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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한 선교사 윌리엄 베어드(William M. Baird)의 조선사회에 대한 인식과 선교활동 = William M. Baird's Perception of Joseon Society and Early Mission Activit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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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www.riss.kr/link?id=A1063700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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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윌리엄 베어드는 개항 이후 국내에 들어온 미국북장로교의 선교사 중 평양 숭실학교를 중심으로 교육선교 활동에서 가장 뛰어나 업적을 남긴 내한 선교사이다. 본 논문은 윌리엄 베어드의 선교자료 가운데 몇 가지 특징적인 기록을 분석 정리하는 작업을 통해 그의 교육 선교의 목표와 활동 및 한국사회의 인식에 대해 확인하고자 하였다.
      실제로 베어드는 한국에 입국한 이후 자신이 경험했던 을미사변, 단발령, 러일전쟁, 을사늑약, 3.1운동의 경험에 대해 비교적 객관적으로 서술하고 있었으며, 정치적 문제에 있어서는 가급적 중립적인 태도를 취하고자 노력하였다. 또한 그가 남쪽지역에 대한 선교를 위해 노력하며 겪었던 경험은 이후 평양을 중심으로 한 관서지방에서 전개한 선교의 경험에 비해 상대적으로 크게 열악했던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외국인 선교사로서 입국 초기 경험했던 조선의 자연환경 역시, 크게 낯설고 견디기 어려운 것이었다.
      1897년 2월 선교 근거지를 평양으로 옮긴 이후에는 남쪽지역에서 보다는 보다 많은 성과를 낼 수 있는 새로운 상황을 확인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평양 숭실학교를 중심으로 자신의 경험을 살린 교육선교에 매진할 수 있었던 것이다. 베어드의 교육목표는 독실한 기독교 신앙에 바탕을 둔 미래 한국 교회의 지도와 신앙인을 양성하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베어드는 한국어로 교육하는 일본의 최고 학교 및 대학과 쌍벽을 이루는 일류학교를 만들어 격동의 시대에 더 이상 잠자지 않고 교육의 필요성을 빠르게 자각하고 있는 한국인들을 돕고자 하였다. 베어드는 문서사역에도 적극적이었는데 이러한 영향 하에 숭실대학에서 1910년대 중반 이후 『숭실학보』school newspaper, 『숭실문학보』, 『숭대시보』 등을 발간하여 한국의 대학언론 문화를 선도하며, 민족의식의 확산에 기여했던 것으로 보인다.
      본 논문에서는 베어드가 남긴 선교자료를 통해 그가 선교 활동을 하며, 국내에서 보고 느꼈던 조선사회의 현실과 신앙의 문제 및 몇몇 정치적 사건들을 새롭게 정리해 봄으로써 개항 이후 조선에 파견된 선교사의 선교활동이 조선의 근대교육을 어떻게 탈바꿈시켜 나갔는지를 연구하고자 한다. 이를 통해 개항 이후 근대 전환 공간에서의 교육, 문화의 메타모포시스(Metamorphosises)를 새롭게 조명하는 토대를 제공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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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윌리엄 베어드는 개항 이후 국내에 들어온 미국북장로교의 선교사 중 평양 숭실학교를 중심으로 교육선교 활동에서 가장 뛰어나 업적을 남긴 내한 선교사이다. 본 논문은 윌리엄 베어드의 ...

      윌리엄 베어드는 개항 이후 국내에 들어온 미국북장로교의 선교사 중 평양 숭실학교를 중심으로 교육선교 활동에서 가장 뛰어나 업적을 남긴 내한 선교사이다. 본 논문은 윌리엄 베어드의 선교자료 가운데 몇 가지 특징적인 기록을 분석 정리하는 작업을 통해 그의 교육 선교의 목표와 활동 및 한국사회의 인식에 대해 확인하고자 하였다.
      실제로 베어드는 한국에 입국한 이후 자신이 경험했던 을미사변, 단발령, 러일전쟁, 을사늑약, 3.1운동의 경험에 대해 비교적 객관적으로 서술하고 있었으며, 정치적 문제에 있어서는 가급적 중립적인 태도를 취하고자 노력하였다. 또한 그가 남쪽지역에 대한 선교를 위해 노력하며 겪었던 경험은 이후 평양을 중심으로 한 관서지방에서 전개한 선교의 경험에 비해 상대적으로 크게 열악했던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외국인 선교사로서 입국 초기 경험했던 조선의 자연환경 역시, 크게 낯설고 견디기 어려운 것이었다.
      1897년 2월 선교 근거지를 평양으로 옮긴 이후에는 남쪽지역에서 보다는 보다 많은 성과를 낼 수 있는 새로운 상황을 확인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평양 숭실학교를 중심으로 자신의 경험을 살린 교육선교에 매진할 수 있었던 것이다. 베어드의 교육목표는 독실한 기독교 신앙에 바탕을 둔 미래 한국 교회의 지도와 신앙인을 양성하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베어드는 한국어로 교육하는 일본의 최고 학교 및 대학과 쌍벽을 이루는 일류학교를 만들어 격동의 시대에 더 이상 잠자지 않고 교육의 필요성을 빠르게 자각하고 있는 한국인들을 돕고자 하였다. 베어드는 문서사역에도 적극적이었는데 이러한 영향 하에 숭실대학에서 1910년대 중반 이후 『숭실학보』school newspaper, 『숭실문학보』, 『숭대시보』 등을 발간하여 한국의 대학언론 문화를 선도하며, 민족의식의 확산에 기여했던 것으로 보인다.
      본 논문에서는 베어드가 남긴 선교자료를 통해 그가 선교 활동을 하며, 국내에서 보고 느꼈던 조선사회의 현실과 신앙의 문제 및 몇몇 정치적 사건들을 새롭게 정리해 봄으로써 개항 이후 조선에 파견된 선교사의 선교활동이 조선의 근대교육을 어떻게 탈바꿈시켜 나갔는지를 연구하고자 한다. 이를 통해 개항 이후 근대 전환 공간에서의 교육, 문화의 메타모포시스(Metamorphosises)를 새롭게 조명하는 토대를 제공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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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William Baird is one of the most accomplished missionaries in Korea, and he has made achievements in education missionary work at Soongsil School in Pyongyang. Through the work of analyzing and organizing some characteristic records among William Baird's missionary data, this paper sought to confirm the objectives and activities of his educational mission and the recognition of Korean society.
      In fact, since his arrival in Korea, Baird has experienced Eulmi Incident, the ordinance prohibiting topknots, Russo-Japanese Wars, the Protectorate Treaty between Korea and Japan concluded in 1905, the March First Independence Movement. As in political problems, and trying to take a neutral attitude. Also, the experience he experienced while working for missionary work in the southern part of the country has been shown to have been relatively poor compared to his later experiences in missionary work in the Gwanseo region, which centers on Pyongyang. The natural environment of Joseon, which was experienced in the early days of his arrival as a foreign missionary, was also very strange and intolerable.
      Since moving the mission base to Pyongyang in February 1897, it has apparently been able to confirm new developments that could yield more results than in the southern region. He was able to focus on educational missionary work that helped him gain experience at Soongsil School in Pyongyang. Baird's educational goal was to train future Korean churches' guidance and believers based on devout Christian faith. In addition, Baird wanted to help Koreans who are no longer sleeping and quickly becoming aware of the need for education in turbulent times by creating a first-rate school that is double-crossed with Japan's top schools and universities that teach in Korean. Baird was also active in document history, and under this influence, the university seems to have led Korea's university press culture and contributed to the spread of national consciousness by publishing Soongsil School Newspaper, Soongsil Literature Paper, and Soongtai Times since the mid-1910s.
      In this paper, we are going to study how the missionary work dispatched to Joseon since the opening of the port of Joseon has transformed modern education in Joseon by reviewing the missionary work that he has done, and by redefining the reality and faith issues of Joseon society and some political events that he has seen and felt in Korea. Through this, we will provide the foundation for a new light on metamorphosis of education and culture in modern transition space after open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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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illiam Baird is one of the most accomplished missionaries in Korea, and he has made achievements in education missionary work at Soongsil School in Pyongyang. Through the work of analyzing and organizing some characteristic records among William Bair...

      William Baird is one of the most accomplished missionaries in Korea, and he has made achievements in education missionary work at Soongsil School in Pyongyang. Through the work of analyzing and organizing some characteristic records among William Baird's missionary data, this paper sought to confirm the objectives and activities of his educational mission and the recognition of Korean society.
      In fact, since his arrival in Korea, Baird has experienced Eulmi Incident, the ordinance prohibiting topknots, Russo-Japanese Wars, the Protectorate Treaty between Korea and Japan concluded in 1905, the March First Independence Movement. As in political problems, and trying to take a neutral attitude. Also, the experience he experienced while working for missionary work in the southern part of the country has been shown to have been relatively poor compared to his later experiences in missionary work in the Gwanseo region, which centers on Pyongyang. The natural environment of Joseon, which was experienced in the early days of his arrival as a foreign missionary, was also very strange and intolerable.
      Since moving the mission base to Pyongyang in February 1897, it has apparently been able to confirm new developments that could yield more results than in the southern region. He was able to focus on educational missionary work that helped him gain experience at Soongsil School in Pyongyang. Baird's educational goal was to train future Korean churches' guidance and believers based on devout Christian faith. In addition, Baird wanted to help Koreans who are no longer sleeping and quickly becoming aware of the need for education in turbulent times by creating a first-rate school that is double-crossed with Japan's top schools and universities that teach in Korean. Baird was also active in document history, and under this influence, the university seems to have led Korea's university press culture and contributed to the spread of national consciousness by publishing Soongsil School Newspaper, Soongsil Literature Paper, and Soongtai Times since the mid-1910s.
      In this paper, we are going to study how the missionary work dispatched to Joseon since the opening of the port of Joseon has transformed modern education in Joseon by reviewing the missionary work that he has done, and by redefining the reality and faith issues of Joseon society and some political events that he has seen and felt in Korea. Through this, we will provide the foundation for a new light on metamorphosis of education and culture in modern transition space after open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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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1 김인수, "한국기독교사" 한국장로교 출판사 2003

      2 "크리스쳔투데이"

      3 박정신, "체제의 교육, 삶의 교육: 백년 전 베어드 그리고 백년 후 김 예슬" 한국인문사회과학회 37 (37): 15-32, 2013

      4 서민교, "일본에서의 명성황후 시해사건에 대한 연구와 과제" 고려대학교 역사연구소 59 : 2004

      5 이혜원, "의화단 운동이 한국 개신교 선교 현장에 미친 영향" 한국기독교역사학회 (33) : 215-251, 2010

      6 홍순권, "을미의병운동을 재평가한다" 역사문제연구소 29 : 1995

      7 William M. Baird, "윌리엄 베어드의 선교편지" 2016

      8 변창욱, "윌리엄 베어드의 선교방법과 교육선교 정책" 한국기독교학회 (74) : 317-340, 2011

      9 William M. Baird, "윌리엄 베어드의 선교리포트(Ⅰ·Ⅱ)" 2016

      10 김명배, "윌리엄 베어드의 삶과 사역에 나타난 신학과 사상에 관한 연구" 한국개혁신학회 39 : 56-88, 2013

      1 김인수, "한국기독교사" 한국장로교 출판사 2003

      2 "크리스쳔투데이"

      3 박정신, "체제의 교육, 삶의 교육: 백년 전 베어드 그리고 백년 후 김 예슬" 한국인문사회과학회 37 (37): 15-32, 2013

      4 서민교, "일본에서의 명성황후 시해사건에 대한 연구와 과제" 고려대학교 역사연구소 59 : 2004

      5 이혜원, "의화단 운동이 한국 개신교 선교 현장에 미친 영향" 한국기독교역사학회 (33) : 215-251, 2010

      6 홍순권, "을미의병운동을 재평가한다" 역사문제연구소 29 : 1995

      7 William M. Baird, "윌리엄 베어드의 선교편지" 2016

      8 변창욱, "윌리엄 베어드의 선교방법과 교육선교 정책" 한국기독교학회 (74) : 317-340, 2011

      9 William M. Baird, "윌리엄 베어드의 선교리포트(Ⅰ·Ⅱ)" 2016

      10 김명배, "윌리엄 베어드의 삶과 사역에 나타난 신학과 사상에 관한 연구" 한국개혁신학회 39 : 56-88, 2013

      11 김영한, "윌리엄 베어드의 네비우스 방법에 의한 교육선교" 12 : 2011

      12 성신형, "윌리엄 베어드의 교육선교에 대한 연구" 한국복음주의선교신학회 36 (36): 51-82, 2016

      13 류대영, "윌리엄 베어드의 교육사업" 한국기독교역사학회 (32) : 127-157, 2010

      14 William M. Baird, "윌리엄 베어드 선교일기" 숭실대학교 한국기독교박물관 2013

      15 리처드베어드, "위리엄 베어드" 2016

      16 오인근, "원형적 교사상(敎師像)의 한 모델인 베어드 연구" 한국실천신학회 (54) : 471-501, 2017

      17 숭실대학교 한국기독교 박물관, "신학지남으로 본 윌리엄 베어드의 신학세계"

      18 "시대일보"

      19 "숭대학보"

      20 숭실대학교 한국기독교 박물관, "선교자료(Ⅰ·Ⅱ)"

      21 숭실대학교 120년사편찬위원회, "사진과 연표로 보는 평양숭실대학" 2018

      22 박정신, "베어드와 한국선교" 한국기독교문화연구소 2003

      23 배재욱, "배위량의 2차 전도 여정과 순례길로서의 가치" 45 : 2016

      24 이혜정, "배위량 선교사가 지역사회에 끼친 사회적 영향" 49 : 2018

      25 숭실대학교 120년사편찬위원회, "민족과 함께한 숭실 120년" 2017

      26 "매일신보"

      27 김원수, "러일전쟁의 역사들 다시읽기: 변경/경계와의 접속" 한국역사교육학회 (19) : 273-303, 2014

      28 "동아일보"

      29 임희국, "공감 교회역사공부" 장로교신학대학출판부 2014

      30 하원호, "개항 이후 일제의 침략" 독립기념관 독립운동사연구소 2008

      31 정선이, "1910년대 기독교계 고등교육의 특성 -숭실과 연희전문을 중심으로-" 교육사학회 19 (19): 85-105,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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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 평가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2020-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KCI등재
      2017-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KCI등재
      2013-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10-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8-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5-01-01 등재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KCI등재
      2004-01-01 등재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2002-01-01 등재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KCI등재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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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준연도 WOS-KCI 통합IF(2년) KCIF(2년) KCIF(3년)
      2016 0.81 0.81 0.72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0.65 0.66 1.616 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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