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병합 이전 인천은 한국에서 서구 근대 문물 유입의 창구로서 위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병합 이후 인천은 ‘세계와 한국의 만남의 장소’로서 위상을 잃어버렸다. 그 대신 인천이 ...

http://chineseinput.net/에서 pinyin(병음)방식으로 중국어를 변환할 수 있습니다.
변환된 중국어를 복사하여 사용하시면 됩니다.
https://www.riss.kr/link?id=A101778841
2011
Korean
KCI등재후보
학술저널
45-78(34쪽)
11
0
상세조회0
다운로드강제병합 이전 인천은 한국에서 서구 근대 문물 유입의 창구로서 위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병합 이후 인천은 ‘세계와 한국의 만남의 장소’로서 위상을 잃어버렸다. 그 대신 인천이 ...
강제병합 이전 인천은 한국에서 서구 근대 문물 유입의 창구로서 위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병합 이후 인천은 ‘세계와 한국의 만남의 장소’로서 위상을 잃어버렸다. 그 대신 인천이 새롭게 가지게 된 중요한 위상 중 하나는 대도시 경성에 인접한 해안 행락지로서 위상이었다. 이 위상은 1910년대부터 시작된 월미도 유원지의 개발과 1930년대 후반 송도 유원지의 개발로 실현되었다. 월미도 유원지와 송도 유원지는 모두 천혜의 풍광을 가진 곳이었지만, 식민지권력의 인공적 개발 과정을 거쳐 비로소 근대 도시인의 행락지가 되었다. 그리고 행락지의 인공미는 조선인이 식민지 근대를 내면화하는 유력한 통로로 기능했다. 물론 이런 근대적 행락지로서 위상에 대한 ‘다른 시선’도 있었다. 근대적 행락지에 고유한 조선적 의미를 부여하려는 시도도 존재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런 시선은 다수의 것일 수 없었다. 한편 1930년대 후반 경성과 인천을 하나의 권역으로 한 광역도시계획 구상 속에서 인천의 행락지로서 위상은 다시 한 번 부각되었다. 그리고 그에 따라 경성-인천 간 고속도로 계획 같은 것이 등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전쟁이 격화되는 가운데 이런 계획은 공상에 그칠 수 밖에 없었다. 오히려 전시체제가 심화되면서 인천의 행락지로서 위상을 대체한 것은 이른바 연성(鍊成)이었다. 그런데 연성은 실질적으로는 행락의 다른 이름이기도 했다. 행락지로서 위상은 단절되지 않았다.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After the Annexation in 1910, Incheon lost the former status of the “meeting place of the world and Joseon”, as a major portal of the nation, through which western culture flew into the traditional society. Instead, the port city, adjacent to the ...
After the Annexation in 1910, Incheon lost the former status of the “meeting place of the world and Joseon”, as a major portal of the nation, through which western culture flew into the traditional society. Instead, the port city, adjacent to the metropolis Kyeongseong, emerged as a recreation spot on the beach for the colonial capital city dwellers to casually visit and enjoy leisure. The potential realized by the consecutive development projects of the Wolmido Resort, started in 1910's and the Songdo Resort in late 1930's. Though both Wolmido and Songdo were naturally beautiful places, they became tourist attractions only through the development efforts by the colonial administration. The amenities and artificial attractions at these two resorts functioned as a major channel, through which Korean people internalized the colonial modernity. Meanwhile, there existed “another point of view” on Incheon's status of a modern resort city. Those who attempted an alternative view, tried to put a meaning related to traditional Joseon to the modern resorts of Incheon, but failed to form a social consensus on their cause. In late 1930's, Incheon's status of a resort city regained attention in terms of the idea of metro-politan city planning, which encompassed Kyeongseong and Incheon in one vast zone. The project of building a highway between Kyeongseong and Incheon was brought out, but with the aggravated progress of the war, the project was abandoned. Instead, as the society was reorganized on a war footing, Incheon imposed a new role of the "training camp" for citizens, though "training(鍊成)", encouraged by the wartime leaders, meant recreation in practice. Therefore Incheon's role of a recreation spot kept alive.
참고문헌 (Reference)
1 김인호, "태평양전쟁기 조선공업연구" 신서원 1998
2 이희환, "철도로 떠나는 근대도시기행 - 인천문필가 玄의 부산기행" 인천광역시립박물관 2008
3 이언영, "철도로 떠나는 근대도시기행 - 부산사람 B씨의 인천기행" 부산근대역사관 2008
4 배성준, "전시(1937-45)통제하 경인공업지대의 형성" 1 : 2000
5 손환, "일제하 인천월미도의 여가시설에 관한 연구" 한국체육학회 44 (44): 3-10, 2005
6 배석만, "일제시기 조선기계제작소(朝鮮機械製作所)의 설립과 경영(1937~1945)" 인천학연구원 1 (1): 167-194, 2009
7 염복규, "일제말기 지방․국토계획론과 경인시가지계획" 서울학연구소 (32) : 171-204, 2008
8 橋谷弘, "일본 제국주의, 식민지도시를 건설하다" 모티프 2005
9 今井猪之助, "인천향토사료조사사항 하" 인천학연구원 2007
10 이영호, "월미도가 경험한 근대의 세계" 1 : 2003
1 김인호, "태평양전쟁기 조선공업연구" 신서원 1998
2 이희환, "철도로 떠나는 근대도시기행 - 인천문필가 玄의 부산기행" 인천광역시립박물관 2008
3 이언영, "철도로 떠나는 근대도시기행 - 부산사람 B씨의 인천기행" 부산근대역사관 2008
4 배성준, "전시(1937-45)통제하 경인공업지대의 형성" 1 : 2000
5 손환, "일제하 인천월미도의 여가시설에 관한 연구" 한국체육학회 44 (44): 3-10, 2005
6 배석만, "일제시기 조선기계제작소(朝鮮機械製作所)의 설립과 경영(1937~1945)" 인천학연구원 1 (1): 167-194, 2009
7 염복규, "일제말기 지방․국토계획론과 경인시가지계획" 서울학연구소 (32) : 171-204, 2008
8 橋谷弘, "일본 제국주의, 식민지도시를 건설하다" 모티프 2005
9 今井猪之助, "인천향토사료조사사항 하" 인천학연구원 2007
10 이영호, "월미도가 경험한 근대의 세계" 1 : 2003
11 추교찬, "월미도 유원지와 경인선" 인천광역시립박물관 2008
12 김주리, "식민지 시대 소설 속 해수욕장의 공간 표상" 인문과학연구소 (58) : 157-188, 2010
13 염복규, "식민지 도시계획의 유산과 그에 대한 인식 -손정목, 『日帝强占期都市計劃硏究』를 중심으로-" 한국사연구회 (149) : 401-422, 2010
14 견수찬, "근대 인천의 철도 교통(1899~1945)" 인천광역시립박물관 2008
15 仁川敎育會, "譯註 仁川鄕土誌" 인천광역시 역사자료관 역사문화연구실 2005
16 仁川商工會議所, "譯註 仁川港" 인천광역시 역사자료관 역사문화연구실 2005
17 有山輝雄, "海外觀光旅行の誕生" 吉川弘文館 2002
18 윤옥경, "水仁線 鐵道의 기능 변화에 관한 연구" 28 : 1992
19 "東亞日報, 每日申報, 每日新報, 朝鮮新聞, 中外日報"
20 鈴木武雄, "朝鮮經濟の新 構想" 東亞經濟新報社 京城支局 1942
21 이희환, "仁川아, 너는 엇더한 도시?" 역락 2008
22 견수찬, "京東鐵道(水驪·水仁線)의 부설과 변천" 10 : 2003
23 염복규, "1930~40년대 인천지역의 행정구역 확장과 시가지계획의 전개" 6 : 2007
24 김영수, "1920~30년대 인천의 ‘관광도시’ 이미지 형성 – ‘인천 안내서’를 중심으로" 인천학연구원 1 (1): 83-112, 2009
식민지기 인천상공의의 설립과정과 역할에 관한 제도주의적 고찰
학술지 이력
| 연월일 | 이력구분 | 이력상세 | 등재구분 |
|---|---|---|---|
| 2026 | 평가 |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 |
| 2020-01-01 | 등재 |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 ![]() |
| 2017-01-01 | 등재 |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 ![]() |
| 2014-01-01 | 등재 | 등재학술지 선정 (계속평가) | ![]() |
| 2013-01-01 | 등재 |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 ![]() |
| 2012-01-01 | 등재 | 등재후보학술지 유지 (기타) | ![]() |
| 2011-01-01 | 등재 |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 ![]() |
| 2009-01-01 | 등재 |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 ![]() |
학술지 인용정보
| 기준연도 | WOS-KCI 통합IF(2년) | KCIF(2년) | KCIF(3년) |
|---|---|---|---|
| 2016 | 0.63 | 0.63 | 0.53 |
| KCIF(4년) | KCIF(5년) | 중심성지수(3년) | 즉시성지수 |
| 0.58 | 0.53 | 1.059 | 0.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