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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방 후 한글운동에서의 이극로의 위상 = A Status of Lee Guk-ro in the Hangeul Movement during the Liberation Peri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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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www.riss.kr/link?id=A104067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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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The purpose of this article is to analyze a status of Lee Guk-ro in the Hangeul Movement during
      the Liberation Period in the history of Korea. Lee Guk-ro was a nationalist and a Hangeul scholar.
      He and his comrades(Choi Hyunpae, Chang Jiyoung) reestablished the Korean Language Society(朝鮮
      語學會). They contributed the exclusive use of Hangeul in the language policy of the USA Military
      Government Office of South Korea(美軍政廳). He took an active part in the National Language
      Purification Committee(國語淨化委員會), and participated in the compilation of Hangeul textbooks,
      and spreaded the Hangeul script. He played a decisive role in the compilation of Hangeul dictionary.
      For the purpose of the elimination of illiteracy and the recovery of the Korean language, he asserted
      firmly the abolition of Chinese characters. He claimed that the present is most opportune for using
      of Hangeul exclusively. He launched a movement for spread of Hangeul, and simultaneously started
      a movement for elimination of Chinese characters. A progressive nationalist Lee Gukro played a
      leading role in the Hangeul Movement of the Korean Language Society during the Liberation Period.
      After He stayed behind in North Korea, Choi Hyunpae led the Hangeul movement of the Korean
      Language Society in South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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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 purpose of this article is to analyze a status of Lee Guk-ro in the Hangeul Movement during the Liberation Period in the history of Korea. Lee Guk-ro was a nationalist and a Hangeul scholar. He and his comrades(Choi Hyunpae, Chang Jiyoung) reestab...

      The purpose of this article is to analyze a status of Lee Guk-ro in the Hangeul Movement during
      the Liberation Period in the history of Korea. Lee Guk-ro was a nationalist and a Hangeul scholar.
      He and his comrades(Choi Hyunpae, Chang Jiyoung) reestablished the Korean Language Society(朝鮮
      語學會). They contributed the exclusive use of Hangeul in the language policy of the USA Military
      Government Office of South Korea(美軍政廳). He took an active part in the National Language
      Purification Committee(國語淨化委員會), and participated in the compilation of Hangeul textbooks,
      and spreaded the Hangeul script. He played a decisive role in the compilation of Hangeul dictionary.
      For the purpose of the elimination of illiteracy and the recovery of the Korean language, he asserted
      firmly the abolition of Chinese characters. He claimed that the present is most opportune for using
      of Hangeul exclusively. He launched a movement for spread of Hangeul, and simultaneously started
      a movement for elimination of Chinese characters. A progressive nationalist Lee Gukro played a
      leading role in the Hangeul Movement of the Korean Language Society during the Liberation Period.
      After He stayed behind in North Korea, Choi Hyunpae led the Hangeul movement of the Korean
      Language Society in South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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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해방 후 이극로는 동지들과 조선어학회를 재건하고, 그 대표(간사장·상무이사)로 활동하였다. 초중등
      교원을 양성하고자 사범 강습회를 열고, 국어 교과서 편찬에도 관여하였다. 또한 『조선말 큰사전』 1권
      출간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그에게 말과 글은 민족의 정신과 생명이었다. 말과 글의 개선을 통해 통
      일 민족국가를 건설할 수 있다고 전망하였다. 이를 관철하고자 한글전용운동과 한글보급운동을 전개하였
      다. 한글전용을 위해 한자폐지회를 조직하였다. 여기서 초·중등 교과서의 국문전용을 주장하여 미군정
      의 언어정책에 반영시켰다. 또한 일본말의 잔재를 청산하고자 국어정화위원회에 위원으로 참여하였다.
      한글보급을 위해 한글문화보급회와 조선어학회 동학회를 결성하여 적극 활동하였다. 물론 한글운동이 순
      조롭게 전개되는 배경에는 미군정에 참여한 최현배와 장지영의 활약도 작용하였다. 이들과 함께 이극로
      가, 미군정이 조직한 조선교육심의회에 참여하였기 때문에 그들의 언어정책에 영향을 미칠 수 있었다. 해
      방 후 3년 기간에 남한의 제도권 교육에 한글전용과 한자폐지가 실시되었다. 여기에는 주시경의 노선을
      계승한 이 세 사람의 공적이 가장 컸다고 평가할 수 있다. 이상을 통해 필자는 해방 후 한글운동의 전개
      에서 이극로가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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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방 후 이극로는 동지들과 조선어학회를 재건하고, 그 대표(간사장·상무이사)로 활동하였다. 초중등 교원을 양성하고자 사범 강습회를 열고, 국어 교과서 편찬에도 관여하였다. 또한 『조...

      해방 후 이극로는 동지들과 조선어학회를 재건하고, 그 대표(간사장·상무이사)로 활동하였다. 초중등
      교원을 양성하고자 사범 강습회를 열고, 국어 교과서 편찬에도 관여하였다. 또한 『조선말 큰사전』 1권
      출간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그에게 말과 글은 민족의 정신과 생명이었다. 말과 글의 개선을 통해 통
      일 민족국가를 건설할 수 있다고 전망하였다. 이를 관철하고자 한글전용운동과 한글보급운동을 전개하였
      다. 한글전용을 위해 한자폐지회를 조직하였다. 여기서 초·중등 교과서의 국문전용을 주장하여 미군정
      의 언어정책에 반영시켰다. 또한 일본말의 잔재를 청산하고자 국어정화위원회에 위원으로 참여하였다.
      한글보급을 위해 한글문화보급회와 조선어학회 동학회를 결성하여 적극 활동하였다. 물론 한글운동이 순
      조롭게 전개되는 배경에는 미군정에 참여한 최현배와 장지영의 활약도 작용하였다. 이들과 함께 이극로
      가, 미군정이 조직한 조선교육심의회에 참여하였기 때문에 그들의 언어정책에 영향을 미칠 수 있었다. 해
      방 후 3년 기간에 남한의 제도권 교육에 한글전용과 한자폐지가 실시되었다. 여기에는 주시경의 노선을
      계승한 이 세 사람의 공적이 가장 컸다고 평가할 수 있다. 이상을 통해 필자는 해방 후 한글운동의 전개
      에서 이극로가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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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1 송건호, "해방전후사의 인식 1" 한길사 1979

      2 문교부, "한자 안쓰기의 이론" 조선교학도서주식회사 1948

      3 한글학회, "한글학회 50년사" 한글학회 1971

      4 서중석, "한국현대민족운동연구" 역사비평사 1991

      5 고영근, "통일시대의 어문문제" 길벗 1994

      6 강만길, "통일 지향 우리민족해방운동사" 역사비평사 2000

      7 고영근, "최현배의 학문과 사상" 집문당 1995

      8 김민수, "조선어학회의 창립과 그 연혁" 5 : 1990

      9 고영근, "이 극로의 어학사상의 위치" 한글학회 281 (281): 5-34, 2008

      10 문교부, "우리말 도로찾기" 조선교학도서주식회사 1948

      1 송건호, "해방전후사의 인식 1" 한길사 1979

      2 문교부, "한자 안쓰기의 이론" 조선교학도서주식회사 1948

      3 한글학회, "한글학회 50년사" 한글학회 1971

      4 서중석, "한국현대민족운동연구" 역사비평사 1991

      5 고영근, "통일시대의 어문문제" 길벗 1994

      6 강만길, "통일 지향 우리민족해방운동사" 역사비평사 2000

      7 고영근, "최현배의 학문과 사상" 집문당 1995

      8 김민수, "조선어학회의 창립과 그 연혁" 5 : 1990

      9 고영근, "이 극로의 어학사상의 위치" 한글학회 281 (281): 5-34, 2008

      10 문교부, "우리말 도로찾기" 조선교학도서주식회사 1948

      11 김석득, "외솔 최현배의 학문과 사상" 연세대 출판부 2000

      12 이준식, "언어의 분단을 막은 두 한글학자―김두봉과 최현배" 역사문제연구소 82 (82): 41-67, 2008

      13 고영근, "북한의 언어문화" 서울대 출판부 1998

      14 박용규, "북으로 간 한글운동가 이극로 평전" 차송 2005

      15 고영근, "민족어의 수호와 발전" 제이앤씨 2008

      16 김용일, "미군정하의 교육정책연구" 고려대학교 1994

      17 이나바 쓰지오, "미군정하에 있어서 언어정책의 전개 in: 해방후 한국의 교육정책" 한국연구원 1987

      18 이광호, "미군정의 교육정책 in: 해방전후사의 인식 2" 한길사 1985

      19 이응호, "미군정기의 한글운동사" 성청사 1974

      20 최현배, "글자의 혁명" 조선교학도서주식회사 1947

      21 이극로, "고투사십년" 을유문화사 1947

      22 박지홍, "고루 이극로 박사의 교훈" 22 : 1994

      23 박용규, "1920년대 이극로의 『독립운동』·『독립투쟁』과 현실 인식" 역사문화연구소 (31) : 65-100,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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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KCI등재
      2018-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15-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13-06-12 학술지명변경 외국어명 : 미등록 -> The Oriental Studies KCI등재
      2013-03-13 학회명변경 한글명 : 동양학연구소 -> 동양학연구원
      영문명 : Dankook University Institute of Oriental Studies -> Academy of Asian Studies, Dankook University
      KCI등재
      2011-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9-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7-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4-01-01 등재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KCI등재
      2003-01-01 등재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2001-07-01 등재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KCI등재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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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술지 인용정보

      학술지 인용정보
      기준연도 WOS-KCI 통합IF(2년) KCIF(2년) KCIF(3년)
      2016 0.7 0.7 0.68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0.64 0.63 1.457 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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