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SS 학술연구정보서비스

검색
다국어 입력

http://chineseinput.net/에서 pinyin(병음)방식으로 중국어를 변환할 수 있습니다.

변환된 중국어를 복사하여 사용하시면 됩니다.

예시)
  • 中文 을 입력하시려면 zhongwen을 입력하시고 space를누르시면됩니다.
  • 北京 을 입력하시려면 beijing을 입력하시고 space를 누르시면 됩니다.
닫기
    인기검색어 순위 펼치기

    RISS 인기검색어

      KCI등재

      漢文學을 통해 되돌아보는 三韓統一의 역사(Ⅰ)-高麗 시대까지의 漢詩에 나타난 三韓과三韓統一의 의미를 중심으로- = The History of the Unification of the Three Hans Looking Back through Sino-Korean Literature(Ⅰ)

      한글로보기

      https://www.riss.kr/link?id=A106490306

      • 0

        상세조회
      • 0

        다운로드
      서지정보 열기
      • 내보내기
      • 내책장담기
      • 공유하기
      • 오류접수

      부가정보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I noticed that the expression of the unification of three nations rarely showed up, but the expression of the unification of the Three Hans often showed up in the Sino-Korean old books. I reviewed how the terms of Three Nations and Three Hans, the expressions of unification of the Three Nations and unification of the Three Hans has used and how the meaning of them has changed in old books. Therefore, I concluded that it is more proper to use the term of unification of the Three Hans than the unification of the Three Nations.
      I confirmed that the intellectuals in China post Sui and Tang dynasties had regarded not only Baekje and Silla located in the mid and south part of Korean Peninsula(the successor of Mahan, Jinhan and Byeonhan) but also the Goguryeo located in the north part of Korean Peninsula and the Liaotung Peninsula(the successor of Ancient Joseon and the Maek) as the part of three Hans. I studied that the intellectuals in China had recognized the Three Hans as the conception including both regional identity of Korean Peninsula and Liaotung Peninsula and historical identity covering the history of the part, but the term of Three Hans had used in the mid 9th century and the recognition of the unification of the Three Hans established in the late 9th century in Korea.
      I studied that the poets in Sui and Tang Dynasties had begun using the term of Three Hans in their works and the poet in Song, Yuan, early Ming Dynasties had used the Three Hans as the word of the civilized country preserving sophisticated old culture. And I studied that the poets in Goryeo Dynasty had expressed the pride of civilized country through the word of three Hans, and there had been the establishment of the unification of the Three Hans by Taejo Wang Geon, the founder of Goryeo Dynasty in the basis of the pride.
      번역하기

      I noticed that the expression of the unification of three nations rarely showed up, but the expression of the unification of the Three Hans often showed up in the Sino-Korean old books. I reviewed how the terms of Three Nations and Three Hans, the exp...

      I noticed that the expression of the unification of three nations rarely showed up, but the expression of the unification of the Three Hans often showed up in the Sino-Korean old books. I reviewed how the terms of Three Nations and Three Hans, the expressions of unification of the Three Nations and unification of the Three Hans has used and how the meaning of them has changed in old books. Therefore, I concluded that it is more proper to use the term of unification of the Three Hans than the unification of the Three Nations.
      I confirmed that the intellectuals in China post Sui and Tang dynasties had regarded not only Baekje and Silla located in the mid and south part of Korean Peninsula(the successor of Mahan, Jinhan and Byeonhan) but also the Goguryeo located in the north part of Korean Peninsula and the Liaotung Peninsula(the successor of Ancient Joseon and the Maek) as the part of three Hans. I studied that the intellectuals in China had recognized the Three Hans as the conception including both regional identity of Korean Peninsula and Liaotung Peninsula and historical identity covering the history of the part, but the term of Three Hans had used in the mid 9th century and the recognition of the unification of the Three Hans established in the late 9th century in Korea.
      I studied that the poets in Sui and Tang Dynasties had begun using the term of Three Hans in their works and the poet in Song, Yuan, early Ming Dynasties had used the Three Hans as the word of the civilized country preserving sophisticated old culture. And I studied that the poets in Goryeo Dynasty had expressed the pride of civilized country through the word of three Hans, and there had been the establishment of the unification of the Three Hans by Taejo Wang Geon, the founder of Goryeo Dynasty in the basis of the pride.

      더보기

      국문 초록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이 글은 三韓 관련 역대 韓中 漢文學 기록을 검토해보고, 高麗 시대까지 산출된 韓中 漢詩 작품을 상세히 분석하여, 우리 역사에서 三韓과 三韓統一을 어떻게 인식해 왔는지에 대해 살펴보고자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옛 문헌에서 三國統一이라는 말은 잘 사용되지 않은 반면, 三韓統一이라는 말은 매우 빈번하게 사용되어 왔다는 점에 주목하여, 三國과 三韓이라는 말, 三國統一과 三韓統一이라는 말이 옛 문헌 속에서 어떠한 의미로 어떠한 변화를 겪으며 사용되어 왔는지에 대해 꼼꼼히 따져보았다. 이를 통해 三國統一이라는 표현보다는, 현재 시점에서는, 옛 문헌에서 주로 사용한 三韓統一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는 결론을 도출하였다. 그리고 北朝ㆍ隋ㆍ唐代 이후 중국에서는 馬韓, 辰韓, 卞韓 및 이곳에서 계승된 百濟와 新羅뿐만 아니라 (古)朝鮮, 貉 및 이곳에서 계승된 高句麗까지를 모두 三韓의 일부로 인식하였으며, 新羅의 高句麗, 百濟 통합 이후에도 新羅를 三韓으로 인식하였다는 사실도 확인하였다.
      중국에서는 三韓을 北朝ㆍ隋ㆍ唐代 이후 이미 한반도와 遼東 지역이라는 지역적 정체성과 그 지역의 역사를 아우르는 역사적 정체성을 포괄하는 개념으로 인식하였지만, 우리 민족에게서 三韓이라는 용어가 사용되는 시점은 9세기 중반 神武王ㆍ文聖王 시대에 이르러서이며, 9세기 후반에 이르러서야 三韓統一 의식이 자리를 잡게 되었다는 점을 규명하였다. 이러한 三韓統一 의식은 後三國 시대 및 高麗 시대에 그대로 이어졌음도 확인할 수 있었다.
      중국에서는 北朝ㆍ隋ㆍ唐代에 三韓이란 어휘를 漢詩의 시어로 수용하기 시작하여, 宋ㆍ元代의 漢詩 및 明初의 漢詩에 이르게 되면 三韓을 옛 문화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 수준 높은 문명국을 표상하는 말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다는 사실을 밝혔다. 그리고 우리 高麗 후기 시인들에게 있어 三韓은 유구한 역사를 지닌 민족 역사 전체를 표상하는 말로 사용된 경우가 많았을 뿐만 아니라, 三韓이라는 시어를 통해 문명국으로서의 민족적 자부심을 드러냈으며, 이 자부심의 바탕에는 太祖 王建의 三韓統一의 업적에 대한 인식이 자리를 잡고 있다는 점도 확인하였다.
      번역하기

      이 글은 三韓 관련 역대 韓中 漢文學 기록을 검토해보고, 高麗 시대까지 산출된 韓中 漢詩 작품을 상세히 분석하여, 우리 역사에서 三韓과 三韓統一을 어떻게 인식해 왔는지에 대해 살펴보...

      이 글은 三韓 관련 역대 韓中 漢文學 기록을 검토해보고, 高麗 시대까지 산출된 韓中 漢詩 작품을 상세히 분석하여, 우리 역사에서 三韓과 三韓統一을 어떻게 인식해 왔는지에 대해 살펴보고자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옛 문헌에서 三國統一이라는 말은 잘 사용되지 않은 반면, 三韓統一이라는 말은 매우 빈번하게 사용되어 왔다는 점에 주목하여, 三國과 三韓이라는 말, 三國統一과 三韓統一이라는 말이 옛 문헌 속에서 어떠한 의미로 어떠한 변화를 겪으며 사용되어 왔는지에 대해 꼼꼼히 따져보았다. 이를 통해 三國統一이라는 표현보다는, 현재 시점에서는, 옛 문헌에서 주로 사용한 三韓統一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는 결론을 도출하였다. 그리고 北朝ㆍ隋ㆍ唐代 이후 중국에서는 馬韓, 辰韓, 卞韓 및 이곳에서 계승된 百濟와 新羅뿐만 아니라 (古)朝鮮, 貉 및 이곳에서 계승된 高句麗까지를 모두 三韓의 일부로 인식하였으며, 新羅의 高句麗, 百濟 통합 이후에도 新羅를 三韓으로 인식하였다는 사실도 확인하였다.
      중국에서는 三韓을 北朝ㆍ隋ㆍ唐代 이후 이미 한반도와 遼東 지역이라는 지역적 정체성과 그 지역의 역사를 아우르는 역사적 정체성을 포괄하는 개념으로 인식하였지만, 우리 민족에게서 三韓이라는 용어가 사용되는 시점은 9세기 중반 神武王ㆍ文聖王 시대에 이르러서이며, 9세기 후반에 이르러서야 三韓統一 의식이 자리를 잡게 되었다는 점을 규명하였다. 이러한 三韓統一 의식은 後三國 시대 및 高麗 시대에 그대로 이어졌음도 확인할 수 있었다.
      중국에서는 北朝ㆍ隋ㆍ唐代에 三韓이란 어휘를 漢詩의 시어로 수용하기 시작하여, 宋ㆍ元代의 漢詩 및 明初의 漢詩에 이르게 되면 三韓을 옛 문화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 수준 높은 문명국을 표상하는 말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다는 사실을 밝혔다. 그리고 우리 高麗 후기 시인들에게 있어 三韓은 유구한 역사를 지닌 민족 역사 전체를 표상하는 말로 사용된 경우가 많았을 뿐만 아니라, 三韓이라는 시어를 통해 문명국으로서의 민족적 자부심을 드러냈으며, 이 자부심의 바탕에는 太祖 王建의 三韓統一의 업적에 대한 인식이 자리를 잡고 있다는 점도 확인하였다.

      더보기

      참고문헌 (Reference)

      1 전진국, "「청주운천동신라사적비」의 제작 연대 검토- 서체와 주변 환경을 중심으로 -" 한국사연구회 (184) : 147-176, 2019

      2 윤경진, "신라 통일기 금석문에 나타난 天下觀과 歷史意識: 三韓一統意識의 성립 시기 고찰" 수선사학회 (49) : 177-216, 2014

      3 윤경진, "신라 神武-文聖王代의 정치 변동과 三韓一統意識의 출현" 신라문화연구소 46 : 207-242, 2015

      4 권덕영, "고대 동아시아의 삼한-삼국 계승의식의 정립 과정" 부산경남사학회 (99) : 37-73, 2016

      5 賈思勰, "齊民要術"

      6 魏收, "魏書"

      7 金宗瑞, "高麗史節要"

      8 李春英, "體素集"

      9 黃胤錫, "頤齋遺藁"

      10 王璲, "青城山人集"

      1 전진국, "「청주운천동신라사적비」의 제작 연대 검토- 서체와 주변 환경을 중심으로 -" 한국사연구회 (184) : 147-176, 2019

      2 윤경진, "신라 통일기 금석문에 나타난 天下觀과 歷史意識: 三韓一統意識의 성립 시기 고찰" 수선사학회 (49) : 177-216, 2014

      3 윤경진, "신라 神武-文聖王代의 정치 변동과 三韓一統意識의 출현" 신라문화연구소 46 : 207-242, 2015

      4 권덕영, "고대 동아시아의 삼한-삼국 계승의식의 정립 과정" 부산경남사학회 (99) : 37-73, 2016

      5 賈思勰, "齊民要術"

      6 魏收, "魏書"

      7 金宗瑞, "高麗史節要"

      8 李春英, "體素集"

      9 黃胤錫, "頤齋遺藁"

      10 王璲, "青城山人集"

      11 李德懋, "靑莊館全書"

      12 李詹, "雙梅堂箧藏集"

      13 劉仔肩, "雅頌正音"

      14 長孫無忌, "隋書"

      15 남재철, "隋唐 漢詩에 나타난 遼東에서의 麗隋戰爭과 그 傷痕" 진단학회 (107) : 257-276, 2009

      16 權近, "陽村集"

      17 韓駒, "陵陽集"

      18 錢起, "錢仲文集"

      19 納延, "金臺集"

      20 趙憲, "重峯集"

      21 杜佑, "通典"

      22 박대재, "謝承 『後漢書』 東夷列傳에 대한 예비적 고찰" 한국고대사학회 (55) : 39-70, 2009

      23 "詩經集傳"

      24 王應麟, "詩地理攷"

      25 張翥, "蜕菴集"

      26 劉昫, "舊唐書"

      27 洪良浩, "耳溪集"

      28 李穀, "稼亭集"

      29 柳馨遠, "磻溪隨錄"

      30 王應麟, "玉海"

      31 顧瑛, "玉山名勝外集"

      32 李穡, "牧隱藁"

      33 洪鎬, "無住逸稿"

      34 洪侃, "洪崖遺稿"

      35 金坵, "止浦集"

      36 阿桂, "欽定盛京通志"

      37 和珅, "欽定大清一統志"

      38 韓浚謙, "柳川遺稿"

      39 徐居正, "東文選"

      40 蘇軾, "東坡全集"

      41 李奎報, "東國李相國集"

      42 李瀷, "星湖僿說"

      43 윤경진, "新羅 太宗(武烈王) 諡號 논변에 대한 자료적 검토 - 原典에 대한 이해를 중심으로 -" 역사실학회 (51) : 5-41, 2013

      44 李荇, "新增東國輿地勝覽"

      45 樓鑰, "攻媿集"

      46 金九容, "惕若齋學吟集"

      47 張英, "御定淵鑑類函"

      48 范曄, "後漢書"

      49 黄庭堅, "山谷集"

      50 孔安國, "尙書注疏"

      51 崔致遠, "孤雲集"

      52 李昉, "太平御覽"

      53 鄭夢周, "圃隱集"

      54 宋敏求, "唐大詔令集"

      55 司馬遷, "史記"

      56 馮惟訥, "古詩紀"

      57 梅鼎祚, "古樂苑"

      58 蕭子顯, "南齊書"

      59 班固, "前漢書"

      60 王欽若, "册府元龜"

      61 李種徽, "修山集"

      62 魏仲擧, "五百家注昌黎文集"

      63 郭知達, "九家集注杜詩"

      64 "世宗實錄, 太宗實錄"

      65 전진국, "三韓의 용례와 그 인식" 한국사연구회 (173) : 1-38, 2016

      66 노태돈, "三韓에 대한 認識의 變遷" 韓國史硏究會 38 : 129-156, 1982

      67 윤경진, "三韓一統意識의 성립 시기에 대한 재론 - 근거 자료에 대한 검토를 중심으로 -" 한국사연구회 (175) : 33-85, 2016

      68 윤경진, "三韓 인식의 연원과 통일전쟁기 新羅의 天下觀" 국학연구원 (167) : 95-131, 2014

      69 李民樹, "三國遺事" 乙酉文化社 1983

      70 陳壽, "三國志ㆍ魏志"

      71 辛鎬烈, "三國史記(ⅠㆍⅡ)" 東西文化社 1977

      72 윤경진, "「청주운천동사적비」의 건립 시기에 대한 재검토" 수선사학회 (45) : 107-140, 2013

      73 一然, "(原本)三國遺事" 大提閣 1987

      74 金富軾, "(原本)三國史記" 大提閣 1987

      더보기

      분석정보

      View

      상세정보조회

      0

      Usage

      원문다운로드

      0

      대출신청

      0

      복사신청

      0

      EDDS신청

      0

      동일 주제 내 활용도 TOP

      더보기

      주제

      연도별 연구동향

      연도별 활용동향

      연관논문

      연구자 네트워크맵

      공동연구자 (7)

      유사연구자 (20) 활용도상위20명

      인용정보 인용지수 설명보기

      학술지 이력

      학술지 이력
      연월일 이력구분 이력상세 등재구분
      2027 평가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2021-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KCI등재
      2018-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17-10-30 학회명변경 영문명 : 미등록 -> Society for Korean Literature in Classical Chinese KCI등재
      2017-10-12 학술지명변경 외국어명 : Journal of Korean literature in Hanmun -> Journal of Korean Literature in Classical Chinese KCI등재
      2015-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11-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9-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7-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4-01-01 등재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KCI등재
      2003-01-01 등재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2002-01-01 등재 등재후보학술지 유지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1999-07-01 등재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KCI등재후보
      더보기

      학술지 인용정보

      학술지 인용정보
      기준연도 WOS-KCI 통합IF(2년) KCIF(2년) KCIF(3년)
      2016 0.77 0.77 0.79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0.9 0.86 1.77 0.28
      더보기

      이 자료와 함께 이용한 RISS 자료

      나만을 위한 추천자료

      해외이동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