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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財政史의 각도에서 다시 보는 <朝淸商民水陸貿易章程>(1882) = The Reevaluation of Regulation for Transportation and Trade between Korea and China from the Viewpoint of Financial H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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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So many studies on the Sino-Korea Relationships in late 19th century has focused on ‘imperialistic’ significance on the part of China, but on the contrary various materials reveal that Chosun Government also reacted very positively to the signing of the Regulation. In fact, one of the most powerful motive of Chosun Government about the Regulation was to enhance its financial ability through foreign trade and increased tariffs. The key person of the Regulation, Eo, Yoon-joong also planned and enacted a very radical financial policy, that is to reduce the number of public officials which already became financial burden. Though it has failed, we can clearly see the main purpose of Eo.
      In addition, foreign trade which was promoted in order to increase the government's revenue, especially ginseng trade, did not show the anticipated result, mainly due to the unspecialized state between government finance and court finance and privatization of ginseng trade by the court. As far as finance and foreign trade is concerned, the most critical problem in late 19th century Chosun society was ‘internal’, not ‘extern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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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o many studies on the Sino-Korea Relationships in late 19th century has focused on ‘imperialistic’ significance on the part of China, but on the contrary various materials reveal that Chosun Government also reacted very positively to the signing ...

      So many studies on the Sino-Korea Relationships in late 19th century has focused on ‘imperialistic’ significance on the part of China, but on the contrary various materials reveal that Chosun Government also reacted very positively to the signing of the Regulation. In fact, one of the most powerful motive of Chosun Government about the Regulation was to enhance its financial ability through foreign trade and increased tariffs. The key person of the Regulation, Eo, Yoon-joong also planned and enacted a very radical financial policy, that is to reduce the number of public officials which already became financial burden. Though it has failed, we can clearly see the main purpose of Eo.
      In addition, foreign trade which was promoted in order to increase the government's revenue, especially ginseng trade, did not show the anticipated result, mainly due to the unspecialized state between government finance and court finance and privatization of ginseng trade by the court. As far as finance and foreign trade is concerned, the most critical problem in late 19th century Chosun society was ‘internal’, not ‘extern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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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19세기 말 한중관계사에 관한 대부분의 기존 연구가 청조의 ‘제국주의적’(또는 ‘억압적’) 성격을 과도하게 강조한 나머지 <장정>의 또 하나의 주체였던 조선정부가 왜 <장정>을 체결하려 했으며, <장정>을 통해 무엇을 얻으려 했는지는 그다지 주목하지 않는 결과를 낳았고, 때문에 조선정부의 ‘非主體的’ 성격을 강조하는 결과를 낳은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든다. <장정> 체결의 전후 사정을 상세하게 전하고 있는 여러 사료들에 나타난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장정> 교섭에 임하는 조선정부의 ‘의외의’적극성이다. 이러한 조선정부의 적극성은 <장정>의 중요한 특징을 이루는 ‘屬邦’규정을 청조가 강요했다는 종래의 통설을 재고하게 만든다.
      <장정> 체결에 임했던 조선정부의 가장 강력한 실질적 동기 중 하나는 (대외통상을 통한) 재원확보에 있었다. 통상교섭을 실질적으로 주도했던 魚允中은 청조측 대표인 署理北洋大臣 張樹聲과 天津海關道 周馥에 대해 ① 北道 開市 혁파 및 商民 供饋 폐지, ② 派使駐京, ③ 海禁 철폐 및 通商을 제기했다. 이 세 문제는 모두 기존의 재정지출을 줄이고 새로운 재원을 확보하려는 목적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이렇게 재정·경제 전문가로서 능력을 발휘한 어윤중은 <장정> 체결 직후 감생청을 설치·운영했는데, 비록 실패로 돌아가긴 했지만 이 역시 조선정부의 재정개혁을 위한 조치였다. 뿐만 아니라 재정 증대를 위해 실행한 대외무역, 특히 인삼무역은 당초 기대했던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이는 정부재정과 왕실재정의 미분리라는 제도적 문제와 더불어 인삼무역의 궁중에 의한 사유화와 독점에 기인한 것이었다. 이렇게 본다면 1880년대 조선사회의 핵심적인 문제는 ‘外壓’보다 차라리 ‘內壓’에 있었다고 보아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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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세기 말 한중관계사에 관한 대부분의 기존 연구가 청조의 ‘제국주의적’(또는 ‘억압적’) 성격을 과도하게 강조한 나머지 <장정>의 또 하나의 주체였던 조선정부가 왜 <장정>을 ...

      19세기 말 한중관계사에 관한 대부분의 기존 연구가 청조의 ‘제국주의적’(또는 ‘억압적’) 성격을 과도하게 강조한 나머지 <장정>의 또 하나의 주체였던 조선정부가 왜 <장정>을 체결하려 했으며, <장정>을 통해 무엇을 얻으려 했는지는 그다지 주목하지 않는 결과를 낳았고, 때문에 조선정부의 ‘非主體的’ 성격을 강조하는 결과를 낳은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든다. <장정> 체결의 전후 사정을 상세하게 전하고 있는 여러 사료들에 나타난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장정> 교섭에 임하는 조선정부의 ‘의외의’적극성이다. 이러한 조선정부의 적극성은 <장정>의 중요한 특징을 이루는 ‘屬邦’규정을 청조가 강요했다는 종래의 통설을 재고하게 만든다.
      <장정> 체결에 임했던 조선정부의 가장 강력한 실질적 동기 중 하나는 (대외통상을 통한) 재원확보에 있었다. 통상교섭을 실질적으로 주도했던 魚允中은 청조측 대표인 署理北洋大臣 張樹聲과 天津海關道 周馥에 대해 ① 北道 開市 혁파 및 商民 供饋 폐지, ② 派使駐京, ③ 海禁 철폐 및 通商을 제기했다. 이 세 문제는 모두 기존의 재정지출을 줄이고 새로운 재원을 확보하려는 목적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이렇게 재정·경제 전문가로서 능력을 발휘한 어윤중은 <장정> 체결 직후 감생청을 설치·운영했는데, 비록 실패로 돌아가긴 했지만 이 역시 조선정부의 재정개혁을 위한 조치였다. 뿐만 아니라 재정 증대를 위해 실행한 대외무역, 특히 인삼무역은 당초 기대했던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이는 정부재정과 왕실재정의 미분리라는 제도적 문제와 더불어 인삼무역의 궁중에 의한 사유화와 독점에 기인한 것이었다. 이렇게 본다면 1880년대 조선사회의 핵심적인 문제는 ‘外壓’보다 차라리 ‘內壓’에 있었다고 보아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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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1 고구려연구재단, "한중관계사: 연구논저목록(근현대)" 2005

      2 洪淳權, "한말시기 開城地方 蔘圃農業의 전개양상(上) - 1896년 蔘圃摘奸成冊의 분석을 중심으로" 13 (13): 1987

      3 구선희, "한국 근대 대청정책사 연구" 혜안 1999

      4 이영훈, "조선후기 경제사 연구의 새로운 동향과 과제 in: 수량경제사로 다시 본 조선후기" 서울대학교 출판부 2004

      5 金正起, "조선정부의 淸 차관도입(1882-1894)" 3 :

      6 황현, "역주 매천야록(상)" 문학과지성사 2005

      7 김정기, "대원군 납치와 반청의식의 형성(1882~1894)" 19 : 1988

      8 권혁수, "근대 한중관계사의 재조명" 혜안 2007

      9 서영희, "개항기 봉건적 국가재정의 위기와 민중수탈의 강화 in: 1894년 농민전쟁연구Ⅰ - 농민전쟁의 사회경제적 배경" 역사비평사 1991

      10 한국학문헌연구소, "魚允中全集" 서울아세아문화사 1979

      1 고구려연구재단, "한중관계사: 연구논저목록(근현대)" 2005

      2 洪淳權, "한말시기 開城地方 蔘圃農業의 전개양상(上) - 1896년 蔘圃摘奸成冊의 분석을 중심으로" 13 (13): 1987

      3 구선희, "한국 근대 대청정책사 연구" 혜안 1999

      4 이영훈, "조선후기 경제사 연구의 새로운 동향과 과제 in: 수량경제사로 다시 본 조선후기" 서울대학교 출판부 2004

      5 金正起, "조선정부의 淸 차관도입(1882-1894)" 3 :

      6 황현, "역주 매천야록(상)" 문학과지성사 2005

      7 김정기, "대원군 납치와 반청의식의 형성(1882~1894)" 19 : 1988

      8 권혁수, "근대 한중관계사의 재조명" 혜안 2007

      9 서영희, "개항기 봉건적 국가재정의 위기와 민중수탈의 강화 in: 1894년 농민전쟁연구Ⅰ - 농민전쟁의 사회경제적 배경" 역사비평사 1991

      10 한국학문헌연구소, "魚允中全集" 서울아세아문화사 1979

      11 李鉉淙, "高宗 때 減省廳設置에 대하여 in: 金載元博士回甲紀念論叢" 을유문화사 1969

      12 第一銀行, "韓國ニ於ケル第一銀行" 1908

      13 金允植, "雲養先生文集" 韓國歷代文集叢書

      14 최태호, "近代韓國經濟史 硏究序說 - 開港期의 韓國關稅制度와 民族經濟" 국민대학교출판부 1991

      15 金載昊, "近代的財政制度の成立過程における皇室財政 - 韓國と日本との比較" 175 : 2000

      16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舊韓國外交關係附屬文書"

      17 鄭玉子, "紳士遊覽團考" 27 : 1965

      18 고병익, "穆麟德의 雇聘과 그 背景" 25·26·27 : 1964

      19 김용섭, "甲申·甲午改革期 開化派의 農業論 in: 韓國近代農業史硏究" 一潮閣 1981

      20 全海宗, "淸代 韓中朝貢關係考 in: 韓中關係史硏究" 一潮閣 1970

      21 金玉根, "朝鮮王朝財政史硏究" 일조각 1992

      22 金玉根, "朝鮮王朝財政史硏究" 일조각 1986

      23 秋月望, "朝中間の三貿易章程の締結經緯" 115 : 1985

      24 金鍾圓, "朝中商民水陸貿易章程에 대하여" 32 :

      25 강진아, "廣東네트워크(Canton-Networks)와 朝鮮華商 同順泰" (88) :

      26 今村?, "人蔘史" 朝鮮總督府專賣局 1940

      27 강선숙, "一齋 魚允中 硏究" 인하대학교 1983

      28 金允植, "『陰晴史』(國史編纂委員會 編)"

      29 釜山港監理署, "『時急公用費調達件에 관한 件』(서울대학교 奎章閣 所藏), 高宗28년(1891)"

      30 兪吉濬, "『兪吉濬全書』Ⅳ(政治經濟編)"

      31 今村?, "『人蔘史』(第6卷: 人蔘雜記篇)"

      32 今村?, "『人蔘史』(第2卷: 人蔘政治篇)"

      33 박봉식, "?메릴 書簡?, 『김재원박사회갑기념논총』"

      34 金鍾星, "1899년 韓淸通商條約의 硏究" 성균관대학교 2005

      35 金順德, "1876~1905년 關稅政策과 關稅의 운용" 15 : 1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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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KCI등재
      2017-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KCI등재
      2013-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10-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8-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5-05-31 학술지명변경 한글명 : 외대사학 -> 역사문화연구 KCI등재
      2005-01-01 평가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KCI등재
      2004-01-01 평가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2002-01-01 평가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KCI등재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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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준연도 WOS-KCI 통합IF(2년) KCIF(2년) KCIF(3년)
      2016 0.75 0.75 0.64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0.56 0.49 1.216 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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