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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자료 정학유의 흑산도 기행문 「부해기(浮海記)」와 기행시 = Jung Hak-yu's travel essay Buhaegi and travel poe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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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www.riss.kr/link?id=A10707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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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이 논문은 1809년 정학유의 흑산도 기행문 「부해기」와 기행시를 소개하는 데 목적이 있다. 「부해기」는 정약용의 둘째 아들 정학유(丁學游, 1786-1855)가 24세 때인 1809년 2월 3일에 강진을 출발해서 흑산도에 갔다가, 3월 24일에 강진으로 돌아오기까지 50여일 간의 여정을 기록한 기행 일기다. 정학유의 문집이 공개되지 않아 그간 학계에서 이 자료의 존재를 몰랐다. 이 글에서 최초로 소개하고 전문을 공개한다.
      정학유는 부친인 정약용의 당부로, 당시 흑산도에 유배와 있던 둘째 큰아버지 정약전을 문안하기 위해 이곳을 찾았다. 당시 열악한 뱃길에 고생 끝에 흑산도에 가는 도중난생 처음 고래를 보았고, 뱃사람들의 풍속과 주변의 경관도 상세하게 묘사하였다.
      이 자료를 통해 우리는 흑산도에 관한 중요한 옛 기록을 추가할 수 있게 되었다. 「부해기」에는 흑산도의 풍물과 오가는 뱃길에 대해 상세히 소개하고 있을 뿐 아니라, 흑산도의 인문지리적 환경과 당시 섬주민의 생활상, 특산과 지명 및 경관 소개 등이 풍부하다. 무엇보다 정약전의 유배 생활과 관련된 중요한 정보들이 담겨있다.
      이와 함께 정학유는 흑산도의 풍물을 12수의 한시로 남겼다. 또 이학규는 정학유의 글을 보고, 역시 한시 12수를 지어서 관련 내용을 한층 풍성하게 해주었다. 끝에는 전문을 번역하고 원문과 함께 수록하여 향후의 연구 자료로 제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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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논문은 1809년 정학유의 흑산도 기행문 「부해기」와 기행시를 소개하는 데 목적이 있다. 「부해기」는 정약용의 둘째 아들 정학유(丁學游, 1786-1855)가 24세 때인 1809년 2월 3일에 강진을 출...

      이 논문은 1809년 정학유의 흑산도 기행문 「부해기」와 기행시를 소개하는 데 목적이 있다. 「부해기」는 정약용의 둘째 아들 정학유(丁學游, 1786-1855)가 24세 때인 1809년 2월 3일에 강진을 출발해서 흑산도에 갔다가, 3월 24일에 강진으로 돌아오기까지 50여일 간의 여정을 기록한 기행 일기다. 정학유의 문집이 공개되지 않아 그간 학계에서 이 자료의 존재를 몰랐다. 이 글에서 최초로 소개하고 전문을 공개한다.
      정학유는 부친인 정약용의 당부로, 당시 흑산도에 유배와 있던 둘째 큰아버지 정약전을 문안하기 위해 이곳을 찾았다. 당시 열악한 뱃길에 고생 끝에 흑산도에 가는 도중난생 처음 고래를 보았고, 뱃사람들의 풍속과 주변의 경관도 상세하게 묘사하였다.
      이 자료를 통해 우리는 흑산도에 관한 중요한 옛 기록을 추가할 수 있게 되었다. 「부해기」에는 흑산도의 풍물과 오가는 뱃길에 대해 상세히 소개하고 있을 뿐 아니라, 흑산도의 인문지리적 환경과 당시 섬주민의 생활상, 특산과 지명 및 경관 소개 등이 풍부하다. 무엇보다 정약전의 유배 생활과 관련된 중요한 정보들이 담겨있다.
      이와 함께 정학유는 흑산도의 풍물을 12수의 한시로 남겼다. 또 이학규는 정학유의 글을 보고, 역시 한시 12수를 지어서 관련 내용을 한층 풍성하게 해주었다. 끝에는 전문을 번역하고 원문과 함께 수록하여 향후의 연구 자료로 제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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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The purpose of this paper is to introduce Jung Hak-yu’s travel essay Buhaegi and his travel poems in 1809. Jung Yak-yong's second son Jung Hak-yu(丁學游, 1786-1855), when he was 24 years old, left Kangjin on February 3, 1809, went to Heuksan Island, and returned to Gangjin on March 24 for about 50 days. Buhaegi is a journal recording this travel. Since Jung Hak-yu's literary collection has not been released, the existence of this essay has not been known, and this paper first introduce it to the public.
      Because of his father Jung Yak-yong’s request, Jung Hak-yu visited Heuksando to greet his second-oldest father Jung Yak-jeon who was in exile on there. On the way to Heuksando, he suffered from a bad boat condition, saw the whale for the first time. He also described the sailors’ custom and surrounding scenery in detail.
      This essay allows us to add an important old record about Heuksando. Buhaegi not only gives a detailed introduction to the features of Heuksando and the routes that go back and forth, but also introduces the human geographical environment of Heuksando, the lives of the residents of the island at that time, and the names of the landscapes and special products. It also provides an important information about the exile life of Jung Yak-jeon.
      In addition, Jung Hak-yu left twelve poems about the characteristic of Heuksando. Lee Hak-kyu saw Jung Hak-yu's writings, and also made 12 poems which enriched the content. At the end, the full text was translated included with the original text to be used as future research da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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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 purpose of this paper is to introduce Jung Hak-yu’s travel essay Buhaegi and his travel poems in 1809. Jung Yak-yong's second son Jung Hak-yu(丁學游, 1786-1855), when he was 24 years old, left Kangjin on February 3, 1809, went to Heuksan Isla...

      The purpose of this paper is to introduce Jung Hak-yu’s travel essay Buhaegi and his travel poems in 1809. Jung Yak-yong's second son Jung Hak-yu(丁學游, 1786-1855), when he was 24 years old, left Kangjin on February 3, 1809, went to Heuksan Island, and returned to Gangjin on March 24 for about 50 days. Buhaegi is a journal recording this travel. Since Jung Hak-yu's literary collection has not been released, the existence of this essay has not been known, and this paper first introduce it to the public.
      Because of his father Jung Yak-yong’s request, Jung Hak-yu visited Heuksando to greet his second-oldest father Jung Yak-jeon who was in exile on there. On the way to Heuksando, he suffered from a bad boat condition, saw the whale for the first time. He also described the sailors’ custom and surrounding scenery in detail.
      This essay allows us to add an important old record about Heuksando. Buhaegi not only gives a detailed introduction to the features of Heuksando and the routes that go back and forth, but also introduces the human geographical environment of Heuksando, the lives of the residents of the island at that time, and the names of the landscapes and special products. It also provides an important information about the exile life of Jung Yak-jeon.
      In addition, Jung Hak-yu left twelve poems about the characteristic of Heuksando. Lee Hak-kyu saw Jung Hak-yu's writings, and also made 12 poems which enriched the content. At the end, the full text was translated included with the original text to be used as future research da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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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1 이준곤, "흑산도 전승설화로 본 면암 최익현과 손암 정약전의 유배생활" 목포해양대학교 11 : 167-220,

      2 김영호, "정다산연구의 현황" 민음사 23-41, 1985

      3 최성환, "유배인 김약행의 <遊大黑記>를 통해 본 조선후기 대흑산도" 한국민족문화연구소 (36) : 139-177, 2010

      4 윤석호, "유배기 정약용과 정약전의 왕복 편지" 강진다산학술연구원 241-260, 2018

      5 정학유, "운포유고"

      6 김영원, "연세대본 『여유당집』에 대한 서지적 검토" 경남문화연구원 (36) : 281-302, 2012

      7 조성을, "연보로 본 다산 정약용" 지식산업사 2016

      8 조성을, "여유당집의 문헌학적 연구" 혜안 2004

      9 정약용, "여유당집"

      10 허경진, "손암 정약전 시문집" 민속원 2015

      1 이준곤, "흑산도 전승설화로 본 면암 최익현과 손암 정약전의 유배생활" 목포해양대학교 11 : 167-220,

      2 김영호, "정다산연구의 현황" 민음사 23-41, 1985

      3 최성환, "유배인 김약행의 <遊大黑記>를 통해 본 조선후기 대흑산도" 한국민족문화연구소 (36) : 139-177, 2010

      4 윤석호, "유배기 정약용과 정약전의 왕복 편지" 강진다산학술연구원 241-260, 2018

      5 정학유, "운포유고"

      6 김영원, "연세대본 『여유당집』에 대한 서지적 검토" 경남문화연구원 (36) : 281-302, 2012

      7 조성을, "연보로 본 다산 정약용" 지식산업사 2016

      8 조성을, "여유당집의 문헌학적 연구" 혜안 2004

      9 정약용, "여유당집"

      10 허경진, "손암 정약전 시문집" 민속원 2015

      11 허경진, "새로 발견된 손암 정약전의 시문집에 대하여" 경남문화연구원 (36) : 263-280, 2012

      12 정석조, "상해 자산어보" 신안군 1998

      13 정민, "다산의 재발견" 휴머니스트 출판그룹 2011

      14 이학규, "낙하생집"

      15 신안문화원, "김이수 전기" 크레펀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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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월일 이력구분 이력상세 등재구분
      2027 평가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2021-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KCI등재
      2018-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17-10-30 학회명변경 영문명 : 미등록 -> Society for Korean Literature in Classical Chinese KCI등재
      2017-10-12 학술지명변경 외국어명 : Journal of Korean literature in Hanmun -> Journal of Korean Literature in Classical Chinese KCI등재
      2015-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11-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9-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7-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4-01-01 등재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KCI등재
      2003-01-01 등재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2002-01-01 등재 등재후보학술지 유지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1999-07-01 등재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KCI등재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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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준연도 WOS-KCI 통합IF(2년) KCIF(2년) KCIF(3년)
      2016 0.77 0.77 0.79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0.9 0.86 1.77 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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