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SS 학술연구정보서비스

검색
다국어 입력

http://chineseinput.net/에서 pinyin(병음)방식으로 중국어를 변환할 수 있습니다.

변환된 중국어를 복사하여 사용하시면 됩니다.

예시)
  • 中文 을 입력하시려면 zhongwen을 입력하시고 space를누르시면됩니다.
  • 北京 을 입력하시려면 beijing을 입력하시고 space를 누르시면 됩니다.
닫기
    인기검색어 순위 펼치기

    RISS 인기검색어

      KCI등재

      대한제국기 사법권 독립에 대한 인식과 한계 = Perceptions and Limitations of Judicial Independence in the Period of the Great Han Empire

      한글로보기

      https://www.riss.kr/link?id=A106488107

      • 0

        상세조회
      • 0

        다운로드
      서지정보 열기
      • 내보내기
      • 내책장담기
      • 공유하기
      • 오류접수

      부가정보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This paper intends to examine the perceptions and limitations of judicial independence of the enlightened intellectuals in the Period of the Great Han Empire. The principle of judicial independence was first introduced to Chosun by a report of the 1881 Official Observation Group who visited Japan in 1881. Afterwards, Hansung Sunbo introduced the principle of separation of power or judicial independence, which led to the spread of awareness among intellectuals, and the principle has begun to be mentioned in the writings and appeals of some intellectuals such as Young-hyo Park, Gil-jun Yu, and Syngman Rhee. The Independent Association and the Independent Newspaper, which led the Enlightenment, also argued for the rule of law, emphasizing the establishment of a parliament and a fair trial. However, the intellectuals were not willing to realize judicial independence, and as a result, judicial independence was not mentioned directly in the written constitutional documents. This is because they judged that it was urgent to establish a constitutional monarchy that would limit the monarchy's sovereignty at the time. In the end, the judicial independence was first stated in the Korean Provisional Constitution in 1919, a little later.
      번역하기

      This paper intends to examine the perceptions and limitations of judicial independence of the enlightened intellectuals in the Period of the Great Han Empire. The principle of judicial independence was first introduced to Chosun by a report of the 18...

      This paper intends to examine the perceptions and limitations of judicial independence of the enlightened intellectuals in the Period of the Great Han Empire. The principle of judicial independence was first introduced to Chosun by a report of the 1881 Official Observation Group who visited Japan in 1881. Afterwards, Hansung Sunbo introduced the principle of separation of power or judicial independence, which led to the spread of awareness among intellectuals, and the principle has begun to be mentioned in the writings and appeals of some intellectuals such as Young-hyo Park, Gil-jun Yu, and Syngman Rhee. The Independent Association and the Independent Newspaper, which led the Enlightenment, also argued for the rule of law, emphasizing the establishment of a parliament and a fair trial. However, the intellectuals were not willing to realize judicial independence, and as a result, judicial independence was not mentioned directly in the written constitutional documents. This is because they judged that it was urgent to establish a constitutional monarchy that would limit the monarchy's sovereignty at the time. In the end, the judicial independence was first stated in the Korean Provisional Constitution in 1919, a little later.

      더보기

      국문 초록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본 연구는 한국에서 사법권 독립의 뿌리를 찾는 작업으로서, 대한제국기 개화지식인들이 가지고 있었던 사법권 독립에 대한 인식과 그 한계를 살펴본다. 사법권 독립 원리를 조선에 처음 소개한 것은 1881년 일본을 방문한 조사시찰단의 보고서다. 이후 <한성순보>가 권력분립이나 사법권 독립 원리를 소개하면서 지식인 일반에게 인식이 확산되는 과정을 거쳤고, 박영효, 유길준, 이승만 등 일부 개화지식인들의 저술이나 상소문에서 사법권 독립이 언급되기 시작했다. 계몽운동을 주도한 독립협회와 <독립신문> 역시 의회설립과 공정한 재판을 강조하며 법치의 실현을 주장했다. 그러나 개화지식인들은 사법권 독립을 실현시키려는 의지가 강하지 않았고, 그 결과 대한제국기 헌법문서들에 사법권 독립이 직접 언급되지는 않았다. 이는 그들이 당시 조선의 상황에서 군주의 군권을 제한하는 입헌군주정을 세우는 것이 시급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결국 역대 헌법문서에 사법권 독립이 처음 명시되는 것은 좀 더 시간이 흐른 후인 1919년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대한민국임시헌법>에서였다.
      번역하기

      본 연구는 한국에서 사법권 독립의 뿌리를 찾는 작업으로서, 대한제국기 개화지식인들이 가지고 있었던 사법권 독립에 대한 인식과 그 한계를 살펴본다. 사법권 독립 원리를 조선에 처음 소...

      본 연구는 한국에서 사법권 독립의 뿌리를 찾는 작업으로서, 대한제국기 개화지식인들이 가지고 있었던 사법권 독립에 대한 인식과 그 한계를 살펴본다. 사법권 독립 원리를 조선에 처음 소개한 것은 1881년 일본을 방문한 조사시찰단의 보고서다. 이후 <한성순보>가 권력분립이나 사법권 독립 원리를 소개하면서 지식인 일반에게 인식이 확산되는 과정을 거쳤고, 박영효, 유길준, 이승만 등 일부 개화지식인들의 저술이나 상소문에서 사법권 독립이 언급되기 시작했다. 계몽운동을 주도한 독립협회와 <독립신문> 역시 의회설립과 공정한 재판을 강조하며 법치의 실현을 주장했다. 그러나 개화지식인들은 사법권 독립을 실현시키려는 의지가 강하지 않았고, 그 결과 대한제국기 헌법문서들에 사법권 독립이 직접 언급되지는 않았다. 이는 그들이 당시 조선의 상황에서 군주의 군권을 제한하는 입헌군주정을 세우는 것이 시급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결국 역대 헌법문서에 사법권 독립이 처음 명시되는 것은 좀 더 시간이 흐른 후인 1919년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대한민국임시헌법>에서였다.

      더보기

      참고문헌 (Reference)

      1 권영성, "헌법학원론" 법문사 2010

      2 김철수, "헌법학신론" 박영사 2013

      3 성낙인, "헌법학" 법문사 2016

      4 "한성순보"

      5 김학준, "한말의 서양정치학 수용 연구 : 유길준•안국선•이승만을 중심으로" 서울대학교출판부 2000

      6 김효전, "한국헌법사(상)"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88

      7 김영수, "한국헌법사" 학문사 2000

      8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9 박정양, "조사시찰단관계자료집 제12권" 국학자료원 2000

      10 신용하, "신판 독립협회연구(상) : 독립신문•독립협회•만민공동회의 사상과 운동" 일조각 2006

      1 권영성, "헌법학원론" 법문사 2010

      2 김철수, "헌법학신론" 박영사 2013

      3 성낙인, "헌법학" 법문사 2016

      4 "한성순보"

      5 김학준, "한말의 서양정치학 수용 연구 : 유길준•안국선•이승만을 중심으로" 서울대학교출판부 2000

      6 김효전, "한국헌법사(상)"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88

      7 김영수, "한국헌법사" 학문사 2000

      8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9 박정양, "조사시찰단관계자료집 제12권" 국학자료원 2000

      10 신용하, "신판 독립협회연구(상) : 독립신문•독립협회•만민공동회의 사상과 운동" 일조각 2006

      11 "승정원일기"

      12 김용구, "세계관 충돌의 국제정치학 : 동양 예와 서양 공법" 나남출판 1997

      13 김효전, "서양 헌법이론의 초기수용" 철학과 현실사 1996

      14 법원행정처, "법원사" 법원행정처 1995

      15 문준영, "법원과 검찰의 탄생 : 사법의 역사로 읽는 대한민국" 역사비평사 2010

      16 김갑천, "박영효의 건백서: 내정개혁에 대한 1888년의 상소문" 서울대학교 한국정치연구소 2 : 245-295, 1990

      17 김현철, "박영효의 ‘1888년 상소문’에 나타난 민권론의 연구" 한국정치학회 33 (33): 9-24, 2000

      18 "독립신문"

      19 서영희, "대한제국 정치사 연구" 서울대학교 출판부 2003

      20 김성혜, "『萬國政表』(서울:박문국 編撰, 1886)" 한림과학원 (7) : 233-242, 2011

      21 "Comparative Constitutions Project"

      더보기

      동일학술지(권/호) 다른 논문

      동일학술지 더보기

      더보기

      분석정보

      View

      상세정보조회

      0

      Usage

      원문다운로드

      0

      대출신청

      0

      복사신청

      0

      EDDS신청

      0

      동일 주제 내 활용도 TOP

      더보기

      주제

      연도별 연구동향

      연도별 활용동향

      연관논문

      연구자 네트워크맵

      공동연구자 (7)

      유사연구자 (20) 활용도상위20명

      인용정보 인용지수 설명보기

      학술지 이력

      학술지 이력
      연월일 이력구분 이력상세 등재구분
      2027 평가예정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2021-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KCI등재
      2020-01-02 학회명변경 영문명 : KOREAN STUDIES INSTITUTE -> Center for Korean Studies KCI등재
      2018-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15-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14-01-14 학술지명변경 외국어명 : 미등록 -> The Journal of Korean Studies KCI등재
      2011-01-01 평가 등재 1차 FAIL (등재유지) KCI등재
      2008-01-01 평가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KCI등재
      2007-01-01 평가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2005-01-01 평가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KCI등재후보
      더보기

      학술지 인용정보

      학술지 인용정보
      기준연도 WOS-KCI 통합IF(2년) KCIF(2년) KCIF(3년)
      2016 0.53 0.53 0.61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0.66 0.71 1.169 0.14
      더보기

      이 자료와 함께 이용한 RISS 자료

      나만을 위한 추천자료

      해외이동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