristic movement as the history shown us. When Sohng founded the society, he worked for folklore. We know his folkloristic actions of the Korean traditional dances and songs contest for the General Government of Korea. This is a part of his folkloristic activity. The content of the conventions could be counted as a part of folklore, The motif and the intention to do those conventions for traditional dances and songs aimed at social movement to mobilize the colonized people in Korea by the colonial government. These two parts of folklore and folklorism must have been confused as some researchers did.
Another focus on Sohng's contribution should be analyzed for the academic effort of legacy inherited from the Japanese academic circle related to folklore. For example, there is a serious research for the relationship between Kodera Yukichi and Sohng. It is said that "Sohng is a Kodera Yukichi in Korea". I do not agree with this idea because the assertion was simply based on a comparison between Sohng's effort on Korean traditional dances and songs and Kodera's academic contribution solely on the same field. Kodera had many more serious academic publications while Sohng did not even read. Simple comparison makes a dangerous result.
We need to excavate more unidentified materials and analyze them in academic circle with a wide perspective to understand the colonial situation as well as wartime mobilization surrounding scholars under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In this paper I research especially on the problem of wartime mobilization by the colonial govern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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