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고는 조선전기 初期士林派 문인들의 屈原·楚辭 수용 양상과 그 의미를 탐색하기 위한 시도이다. 金宗直(1431~1492)은 굴·초의 일반적인 수용 방식을 보인다. 다만 세계에 대해 유화적인 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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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Korean
초기사림파 ; 굴원 ; 초사 ; 이소 ; 김종직 ; 김일손 ; 정희량 ; 이원 ; The Early Sarimpa Literati ; Qu Yuan ; The Chuci ; Li Sao ; Kim Jong-jik ; Kim Il-son ; Jeong Hee-ryang ; Lee W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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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145-179(3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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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조선전기 初期士林派 문인들의 屈原·楚辭 수용 양상과 그 의미를 탐색하기 위한 시도이다. 金宗直(1431~1492)은 굴·초의 일반적인 수용 방식을 보인다. 다만 세계에 대해 유화적인 태도를 취하고 자신의 출처나 처세를 해명해야 하는 상황에서 굴·초를 활용하고 있음이 유의된다. 그의 제자들은 더욱 강퍅해진 정치현실에서 세계와 치열하게 대결하면서 굴·초 수용에서도 여러 가지 대응 방식과 양상을 드러냈다.
金馹孫(1464~1498)은 응제시 「四十八詠」에서 굴원, 난초의 ‘淸’에 주목했다. 「秋懷賦」, 「疾風知勁草賦」에서는 「離騷」의 戀主之情, 美政의 이상, 우국충정을 계승하면서, 한편으로는 비애와 고독의 정조, 遊子의식을 특화해냈다. 조락의 시간, 폐쇄된 공간, 불통의 언어, 단절된 이상은 자아의 고독을 증폭시켰다. 그는 유배를 경험하지는 않았으나 일종의 심리적 유배자로서 내향적 고독에 침잠했다. 鄭希良(1469~1502?)은 혹독한 유배생활을 하면서 수많은 시를 써냈고 누구보다 자주 굴·초를 소환했다. 특히 「이소」 읽기가 생활 속에 스며들고 굴원과 틈 없는 동일화를 이루어낸 것은 그의 특장점이다. 그는 세계의 주변을 서성이면서 감정을 폭렬하거나 狂으로 이를 해소하려고 시도했다. 이 광은 도피나 초월이 아닌, 주체적, 독립적 자아의 정신, 현실비판의 정신으로 儒家세계에 걸쳐 있다.
두 사람은 세계와 대결의식을 가지고 굴·초 수용을 통해 中正을 벗어난 대응을 보여준 점에서 공통된다. 李?(?~1504)은 다른 길을 제시했다. 그는 원망이나 분노 없이 樂天知命을 노래하면서 節中을 자신의 궁극적 귀결점으로 삼았다. 온건한 심성수양의 방향을 택한 것이다.
초기사림파 문인들은 전복된 세계와 대결하면서 소외, 좌절, 몰락 같은 고난을 경험했다. 이것은 정치적 고립뿐만 아니라 심중한 정신적 고독을 형성했다. 이 고독은 국가의 善, 정치이상을 추구하다 초래된 것이라는 점에서 개인의 감정 차원을 넘어선다. 대체로 말하면 이 시기에는 온건한 내면화 방향보다는, 굴·초 수용을 통해 세계와의 대결의식과 고독을 中正을 넘어서는 수준까지 표출 또는 형상화하는 경향이 우세했다. 이 점에서 이를 15세기 후반 정신사의 한 특질로 파악해도 좋을 것이다.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This study aims to explore how the early Sarimpa literati in the early Joseon period accepted Qu Yuan and the Chuci and what its acceptance means. Kim Jong-jik(金宗直, 1431-1492) seems to have shown an attitude of generally accepting Qu Yuan and th...
This study aims to explore how the early Sarimpa literati in the early Joseon period accepted Qu Yuan and the Chuci and what its acceptance means. Kim Jong-jik(金宗直, 1431-1492) seems to have shown an attitude of generally accepting Qu Yuan and the Chuci. However, he seems to have taken an appeasing attitude toward the world and to have utilized Qu Yuan and the Chuci in situations where he had to clarify his provenance and way of living. In a tough confrontation with the world in a hardened political reality, his disciples showed various responses and aspects in accepting Qu Yuan and the Chuci.
Kim Il-son(金馹孫, 1464-1498) paid attention to ‘Purity’ of Qu Yuan and orchids in the poem < Sasibpalyeong(四十八詠) >. In < Chuhoebu(秋懷賦) > and < Jilpungjigyeongchobu(疾風知勁草賦) >, he inherited the love of King, the ideal of good politics, and patriotism connoted in the poem < Li Sao(離 騷) >, and highlighted the emotions of sorrow and loneliness and vagabondism. The time of leaf-falling, the closed space, the uncommunicative language and the disconnected ideal amplified the loneliness of his own self. Although he did not experience exile, he immersed himself in deep inner loneliness as a kind of psychological exile.
Jeong Hee-ryang(鄭希良, 1469-1502?) wrote a lot of poems while suffering a harsh exile, and cited Qu Yuan and the Chuci more frequently than anyone else. In particular, it is his merit that reading < Li Sao > penetrated into his life, which led to his achieving almost complete identification with Qu Yuan. While standing around the world. he tried to express his feeling or dissolve it through craziness. This craziness is not escape or transcendence but the spirit of subjective and independent self and the spirit of reality criticism, and it spreads to a Confucian world.
These two are common in that they showed a response out of fairness through the acceptance of Qu Yuan and the Chuci with a sense of confrontation with the world. Lee Won(李?, ?-1504) presented a different way than that. He sung a song for the realization of and conformity to God's will, without sorrow or anger, and took the direction of cultivating a well-balanced mind.
The early Sarimpa literati experienced sufferings such as alienation, frustration and downfall in confrontation with the overthrown world. This formed not only political isolation but also deep loneliness. This loneliness goes beyond individual emotions in that it was generated during the search of the good of the nation and the ideal of politics. Generally speaking, at that time, there was a tendency to expose or shape a sense of confrontation with the world and loneliness through acceptance of Qu Yuan and the Chuci to a level beyond fairness rather than the direction of moderate internalization. In this sense, it can be viewed as a characteristic of the history of spirits in the late 15th century.
참고문헌 (Refer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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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秋江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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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佔畢齋詩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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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김보경, "「遊金剛錄」에 나타난 再思堂 李黿의 산수 인식과 그 정신사적 의미" 동양한문학회 31 (31): 47-82,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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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1-01 | 등재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 |
| 2011-01-01 | 등재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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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지 인용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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