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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후기 왕실 喪葬에서魂宮의 형성과 공간구성-창경궁 通和殿을 중심으로- = Honjeon(魂殿)․Hon’gung(魂宮) chambers for Royal funerals and Memorial services during the Joseon dynasty’s latter-half period-Names and Inner structures-Examination of Chang’gyeong-gung palace’s Tong’hwa-jeon(通和殿) chamber-how it was created 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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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This article attempted to determine the nature of the Tong’hwa-jeon chamber, which unfortunately does not exist today, yet is vividly described anyway in the Dong’gweol-do(東闕圖) picture. Tong’hwa-jeon was created inside the Chang’gyeong-gung palace, and the title itself (“Tong’hwa”) first appeared when this chamber was ordered to be used as the Hon’gung chamber for Crown princess Hyegyeong(惠慶宮) during King Sunjo’s reign. Until then, the chamber had no name and was only called as ‘Old Naeban-weon(內班院) structure’ or ‘Old Hon’gung.’ When it was designated for the first time to become Hyegyeong’s Hon’gung, the structure was heavily renovated and eventually received the name Tong’hwa-jeon.
      But this was not the chamber’s first usage as said facility. Even before it became Tong’hwa-jeon, the structure had already served the royal family’s needs in the same capacity. It served as Hon’gung for Crown princess Daneui- bin(端懿嬪) during King Sukjong’s reign, and as Hon’gung for both Crown prince Hyojang(孝章世子) and royal concubine Hyeonbin(賢嬪) during King Yeongjo’s reign. The example from Sukjong’s reign was the first ever for the chamber to serve such purpose, and after being used in the same capacity during Yeongjo’s reign, we can see that it was decided to be used once again as Hon’gung for Hyegyeong-gung during Sunjo’s reign, but with an actual name this time around.
      While the Honjeon for kings and queens were usually arranged at the Pyeonjeon(便殿) Hall, we can see that a new trend of arranging the same space for deceased crown princes or princesses at Tong’hwa-jeon was gradually forming. Of course there were some exceptions (such as the Honjeon for King Jeongjo’s wife Queen Hyoeui [Hyoeui Wanghu, 孝懿王后] being arranged at Tong’hwa-jeon), but overall Tong’hwa-jeon was generally used for princes and princesses, as we can see from the fact that Tong’hwa-jeon was also used as the Hon’gung for Crown prince Hyomyeong later on.
      In this article, the nature of a structure which was erected in the southern section of the Tong’hwa-jeon chamber, which was also described on both Dong’gweol-do and Dong’gweol-dohyeong(東闕圖形) yet its exact function was previously unknown and yet to be determined. It was a place for servants assisting the king before the 18th century, and later when Tong’hwa-jeon was renovated and came to serve as a Hon’gung facility, the structure was used as a secondary facility for the Hon’g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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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is article attempted to determine the nature of the Tong’hwa-jeon chamber, which unfortunately does not exist today, yet is vividly described anyway in the Dong’gweol-do(東闕圖) picture. Tong’hwa-jeon was created inside the Chang’gyeong-g...

      This article attempted to determine the nature of the Tong’hwa-jeon chamber, which unfortunately does not exist today, yet is vividly described anyway in the Dong’gweol-do(東闕圖) picture. Tong’hwa-jeon was created inside the Chang’gyeong-gung palace, and the title itself (“Tong’hwa”) first appeared when this chamber was ordered to be used as the Hon’gung chamber for Crown princess Hyegyeong(惠慶宮) during King Sunjo’s reign. Until then, the chamber had no name and was only called as ‘Old Naeban-weon(內班院) structure’ or ‘Old Hon’gung.’ When it was designated for the first time to become Hyegyeong’s Hon’gung, the structure was heavily renovated and eventually received the name Tong’hwa-jeon.
      But this was not the chamber’s first usage as said facility. Even before it became Tong’hwa-jeon, the structure had already served the royal family’s needs in the same capacity. It served as Hon’gung for Crown princess Daneui- bin(端懿嬪) during King Sukjong’s reign, and as Hon’gung for both Crown prince Hyojang(孝章世子) and royal concubine Hyeonbin(賢嬪) during King Yeongjo’s reign. The example from Sukjong’s reign was the first ever for the chamber to serve such purpose, and after being used in the same capacity during Yeongjo’s reign, we can see that it was decided to be used once again as Hon’gung for Hyegyeong-gung during Sunjo’s reign, but with an actual name this time around.
      While the Honjeon for kings and queens were usually arranged at the Pyeonjeon(便殿) Hall, we can see that a new trend of arranging the same space for deceased crown princes or princesses at Tong’hwa-jeon was gradually forming. Of course there were some exceptions (such as the Honjeon for King Jeongjo’s wife Queen Hyoeui [Hyoeui Wanghu, 孝懿王后] being arranged at Tong’hwa-jeon), but overall Tong’hwa-jeon was generally used for princes and princesses, as we can see from the fact that Tong’hwa-jeon was also used as the Hon’gung for Crown prince Hyomyeong later on.
      In this article, the nature of a structure which was erected in the southern section of the Tong’hwa-jeon chamber, which was also described on both Dong’gweol-do and Dong’gweol-dohyeong(東闕圖形) yet its exact function was previously unknown and yet to be determined. It was a place for servants assisting the king before the 18th century, and later when Tong’hwa-jeon was renovated and came to serve as a Hon’gung facility, the structure was used as a secondary facility for the Hon’g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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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본 연구는 현존하지는 않지만 「동궐도」에 그려져 있는 통화전의 실체를 살펴보기 위해 작성되었다. 통화전은 창경궁에 조성된 전각 중 하나이다. 통화전이라는 전호는 순조대 혜경궁의 상장에서 혼궁으로 사용된 건물에 처음으로 붙여졌다. 그런데 통화전은 이때 처음으로 ‘건립’된 것이 아니었고 전각명이 없는 상태로 오랫동안 사람들에게 ‘구 내반원’, ‘옛 혼궁’으로 일컬어지다가 1816년 혜경궁의 혼궁으로 정해지면서 대대적인 수리와 함께 통화전이라는 전각 명칭을 갖게 되었다.
      통화전이라는 전각 이름을 갖기 전 이곳에는 숙종대 단의빈, 영조대 효장세자와 현빈의 혼궁으로 활용되었다. 적어도 숙종대 단의빈의 상장을 치르면서 이곳이 혼궁 처소로 마련되기 시작했고, 영조대 효장세자와 현빈의 혼궁을 거쳐서 순조대 혜경궁의 혼궁으로 사용된 것이었다.
      그렇다면 국왕이나 왕후의 혼전이 편전에 마련되는 경향과 달리, 세자나 세자빈은 조선후기에 통화전이라는 건물에 혼궁을 마련하는 추세라고 볼 수 있다. 정조비 효의왕후의 혼전이 통화전에 조성되어 예외적인 경우도 있지만 효명세자의 혼궁으로 통화전이 잠시 사용되기도 한 것을 포함하여, 대개 세자나 세자빈의 혼궁으로 통화전이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아울러 그 용도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던 「동궐도」와 「동궐도형」에 그려져 있는 통화전 남쪽 일곽의 행각의 성격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일곽은 18세기 이전에는 국왕의 생활을 보조하는 관서들이 모여 있었던 곳이었으며, 통화전이 혼궁으로 유지되는 기간 동안 부속시설로 사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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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연구는 현존하지는 않지만 「동궐도」에 그려져 있는 통화전의 실체를 살펴보기 위해 작성되었다. 통화전은 창경궁에 조성된 전각 중 하나이다. 통화전이라는 전호는 순조대 혜경궁의 ...

      본 연구는 현존하지는 않지만 「동궐도」에 그려져 있는 통화전의 실체를 살펴보기 위해 작성되었다. 통화전은 창경궁에 조성된 전각 중 하나이다. 통화전이라는 전호는 순조대 혜경궁의 상장에서 혼궁으로 사용된 건물에 처음으로 붙여졌다. 그런데 통화전은 이때 처음으로 ‘건립’된 것이 아니었고 전각명이 없는 상태로 오랫동안 사람들에게 ‘구 내반원’, ‘옛 혼궁’으로 일컬어지다가 1816년 혜경궁의 혼궁으로 정해지면서 대대적인 수리와 함께 통화전이라는 전각 명칭을 갖게 되었다.
      통화전이라는 전각 이름을 갖기 전 이곳에는 숙종대 단의빈, 영조대 효장세자와 현빈의 혼궁으로 활용되었다. 적어도 숙종대 단의빈의 상장을 치르면서 이곳이 혼궁 처소로 마련되기 시작했고, 영조대 효장세자와 현빈의 혼궁을 거쳐서 순조대 혜경궁의 혼궁으로 사용된 것이었다.
      그렇다면 국왕이나 왕후의 혼전이 편전에 마련되는 경향과 달리, 세자나 세자빈은 조선후기에 통화전이라는 건물에 혼궁을 마련하는 추세라고 볼 수 있다. 정조비 효의왕후의 혼전이 통화전에 조성되어 예외적인 경우도 있지만 효명세자의 혼궁으로 통화전이 잠시 사용되기도 한 것을 포함하여, 대개 세자나 세자빈의 혼궁으로 통화전이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아울러 그 용도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던 「동궐도」와 「동궐도형」에 그려져 있는 통화전 남쪽 일곽의 행각의 성격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일곽은 18세기 이전에는 국왕의 생활을 보조하는 관서들이 모여 있었던 곳이었으며, 통화전이 혼궁으로 유지되는 기간 동안 부속시설로 사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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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1 "禮記集說大全 (학민문화사 영인본)"

      2 "한국고전종합DB"

      3 장지연, "태조대 경복궁 전각명에 담긴 의미와 사상적 지향" 규장각한국학연구원 (39) : 65-95, 2007

      4 이근호, "조선후기 탕평파와 국정운영" 민속원 2016

      5 이현진, "조선후기 세자빈 禮葬 의례와 그 특징: 賢嬪의 예장을 중심으로" 규장각한국학연구원 (73) : 311-338, 2016

      6 홍순민, "조선후기 동궐 궐내각사 배치 체제의 변동 -『 어제궁궐지』및『궁궐지』의분석을중심으로-" 서울학연구소 (44) : 83-126, 2011

      7 이현진, "조선후기 궁궐의 殿閣 月臺와 의례 — <동궐도>와 <서궐도안>을 대상으로 —" 동양고전학회 (67) : 379-418, 2017

      8 이현진, "조선후기 綏嬪 朴氏의 喪葬 의례와 성격" 조선시대사학회 (76) : 165-205, 2016

      9 "조선왕조실록"

      10 국립문화재연구소, "조선왕실 건축도면"

      1 "禮記集說大全 (학민문화사 영인본)"

      2 "한국고전종합DB"

      3 장지연, "태조대 경복궁 전각명에 담긴 의미와 사상적 지향" 규장각한국학연구원 (39) : 65-95, 2007

      4 이근호, "조선후기 탕평파와 국정운영" 민속원 2016

      5 이현진, "조선후기 세자빈 禮葬 의례와 그 특징: 賢嬪의 예장을 중심으로" 규장각한국학연구원 (73) : 311-338, 2016

      6 홍순민, "조선후기 동궐 궐내각사 배치 체제의 변동 -『 어제궁궐지』및『궁궐지』의분석을중심으로-" 서울학연구소 (44) : 83-126, 2011

      7 이현진, "조선후기 궁궐의 殿閣 月臺와 의례 — <동궐도>와 <서궐도안>을 대상으로 —" 동양고전학회 (67) : 379-418, 2017

      8 이현진, "조선후기 綏嬪 朴氏의 喪葬 의례와 성격" 조선시대사학회 (76) : 165-205, 2016

      9 "조선왕조실록"

      10 국립문화재연구소, "조선왕실 건축도면"

      11 홍은기, "조선시대 혼전(魂殿)공간의 구성에 관한 연구" 국립문화재연구소 45 (45): 74-91, 2012

      12 이현진, "조선시대 문화사 (상)" 일지사 2007

      13 정유미, "조선시대 궁궐의 상·장례공간에 관한 연구" 고려대학교 대학원 2001

      14 황준원, "조선시대 궁궐내 길례·흉례의식 공간에 관한 연구" 동국대학교 대학원 2005

      15 윤정현, "조선시대 궁궐 중심공간의 구조와 변화" 서울대학교 대학원 2000

      16 윤 정, "조선시대 魂殿 운영에 대한 기초적 정리" 28 : 2005

      17 이근호, "조선 후기 국왕의 이어(移御)와 도시 운용" 서울학연구소 (67) : 1-31, 2017

      18 이현진, "조선 왕실의 상장례" 신구문화사 2017

      19 신지혜, "조선 숙종대 왕실 상장례 설행공간의 건축특성 : 빈전·산릉·혼전을 대상으로" 경기대학교 대학원 2011

      20 최성환, "정조대 탕평정국의 군신의리 연구" 서울대학교 대학원 2009

      21 "장서각"

      22 이현진, "외규장각 의궤 연구 흉례凶禮 Ⅰ" 국립중앙박물관 2015

      23 정해득, "왕의 행차: 조선후기 국왕의 융릉․건릉 행행行幸과 의례" 화성시 2014

      24 이현진, "왕의 죽음, 정조의 국장" 글항아리 2015

      25 "승정원일기"

      26 김동욱, "순조즉위년의 창덕궁 선정전 혼전활용에 대하여" 2005

      27 이현진, "순조대 惠慶宮의 喪葬 의례와 성격" 조선시대사학회 (74) : 109-151, 2015

      28 李 燦, "서울의 옛 地圖" 서울시립대학교 부설 서울학연구소 1995

      29 "규장각한국학연구원"

      30 홍석주, "광해군 대의 경덕궁(경희궁) 창건" 서울학연구소 (34) : 1-29, 2009

      31 장필구, "고종 國葬과 창덕궁 신선원전의 조성" 2013

      32 "經國大典 (서울大學校 奎章閣 영인본, 1997. <奎 1298>을 영인함)"

      33 "獻敬惠嬪殯宮魂宮都監儀軌"

      34 이강근, "正祖의 慶熙宮운영과 건축" 서울학연구소 (34) : 65-93, 2009

      35 "東闕圖形 (奎貴 9980)"

      36 "東闕圖"

      37 "朝鮮王朝實錄"

      38 李蕙遠, "景福宮 중건 이후 殿閣構成의 변화-「경복궁배치도」와 「北闕圖形」을 중심으로-" 경기대학교 2009

      39 "昭顯世子殯宮魂宮都監儀軌"

      40 "春官通考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영인본)"

      41 "昌慶宮通和殿圖形"

      42 "日省錄"

      43 "承政院日記"

      44 "懿昭世孫禮葬都監儀軌"

      45 허경진, "宿踐諸衙圖" 민속원 2012

      46 "宮闕誌 (奎 11521)"

      47 "宮闕志 (藏 K2-4363)"

      48 "孝純賢嬪殯宮魂宮兩都監儀軌"

      49 "大典會通 (서울大學校 奎章閣 영인본, 1999. <奎 1302>를 영인함)"

      50 "大典會通 (朝鮮總督府中樞院 영인본)"

      51 "國朝喪禮補編』(奎 3940)"

      52 "國朝五禮儀․ 國朝續五禮儀 (민창문화사 영인본)"

      53 "『賢嬪殯宮魂宮都監儀軌』(奎 14848)"

      54 "『翼宗追崇都監儀軌』(奎 13396)"

      55 "『綏嬪葬禮都監儀軌』(奎 13927)"

      56 "『綏嬪殯宮魂宮都監儀軌』(奎 13934)"

      57 "『端懿嬪禮葬都監儀軌』(奎 13573)"

      58 "『端懿嬪魂宮都監儀軌』(奎 13574)"

      59 "『璿源譜略修正儀軌』(奎 14086)"

      60 "『獻敬惠嬪喪禮謄錄』(藏 K2-3030)"

      61 김남윤, "『昭顯乙酉東宮日記』로 본 昭顯世子의 죽음" 규장각한국학연구원 (32) : 1-16, 2008

      62 "『昭顯世子禮葬都監儀軌』(奎 13918)"

      63 "『昭顯世子殯宮都監儀軌』(奎 13919)"

      64 "『春官通考』(奎 12272)"

      65 "『昌慶宮營建都監儀軌』(奎 14324)"

      66 "『文孝世子殯宮魂宮都監儀軌』(奎 13923)"

      67 "『懿昭世孫殯宮魂宮兩都監儀軌』(奎 14838)"

      68 "『懿昭世孫殯宮魂宮兩都監儀軌』(奎 14838)"

      69 "『惠慶宮喪禮儀註謄錄』(藏 K2-3036)"

      70 "『惠嬪殯宮魂宮都監儀軌』(奎 13612)"

      71 "『思悼世子禮葬都監儀軌』(奎 13605)"

      72 "『思悼世子殯宮魂宮兩都監儀軌』(奎 13606)"

      73 "『宣懿王后國葬都監儀軌』(奎 13576)"

      74 "『孝章世子禮葬都監儀軌』(奎 14875)"

      75 "『孝章世子殯宮都監儀軌』(奎 14857)"

      76 "『孝明世子殯宮魂宮都監儀軌』(奎 13721)"

      77 "『孝懿王后殯殿魂殿都監儀軌』(奎 13650)"

      78 "『孝懿王后國葬都監儀軌』(奎 13649)"

      79 "『國朝五禮通編』(奎 4773)"

      80 "『[孝章世子]喪變時謄錄』(奎 13009)"

      81 정해득, "1795년 을묘년 원행의 성격 고찰" 조선시대사학회 (79) : 515-543,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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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15-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11-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9-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7-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4-01-01 평가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KCI등재
      2003-01-01 평가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2002-01-01 평가 등재후보학술지 유지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1999-01-01 평가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KCI등재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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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준연도 WOS-KCI 통합IF(2년) KCIF(2년) KCIF(3년)
      2016 0.87 0.87 0.96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0.97 0.98 2.253 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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