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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CI등재

      1763년 계미통신사가 경험한 시공간의 변화와 생활상 = Changes in Time-Space and Everyday Life Experienced by Tongsinsa in 17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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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The conflict between Joseon and Japan that had reached a boiling point due to the Japanese invasion of Joseon in Imjin Year(1592) was steered back to ‘peace’ relations through three times of Hoidapgyeomswaehwansa dispatch and nine times of Tongsinsa dispatch in the late Joseon Dynasty. Thus, Tongsinsa is well known as a diplomatic delegation that contributed to peace and exchanges between the two countries. Nonetheless, diverse experiences and life conditions were involved behind serving this role. In this paper, the actual life conditions of Tongsinsa that had been veiled by the national role are investigated. As the King’s special envoy, Tongsinsa had to endure months of travel period, unfamiliar food and lodging, group life, life attitude that challenged one’s pride, intense fatigue, dangerous sailing, separation from the motherland and family, etc. Such life conditions may be viewed as small and insignificant matters compared to the role of Tongsinsa as the King’s envoy. The major change in life after being appointed as Tongsinsa was leading a group life. Conflicts, large and small, emerged as people of different statuses, positions, and duties had to lead a collective life for months and sometimes nearly a year. Tongsinsa also had to adapt to seasonal changes since the seasons changed during the long travel. Tongsinsa also had to live away from their family and in a strange foreign land. Failure to adapt to extensive life in a foreign country led to illness and even death. Sahaengnok left by Tongsinsa are mostly composed as diaries or journals, and thus offer detailed descriptions of their daily life. The historical significance Sahaengnok lies in the fact that the life of Tongsinsa may be studied with the reco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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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 conflict between Joseon and Japan that had reached a boiling point due to the Japanese invasion of Joseon in Imjin Year(1592) was steered back to ‘peace’ relations through three times of Hoidapgyeomswaehwansa dispatch and nine times of Tongsin...

      The conflict between Joseon and Japan that had reached a boiling point due to the Japanese invasion of Joseon in Imjin Year(1592) was steered back to ‘peace’ relations through three times of Hoidapgyeomswaehwansa dispatch and nine times of Tongsinsa dispatch in the late Joseon Dynasty. Thus, Tongsinsa is well known as a diplomatic delegation that contributed to peace and exchanges between the two countries. Nonetheless, diverse experiences and life conditions were involved behind serving this role. In this paper, the actual life conditions of Tongsinsa that had been veiled by the national role are investigated. As the King’s special envoy, Tongsinsa had to endure months of travel period, unfamiliar food and lodging, group life, life attitude that challenged one’s pride, intense fatigue, dangerous sailing, separation from the motherland and family, etc. Such life conditions may be viewed as small and insignificant matters compared to the role of Tongsinsa as the King’s envoy. The major change in life after being appointed as Tongsinsa was leading a group life. Conflicts, large and small, emerged as people of different statuses, positions, and duties had to lead a collective life for months and sometimes nearly a year. Tongsinsa also had to adapt to seasonal changes since the seasons changed during the long travel. Tongsinsa also had to live away from their family and in a strange foreign land. Failure to adapt to extensive life in a foreign country led to illness and even death. Sahaengnok left by Tongsinsa are mostly composed as diaries or journals, and thus offer detailed descriptions of their daily life. The historical significance Sahaengnok lies in the fact that the life of Tongsinsa may be studied with the reco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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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조선후기 회답겸쇄환사 3회, 통신사 9회 파견은 임진왜란으로 최고조에 다른 조-일 양국의 갈등을 다시 ‘평화’라는 관계로 돌려놓았다. 통신사는 두 나라의 평화와 교류를 연결하는 상징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러한 역할의 이면에는 통신사의 다양한 경험과 생활이 있었다. 이 글은 1763년 癸未通信使를 중심으로 통신사의 국가적인 역할에 가려져 있던 그들의 생활에 대해 조망해 보았다. 수개월의 여행 기간, 낯선 음식과 숙소, 집단생활, 자존심을 건 태도, 높은 피로도와 위험한 뱃길 일정, 모국과 가족으로부터의 분리 등은 조선 국왕의 특사인 통신사가 감내해야 하는 생활이었다. 통신사로 임명된 후 큰 변화는 집단생활을 한다는 점이다. 신분, 지위, 직무가 상이한 수많은 사람들이 수개월에서 1년 가까이 동안 생활을 같이 하게 됨으로써 크고 작은 갈등이 발생하였다. 그리고 조선과 일본을 오가는 기간 동안 계절이 바뀌므로, 시간의 변화에 적응도 해야 했다. 통신사는 또한 가족과 떨어진 공간에서 생활해야 하고, 낯선 외국 공간에서 생활해야 했다. 긴 외국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면 병이 들기도 하고 사망에 이르기도 하였다. 통신사가 남긴 사행록은 대부분 일기 또는 일지로 구성되어 있으므로, 통신사의 일상과 생활이 잘 그려져 있다. 이글은 통신사행의 생활과 그 발견을 통해 통신사가 남긴 사행록의 역사적 의미를 찾고자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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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후기 회답겸쇄환사 3회, 통신사 9회 파견은 임진왜란으로 최고조에 다른 조-일 양국의 갈등을 다시 ‘평화’라는 관계로 돌려놓았다. 통신사는 두 나라의 평화와 교류를 연결하는 상징...

      조선후기 회답겸쇄환사 3회, 통신사 9회 파견은 임진왜란으로 최고조에 다른 조-일 양국의 갈등을 다시 ‘평화’라는 관계로 돌려놓았다. 통신사는 두 나라의 평화와 교류를 연결하는 상징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러한 역할의 이면에는 통신사의 다양한 경험과 생활이 있었다. 이 글은 1763년 癸未通信使를 중심으로 통신사의 국가적인 역할에 가려져 있던 그들의 생활에 대해 조망해 보았다. 수개월의 여행 기간, 낯선 음식과 숙소, 집단생활, 자존심을 건 태도, 높은 피로도와 위험한 뱃길 일정, 모국과 가족으로부터의 분리 등은 조선 국왕의 특사인 통신사가 감내해야 하는 생활이었다. 통신사로 임명된 후 큰 변화는 집단생활을 한다는 점이다. 신분, 지위, 직무가 상이한 수많은 사람들이 수개월에서 1년 가까이 동안 생활을 같이 하게 됨으로써 크고 작은 갈등이 발생하였다. 그리고 조선과 일본을 오가는 기간 동안 계절이 바뀌므로, 시간의 변화에 적응도 해야 했다. 통신사는 또한 가족과 떨어진 공간에서 생활해야 하고, 낯선 외국 공간에서 생활해야 했다. 긴 외국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면 병이 들기도 하고 사망에 이르기도 하였다. 통신사가 남긴 사행록은 대부분 일기 또는 일지로 구성되어 있으므로, 통신사의 일상과 생활이 잘 그려져 있다. 이글은 통신사행의 생활과 그 발견을 통해 통신사가 남긴 사행록의 역사적 의미를 찾고자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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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1 "해행총재"

      2 경성대 향토문화연구소, "해운대의 옛모습이 담긴 東下面古文書"

      3 김동철, "통신사행과 부산 지역의 역할, In 통신사 한·일 교류의 길을 가다"

      4 "통신사등록"

      5 하우봉, "통신사 연구의 현황과 과제" 일본학국제비교연구소 43 : 1-20, 2018

      6 김건서, "증정교린지"

      7 홍성덕, "조선후기 「問慰行」에 대하여" 일지사 16 (16): 118-161, 1990

      8 이와가타 히사이코, "조선통신사 연구에 대한 비판적 검토와 제안" 부경역사연구소 (38) : 105-132, 2016

      9 손승철, "조선시대 通信使硏究의 회고와 전망" 한일관계사학회 (16) : 41-59, 2002

      10 김인겸, "일동장유가"

      1 "해행총재"

      2 경성대 향토문화연구소, "해운대의 옛모습이 담긴 東下面古文書"

      3 김동철, "통신사행과 부산 지역의 역할, In 통신사 한·일 교류의 길을 가다"

      4 "통신사등록"

      5 하우봉, "통신사 연구의 현황과 과제" 일본학국제비교연구소 43 : 1-20, 2018

      6 김건서, "증정교린지"

      7 홍성덕, "조선후기 「問慰行」에 대하여" 일지사 16 (16): 118-161, 1990

      8 이와가타 히사이코, "조선통신사 연구에 대한 비판적 검토와 제안" 부경역사연구소 (38) : 105-132, 2016

      9 손승철, "조선시대 通信使硏究의 회고와 전망" 한일관계사학회 (16) : 41-59, 2002

      10 김인겸, "일동장유가"

      11 남옥, "일관기"

      12 하우봉, "원중거(元重擧)의 한일관계사 인식 - 『화국지(和國志)』를 중심으로 -" 한일관계사학회 (50) : 35-68, 2015

      13 박재금, "와신상담의 마음으로 일본을 기록하다" 소명출판 2006

      14 홍경해, "수사일록"

      15 남옥, "붓끝으로 부사산 바람을 가르다" 소명출판 2006

      16 성대중, "부사산 비파호를 날 듯이 건너" 소명출판 2006

      17 "국역 해행총재" 민족문화추진회 1989

      18 "고문헌용어해례-조선왕조편-" 배영사 1983

      19 정성일, "通信使船 船員의 船上生活과 治療 -1719년 大坂 尻無川의 사례-" 한일관계사학회 (62) : 243-288, 2018

      20 한태문, "通信使 使行文學 硏究의 回顧와 展望" 국제어문학회 (27) : 67-86, 2003

      21 三宅英利, "近世日本과 朝鮮通信使" 경인문화사 1994

      22 김동철, "東萊史料 2" 여강출판사 1989

      23 양흥숙, "朝鮮後期 通信使를 수행한 譯官의 구성과 역할-掌務官과 乾粮官을 중심으로-" 한일관계사학회 (36) : 111-151, 2010

      24 김인겸, "日東壯遊歌" 탐구당 19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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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7 평가예정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2021-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KCI등재
      2018-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17-10-30 학회명변경 영문명 : 미등록 -> Society for Korean Literature in Classical Chinese KCI등재
      2017-10-12 학술지명변경 외국어명 : Journal of Korean literature in Hanmun -> Journal of Korean Literature in Classical Chinese KCI등재
      2015-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11-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9-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7-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4-01-01 평가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KCI등재
      2003-01-01 평가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2002-01-01 평가 등재후보학술지 유지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1999-07-01 평가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KCI등재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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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술지 인용정보

      학술지 인용정보
      기준연도 WOS-KCI 통합IF(2년) KCIF(2년) KCIF(3년)
      2016 0.77 0.77 0.79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0.9 0.86 1.77 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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