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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CI등재

    이수광(李睟光)(1563~1628)과 정경세(鄭經世)(1563~1633)의 도문론(道文論)과 사상적 차이 = The Domunron(道文論) and Ideological difference between Yi Soo-gwang(李睟光, 1563~1628) and Jeong Gyeong-se(鄭經世, 1563~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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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조선 초기 과거제 시행 과정에서 등장했던 강경이라는 경학 시험과 제술이라는 문장 시험의 힘겨루기는 문장의 사회적 역할과 가치관에 대한 공감대가 이미 오래전부터 지속되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문장의 사회적 역할과 가치관에 대한 공감대에 대한 문제제기가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 바로 16세기 후반과 17세기 즈음이었다. 문장가 이수광은 문장의 역할과 가치관에 대한 공감대의 지속을 대표한 인물이고, 정경세는 그러한 공감대에 문제제기를 제기한 대표적 인물이다.
    이수광은 도학이 근본이고 문장은 말단이라는 도본문말론의 원칙론에 공감했지만, 동시에 문장의 실제적인 효용성과 가치에 대해서도 긍정했다. 도학과 문장의 관계에 관한 이수광의 이러한 태도는 조선 중기에 새롭게 등장한 모습이 아니라 그 이전부터 지속되어 왔던 것이다. 반면 성리학에 대한 이해의 확산과 더불어 예학이 심화되고 예서의 편찬이 활발하게 진행되었던 조선 중기에 정경세는 도학이 근본이고 문장이 말단이라는 주희의 견해를 근거로 하여 뜻을 전달하는 것으로 문장의 역할을 제한고자 했다.
    정경세는 이수광의 격물치지에 대한 이해를 비판하거나, 「채신잡록」의 곳곳에 대해 양명학은 물론 노장철학과 불교와의 연관성을 제기하며 비판했다. 이러한 정경세의 비판은 문장가로 명망을 얻었던 이수광의 사상적 다양성에 대한 지적으로 이어졌다. 이러한 이수광과 정경세의 도문론과 사상적 차이는 16세기 후반과 17세기 전반의 조선사회에서 이수광을 비롯한 다수의 문장가들에 의해 지속되었던 문장에 대한 집중과 그 집중의 연장선에서 만나게 되는 불교와 노장철학에 대한 관심과 인정, 그리고 이에 관한 정경세를 비롯한 일부 성리학자들에 의한 강력한 문제제기와 비판이라는 역사적 특징을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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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초기 과거제 시행 과정에서 등장했던 강경이라는 경학 시험과 제술이라는 문장 시험의 힘겨루기는 문장의 사회적 역할과 가치관에 대한 공감대가 이미 오래전부터 지속되고 있었음을 ...

    조선 초기 과거제 시행 과정에서 등장했던 강경이라는 경학 시험과 제술이라는 문장 시험의 힘겨루기는 문장의 사회적 역할과 가치관에 대한 공감대가 이미 오래전부터 지속되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문장의 사회적 역할과 가치관에 대한 공감대에 대한 문제제기가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 바로 16세기 후반과 17세기 즈음이었다. 문장가 이수광은 문장의 역할과 가치관에 대한 공감대의 지속을 대표한 인물이고, 정경세는 그러한 공감대에 문제제기를 제기한 대표적 인물이다.
    이수광은 도학이 근본이고 문장은 말단이라는 도본문말론의 원칙론에 공감했지만, 동시에 문장의 실제적인 효용성과 가치에 대해서도 긍정했다. 도학과 문장의 관계에 관한 이수광의 이러한 태도는 조선 중기에 새롭게 등장한 모습이 아니라 그 이전부터 지속되어 왔던 것이다. 반면 성리학에 대한 이해의 확산과 더불어 예학이 심화되고 예서의 편찬이 활발하게 진행되었던 조선 중기에 정경세는 도학이 근본이고 문장이 말단이라는 주희의 견해를 근거로 하여 뜻을 전달하는 것으로 문장의 역할을 제한고자 했다.
    정경세는 이수광의 격물치지에 대한 이해를 비판하거나, 「채신잡록」의 곳곳에 대해 양명학은 물론 노장철학과 불교와의 연관성을 제기하며 비판했다. 이러한 정경세의 비판은 문장가로 명망을 얻었던 이수광의 사상적 다양성에 대한 지적으로 이어졌다. 이러한 이수광과 정경세의 도문론과 사상적 차이는 16세기 후반과 17세기 전반의 조선사회에서 이수광을 비롯한 다수의 문장가들에 의해 지속되었던 문장에 대한 집중과 그 집중의 연장선에서 만나게 되는 불교와 노장철학에 대한 관심과 인정, 그리고 이에 관한 정경세를 비롯한 일부 성리학자들에 의한 강력한 문제제기와 비판이라는 역사적 특징을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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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The struggle between the scripture test called Gang-gyeong(講經) and the sentence test called Je-sul(製述), which appeared during the implementation of the past system in the early Joseon Dynasty, means that a consensus on the social role and values of sentences has been maintained for a long time. It was around the late 16th and 17th centuries that the question of the consensus on the social role and values of these sentences began to appear in earnest. Literary writer Yi Soo-gwang(李睟光) represents the continuation of consensus on the role and values of sentences, and Jeong Gyeong-se(鄭經世) is a representative person who raises a problem with such a consensus.
    Yi Soo-gwang sympathized with the principle of the Dobonmunmallon(道本文末論) that Dohak(道學) is fundamental and sentences are the end, but at the same time affirmed the practical utility and value of sentences. This attitude of Yi Soo-gwang regarding the relationship between Dohak and sentence was not a new appearance in the mid-Joseon period, but had been maintained since before. On the other hand, with the spread of understanding of Neo-Confucianism in the mid-Joseon period, Ritual study(禮學) deepened and the compilation of Ritual study books(禮書) actively proceeded. Based on Zhu-Xi(朱熹)'s view that Dohak is fundamental and sentences are the end, Jeong Gyeong-se tried to limit the role of sentences to conveying meaning.
    Jeong Gyeong-se criticized Yi Soo-gwang's understanding of Gewuzhizhi(格物致知), or criticized various places in 「Chaesin-Japrok(采薪雜錄)」 by raising the connection between Yangmyonghak(陽明學) as well as the Taoism and Buddhism. These criticisms of Jeong Gyeong-se led to a point on the ideological diversity of Yi Soo-gwang, who gained a reputation as a literary writer. These differences in Domunron and ideology between Yi Soo-gwang and Jeong Gyeong-se are related to the concentration on texts that were continued by Yi Soo-gwang and many other literary writers in Joseon society in the late 16th and early 17th centuries, and Buddhism and Taoism encountered in the extension of the concentration. It tells the historical characteristics of interest and recognition, and strong questioning and criticism by some Neo-Confucian scholars including Jeong Gyeong-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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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 struggle between the scripture test called Gang-gyeong(講經) and the sentence test called Je-sul(製述), which appeared during the implementation of the past system in the early Joseon Dynasty, means that a consensus on the social role and valu...

    The struggle between the scripture test called Gang-gyeong(講經) and the sentence test called Je-sul(製述), which appeared during the implementation of the past system in the early Joseon Dynasty, means that a consensus on the social role and values of sentences has been maintained for a long time. It was around the late 16th and 17th centuries that the question of the consensus on the social role and values of these sentences began to appear in earnest. Literary writer Yi Soo-gwang(李睟光) represents the continuation of consensus on the role and values of sentences, and Jeong Gyeong-se(鄭經世) is a representative person who raises a problem with such a consensus.
    Yi Soo-gwang sympathized with the principle of the Dobonmunmallon(道本文末論) that Dohak(道學) is fundamental and sentences are the end, but at the same time affirmed the practical utility and value of sentences. This attitude of Yi Soo-gwang regarding the relationship between Dohak and sentence was not a new appearance in the mid-Joseon period, but had been maintained since before. On the other hand, with the spread of understanding of Neo-Confucianism in the mid-Joseon period, Ritual study(禮學) deepened and the compilation of Ritual study books(禮書) actively proceeded. Based on Zhu-Xi(朱熹)'s view that Dohak is fundamental and sentences are the end, Jeong Gyeong-se tried to limit the role of sentences to conveying meaning.
    Jeong Gyeong-se criticized Yi Soo-gwang's understanding of Gewuzhizhi(格物致知), or criticized various places in 「Chaesin-Japrok(采薪雜錄)」 by raising the connection between Yangmyonghak(陽明學) as well as the Taoism and Buddhism. These criticisms of Jeong Gyeong-se led to a point on the ideological diversity of Yi Soo-gwang, who gained a reputation as a literary writer. These differences in Domunron and ideology between Yi Soo-gwang and Jeong Gyeong-se are related to the concentration on texts that were continued by Yi Soo-gwang and many other literary writers in Joseon society in the late 16th and early 17th centuries, and Buddhism and Taoism encountered in the extension of the concentration. It tells the historical characteristics of interest and recognition, and strong questioning and criticism by some Neo-Confucian scholars including Jeong Gyeong-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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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1 안대회, "李睟光의 『芝峰類說』과 조선 후기 名物考證學의 전통" 진단학회 (98) : 267-289, 2004

    2 "禮記"

    3 "論語"

    4 박영호, "한국 고문의 이론과 전개" 태학사 1998

    5 김문식, "지봉 이수광의 베트남 이해" 한국실학학회 (35) : 189-221, 2018

    6 피터 K. 볼, "중국 지식인들과 정체성 - 斯文을 통해 본 당송시대 지성사의 대변화" 북스토리 2008

    7 김경미, "주자가례의 수용과 17세기 혼례의 양상 - 친영례를 중심으로" 동양고전학회 (25) : 261-292, 2006

    8 최주희, "조선후기 저술에 나타난 『지봉유설(芝峯類說)』의 인용 양상과 특징" 한국사상사학회 (59) : 133-165, 2018

    9 안세현, "조선중기 한문산문에서 <장자> 수용의 양상과 그 의미" 한국한문학회 (45) : 437-471, 2010

    10 김춘란, "조선조 중후기 歐陽修 散文의 수용과 영향" 열상고전연구회 (44) : 237-275, 2015

    1 안대회, "李睟光의 『芝峰類說』과 조선 후기 名物考證學의 전통" 진단학회 (98) : 267-289, 2004

    2 "禮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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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박영호, "한국 고문의 이론과 전개" 태학사 1998

    5 김문식, "지봉 이수광의 베트남 이해" 한국실학학회 (35) : 189-221, 2018

    6 피터 K. 볼, "중국 지식인들과 정체성 - 斯文을 통해 본 당송시대 지성사의 대변화" 북스토리 2008

    7 김경미, "주자가례의 수용과 17세기 혼례의 양상 - 친영례를 중심으로" 동양고전학회 (25) : 261-292, 2006

    8 최주희, "조선후기 저술에 나타난 『지봉유설(芝峯類說)』의 인용 양상과 특징" 한국사상사학회 (59) : 133-165, 2018

    9 안세현, "조선중기 한문산문에서 <장자> 수용의 양상과 그 의미" 한국한문학회 (45) : 437-471,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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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 한만성, "조선 후기 類書의 자료조직 특성에 관한 연구 - 『芝峯類說』과 『星湖僿說類選』을 중심으로" 전북대학교 대학원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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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KCI등재
    2018-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17-10-30 학회명변경 영문명 : 미등록 -> Society for Korean Literature in Classical Chinese KCI등재
    2017-10-12 학술지명변경 외국어명 : Journal of Korean literature in Hanmun -> Journal of Korean Literature in Classical Chinese KCI등재
    2015-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11-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9-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7-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4-01-01 등재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KCI등재
    2003-01-01 등재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2002-01-01 등재 등재후보학술지 유지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1999-07-01 등재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KCI등재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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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준연도 WOS-KCI 통합IF(2년) KCIF(2년) KCIF(3년)
    2016 0.77 0.77 0.79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0.9 0.86 1.77 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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