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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申緯의 墨竹畵에 대하여 = Shin Wi’s Bamboo Painting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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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www.riss.kr/link?id=A1063703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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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This paper focused on the bamboo paintings by Jaha(紫霞) Shin Wi(申緯) who was one of the most renowned shishuhua sanjue(a person talented in poetry, calligraphy, and painting) in the late Joseon dynasty. This paper first examined the origins of Shin Wi’s bamboo paintings. Shin Wi learned how to paint bamboos from Kang Se-hwang(姜世晃). His view on bamboo paintings, therefore, succeeded Kang Se-hwang’s realistic view on painting. Shin Wi and Kang Se-hwang’s realistic view on art was also linked to Yi Ik(李瀷). Shin Wi’s views were also based on Su Shi’s theory on literati painting. The literati during the period were all well acquainted with the theories on literati painting proposed by Su Shi and Wen Tong and Shin Wi explored such theories in depth through his works. Aside from the earlier works he painted at the ages of 15 and 26, the majority of Shin Wi’s bamboo paintings were painted later in his life when he was in his 60s and thereafter. In 1812, at the age of 44, Shin Wi went to Beijing as a member of the envoy to the Qing dynasty. During his visit, he met and befriended Weng Fanggang(翁方綱) and many of his fellow Qing literati. Shin Wi’s bamboo paintings, however, do not display particular influences from his visit to China. In fact, Shin Wi’s bamboo paintings were introduced and gathered fame in China. Shin Wi was revered as the three major bamboo painters in Joseon along with Taneun(灘隱) Lee Jeong(李禎) and Soowoon(岫雲) Yoo Deok-jang(柳德章). Unlike Lee Jeong, who mostly painted bamboo trees in the wind(風竹) and bamboo trees in the snow(雪竹), and Yoo Deok-jang, who usually painted bamboo trees in the snow(雪竹) and entire bamboo trees(筒竹), Shin Wi’s usual subjects were bamboo trees in the rain(雨竹) and bamboo trees in the fog(霧竹). Whereas Lee Jeong and Yoo Deok-jang mostly portrayed the honor of the scholar or the hermit through their bamboo paintings and did not add any poems, Shin Wi’s bamboo paintings were more lyrical and were accompanied by flourishing poems. As a great artist with an international perspective, Shin Wi was aware of the contemporary trends in Beijing and also pointed out trends which he considered erroneo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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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is paper focused on the bamboo paintings by Jaha(紫霞) Shin Wi(申緯) who was one of the most renowned shishuhua sanjue(a person talented in poetry, calligraphy, and painting) in the late Joseon dynasty. This paper first examined the origins of S...

      This paper focused on the bamboo paintings by Jaha(紫霞) Shin Wi(申緯) who was one of the most renowned shishuhua sanjue(a person talented in poetry, calligraphy, and painting) in the late Joseon dynasty. This paper first examined the origins of Shin Wi’s bamboo paintings. Shin Wi learned how to paint bamboos from Kang Se-hwang(姜世晃). His view on bamboo paintings, therefore, succeeded Kang Se-hwang’s realistic view on painting. Shin Wi and Kang Se-hwang’s realistic view on art was also linked to Yi Ik(李瀷). Shin Wi’s views were also based on Su Shi’s theory on literati painting. The literati during the period were all well acquainted with the theories on literati painting proposed by Su Shi and Wen Tong and Shin Wi explored such theories in depth through his works. Aside from the earlier works he painted at the ages of 15 and 26, the majority of Shin Wi’s bamboo paintings were painted later in his life when he was in his 60s and thereafter. In 1812, at the age of 44, Shin Wi went to Beijing as a member of the envoy to the Qing dynasty. During his visit, he met and befriended Weng Fanggang(翁方綱) and many of his fellow Qing literati. Shin Wi’s bamboo paintings, however, do not display particular influences from his visit to China. In fact, Shin Wi’s bamboo paintings were introduced and gathered fame in China. Shin Wi was revered as the three major bamboo painters in Joseon along with Taneun(灘隱) Lee Jeong(李禎) and Soowoon(岫雲) Yoo Deok-jang(柳德章). Unlike Lee Jeong, who mostly painted bamboo trees in the wind(風竹) and bamboo trees in the snow(雪竹), and Yoo Deok-jang, who usually painted bamboo trees in the snow(雪竹) and entire bamboo trees(筒竹), Shin Wi’s usual subjects were bamboo trees in the rain(雨竹) and bamboo trees in the fog(霧竹). Whereas Lee Jeong and Yoo Deok-jang mostly portrayed the honor of the scholar or the hermit through their bamboo paintings and did not add any poems, Shin Wi’s bamboo paintings were more lyrical and were accompanied by flourishing poems. As a great artist with an international perspective, Shin Wi was aware of the contemporary trends in Beijing and also pointed out trends which he considered erroneo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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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이 글은 조선후기의 시서화 삼절 紫霞 申緯의 墨竹畵에 대해 살펴보았다. 이를 위해서 먼저 신위의 묵죽화의 연원을 살펴보았다. 신위의 묵죽화는 姜世晃에게 배운 것이다. 따라서 그의 묵죽화론도 강세황의 寫實主義的인 繪畵觀을 계승한 것이다. 신위와 강세황의 사실주의적 회화관은 李瀷으로 연결된다. 신위의 묵죽화론의 기반은 蘇軾의 文人畵論이다. 당시 문인이라면 모두 소식과 文同의 문인화론을 잘 알고 있었고 신위는 창작을 통해 이를 더욱 심화시켰다. 신위의 묵죽화 작품은 15세 무렵과 26세 때 그린 초기작 이외에는 대부분 60대 이후 만년작들이다. 신위는 1812년 44세 때 청나라 사신의 일행으로 북경에 가서 翁方綱(1733-1818)을 중심으로 한 많은 淸朝 문인들과 교유하였다. 그러나 신위의 묵죽화는 중국 여행으로부터 뚜렷한 영향을 받은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신위의 묵죽화는 중국에서도 널리 알려졌으며, 灘隱 李霆, 岫雲 柳德章과 함께 조선시대 3대 묵죽화가로 추앙되었다. 그런데 風竹, 雪竹을 즐겨 그렸던 이정과, 설죽, 筒竹을 즐겨 그렸던 유덕장에 비해, 신위는 雨竹, 霧竹을 즐겨 그렸다. 이정과 유덕장이 題畵詩가 거의 없는 묵죽화를 통해 선비나 은일의 志操를 주로 표현한 데 비해, 신위는 풍부한 제화시를 곁들여 抒情이 풍부한 묵죽화를 그린 점에서 차이가 있다. 신위는 국제적 안목을 가진 대예술가로 당시 북경의 예술계의 동향도 파악하고, 잘못된 경향을 지적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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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조선후기의 시서화 삼절 紫霞 申緯의 墨竹畵에 대해 살펴보았다. 이를 위해서 먼저 신위의 묵죽화의 연원을 살펴보았다. 신위의 묵죽화는 姜世晃에게 배운 것이다. 따라서 그의 묵...

      이 글은 조선후기의 시서화 삼절 紫霞 申緯의 墨竹畵에 대해 살펴보았다. 이를 위해서 먼저 신위의 묵죽화의 연원을 살펴보았다. 신위의 묵죽화는 姜世晃에게 배운 것이다. 따라서 그의 묵죽화론도 강세황의 寫實主義的인 繪畵觀을 계승한 것이다. 신위와 강세황의 사실주의적 회화관은 李瀷으로 연결된다. 신위의 묵죽화론의 기반은 蘇軾의 文人畵論이다. 당시 문인이라면 모두 소식과 文同의 문인화론을 잘 알고 있었고 신위는 창작을 통해 이를 더욱 심화시켰다. 신위의 묵죽화 작품은 15세 무렵과 26세 때 그린 초기작 이외에는 대부분 60대 이후 만년작들이다. 신위는 1812년 44세 때 청나라 사신의 일행으로 북경에 가서 翁方綱(1733-1818)을 중심으로 한 많은 淸朝 문인들과 교유하였다. 그러나 신위의 묵죽화는 중국 여행으로부터 뚜렷한 영향을 받은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신위의 묵죽화는 중국에서도 널리 알려졌으며, 灘隱 李霆, 岫雲 柳德章과 함께 조선시대 3대 묵죽화가로 추앙되었다. 그런데 風竹, 雪竹을 즐겨 그렸던 이정과, 설죽, 筒竹을 즐겨 그렸던 유덕장에 비해, 신위는 雨竹, 霧竹을 즐겨 그렸다. 이정과 유덕장이 題畵詩가 거의 없는 묵죽화를 통해 선비나 은일의 志操를 주로 표현한 데 비해, 신위는 풍부한 제화시를 곁들여 抒情이 풍부한 묵죽화를 그린 점에서 차이가 있다. 신위는 국제적 안목을 가진 대예술가로 당시 북경의 예술계의 동향도 파악하고, 잘못된 경향을 지적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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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1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2 백인산, "표암 강세황의 묵죽화의 풍격과 위상" 한국민족미술연구소 (84) : 98-111, 2013

      3 한국미술사학회, "표암 강세황-조선후기 문인화가의 표상" 경인문화사 2013

      4 백인산, "표암 강세황-조선후기 문인화가의 표상" 경인문화사 193-220, 2013

      5 예술의 전당 서울서예박물관, "표암 강세황"

      6 백인산, "탄은 이정의 삼청첩 연구" 동국대학교 (5) : 103-124, 2004

      7 백인산, "탄은 이정의 묵죽도 연구" 동국대학교 대학원 2000

      8 백인산, "탄은 이정 연구" 한국민족미술연구소 (58) : 75-119, 2000

      9 백인산, "추사와 그의 시대" 추사와 그의 시대 275-330, 2002

      10 이현일, "조선후기 고동완상의 유행과 자하시" 한양대한국학연구소 (37) : 139-161, 2003

      1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2 백인산, "표암 강세황의 묵죽화의 풍격과 위상" 한국민족미술연구소 (84) : 98-111, 2013

      3 한국미술사학회, "표암 강세황-조선후기 문인화가의 표상" 경인문화사 2013

      4 백인산, "표암 강세황-조선후기 문인화가의 표상" 경인문화사 193-220, 2013

      5 예술의 전당 서울서예박물관, "표암 강세황"

      6 백인산, "탄은 이정의 삼청첩 연구" 동국대학교 (5) : 103-124, 2004

      7 백인산, "탄은 이정의 묵죽도 연구" 동국대학교 대학원 2000

      8 백인산, "탄은 이정 연구" 한국민족미술연구소 (58) : 75-119, 2000

      9 백인산, "추사와 그의 시대" 추사와 그의 시대 275-330, 2002

      10 이현일, "조선후기 고동완상의 유행과 자하시" 한양대한국학연구소 (37) : 139-161, 2003

      11 백인산, "조선왕조 난죽화" 한국민족미술연구소 (69) : 103-131, 2005

      12 이성미, "조선시대의 묵죽화" 한국민족미술연구소 (34) : 43-64, 1998

      13 백인산, "조선시대 묵작화 연구" 동국대학교 대학원 2005

      14 이현일, "자하시 연구"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2007

      15 김현권, "자하 신위의 학예와 추사금석" 자하 신위의 학예와 추사금석 42-80, 2016

      16 서동형, "자하 신위의 제화시고" 한문교육학회 95 : 267-315, 1995

      17 추사박물관, "자하 신위" 2016

      18 김현권, "자하 신위" 추사박물관 111-124, 2016

      19 고연희, "신위의 회화관과 19세기 회화" 37 : 163-192, 2003

      20 신일권, "신위의 청나라 연행 이후에 나타난 시의 특징 - 고증적 성향을 중심으로 -" 한국문학회 (64) : 5-55, 2013

      21 손팔주, "신위 연구" 태학사 1983

      22 예술의 전당 서울서예박물관, "시서화삼절 자하 신위 회고전" 1991

      23 김병기, "시서화 삼절 자하 신위의 예술관-중국적 연원을 중심으로" 예술의 전당 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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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 선문대학교박물관, "선문대학교박물관소장 명품도록 II" 2000

      26 국립광주박물관, "대숲에 부는 바람, 풍죽" 2013

      27 김상엽, "대숲에 부는 바람, 풍죽" 대숲에 부는 바람, 풍죽 289-302, 2013

      28 동양고전학회, "국역 근역서화징 상하" 시공사 1998

      29 경남대학교박물관, "경남대학교소장 寺內文庫궁중관계자료"

      30 金正喜, "阮堂全集"

      31 姜世晃, "豹菴稿"

      32 백인산, "豹菴 姜世晃의 墨竹畵 硏究" 한국미술사학회 (253) : 159-184, 2007

      33 申緯, "警修堂全藁"

      34 金泫廷, "紫霞 申緯의 서화연구" 서울大學校 大學院 1994

      35 崔岦, "簡易集"

      36 조규백, "申緯의 蘇東坡 受容 및 그 意義" 한국학중앙연구원 (28) : 164-191, 2012

      37 鄭士龍, "湖陰雜稿"

      38 吳世昌, "槿域書畵徵" 啓明俱樂部 1928

      39 李裕元, "林下筆記"

      40 "東文選"

      41 李奎報, "東國李相國後集"

      42 李瀷, "星湖僿說"

      43 李荇, "容齋集"

      44 徐居正, "四佳詩集"

      45 李裕元, "嘉梧藁略"

      46 이현일, "19세기 漢詩의 小品趣 - 申緯의 경우를 중심으로 -" 한국한시학회 (18) : 323-369,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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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7 평가예정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2021-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KCI등재
      2018-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17-10-30 학회명변경 영문명 : 미등록 -> Society for Korean Literature in Classical Chinese KCI등재
      2017-10-12 학술지명변경 외국어명 : Journal of Korean literature in Hanmun -> Journal of Korean Literature in Classical Chinese KCI등재
      2015-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11-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9-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7-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4-01-01 평가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KCI등재
      2003-01-01 평가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2002-01-01 평가 등재후보학술지 유지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1999-07-01 평가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KCI등재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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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술지 인용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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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준연도 WOS-KCI 통합IF(2년) KCIF(2년) KCIF(3년)
      2016 0.77 0.77 0.79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0.9 0.86 1.77 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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