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대양의 동사만록(東漫錄)은 1884년의 말미에서 1885년의 초입까지의 두 공간, 근대 형성기의 조선과 메이지 일본을 통과하며 작성된 일종의 간문화적(間文化的) 견문기이자 국외 여행기이다...
박대양의 동사만록(東漫錄)은 1884년의 말미에서 1885년의 초입까지의 두 공간, 근대 형성기의 조선과 메이지 일본을 통과하며 작성된 일종의 간문화적(間文化的) 견문기이자 국외 여행기이다. 우선적으로 ‘정학’과 ‘문명’의 맞섬, 풍경과 신념의 결렬이 문제시되었다. 조폐국기기창공작단련군훈련을 보며 느낀 유학자의 자본주의관, 박물관동물원이라는 근대적 표상 공간에서 경험한 ‘포위’의 감각과 이화감, 서구화와 내셔날리즘이 만나 펼쳐진 로쿠메이칸에서 떠올린 덕화의 사고를 장면화하면서, 표상 내셔날리즘과 춘추대의의 토론을 재구성하려 해보았다.다음으로, 메이지 일본을 완전히 외부화해 장면화하고, 절대적 타자로 그려낸 한 유학자의 시점을 통해, 이 글은 메이지 일본의 표상 내셔날리즘과 그것이 국수와 전통의 논리로 전이되고, 보충되는 과정을 검토했다. 불평등조약의 개정을 위한 운동이 불러일으킨 서구화의 열기는 서구와 외적으로 동일한 문화적 장과 재현 체계를 갖춤으로써―즉, ‘같아 지는 것’을 통해 서구와 동등한 지위를 획득할 수 있다는 의식에 의해 지탱되었다. 로쿠메이칸의 무도회는 그 열기의 대표격이다. 그러나 서구가 불러주는 대로 써나감으로써 동등해진다는 사고, 모방에의 정열은 경제 관계에 의해 배반당했고, 모방은 오히려 풍자의 근거가 되었다. 조약 개정 운동의 실패는 일본을 급격히 국수화시켰으며, 국수와 전통, 일본인이라는 가치―즉 ‘다르다’라는 술어가 ‘국민’국가라는 중산계급의 이데올로기를 대규모적으로 생산하기 시작했다. 박대양은 이러한 의서구화로의 항해에서 기자의 뗏목을 떠올렸고, 표상 이면의 자본과 제국을 발견해냈다. 그 발견은 춘추대의와 덕화의 관점을 단단히 붙드는 일을 통해 가능했던 발견이었고, 박대양은 이러한 신념의 수사를 통해 여타의 수신사 기록과는 구별되는 ‘서술의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