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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도일사(東渡日史)』를 통해 본 19세기 말 향촌 지식인의 동아시아 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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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www.riss.kr/link?id=A103590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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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동도일사(東渡日史)』는 1880년 제2차 수신사 김홍집이 일본에 갔을 때 향서기로 수행했던 박상식(朴祥植)이 남긴 사행기록이다. 본고는 『동도일사』의 일기 부분을 중심으로 저자 박상식의 일본 및 동아시아 인식의 양상을 검토함으로써 19세기 말 조선의 향촌 지식인의 세계 인식의 한 특징을 확인하고자 하였다. 『동도일사』에 나타나는 저자의 일본 및 동아시아 인식의 특징과 의의는 다음과 같다. 첫째, 일본에서 접한 서구문물에 대한 박상식의 반응은 ‘몰이해’에 가까우며, 이는 개화정책이 아직 현실화되지 않았던 1880년 당시 조선 문인들의 일반적인 인식을 반영한 것이다. 또, 박상식은 급변하는 세계정세와 러시아의 위협에 대한 일본 관료들의 주장을 과장된 것으로 치부하면서도 그에 대한 명확한 비판은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데, 이것 역시 개항과 국제관계에 대한 동시대 일반 문인들의 막연한 인식을 대표하고 있다. 둘째, 박상식은 수신사행에 참여함으로써 ‘서양(西洋)’의 존재를 비로소 인지하게 되었으며, 이는 일본에 대한 의구심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 같은 동양인으로서 친밀감을 느끼게 하는 계기로 작용했다. 그는 또한 청나라에 ‘중화(中華)’로서의 일정한 역할을 기대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그의 인식은 동아시아 세계에 대한 전통적인 화이론적 인식과 개항기의 새로운 인식이 착종되고 있었던 당시의 상황을 보여준다. 또한 박상식은 개인적으로 만난 중국인과 일본인을 통해 사해동포적 세계상을 접하기도 하였다. 이는 19세기 말 향촌 지식인이 해외 체험을 계기로 새로운 세계관과 조우하고 있는 장면이라고 할 수 있다. 개항기 조정의 요직에 있던 인물들의 세계관을 살펴보는 일이 이 시기 조선의 대외정책의 향방 및 사상적 지형을 파악하는 데 특히 중요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박상식과 같은 일반 문인이 당시의 정세에서 어떠한 인식의 변모를 보이고 있는지 검토하는 작업 역시 당대 조선인들의 전반적인 의식의 변천 과정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본고는 이러한 측면에서 『동도일사』의 가치에 주목한 것으로, 관련 분야의 사료에 대한 폭넓은 검토를 통해 본고의 분석을 보다 구체화할 필요가 있음을 밝혀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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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도일사(東渡日史)』는 1880년 제2차 수신사 김홍집이 일본에 갔을 때 향서기로 수행했던 박상식(朴祥植)이 남긴 사행기록이다. 본고는 『동도일사』의 일기 부분을 중심으로 저자 박상식...

      『동도일사(東渡日史)』는 1880년 제2차 수신사 김홍집이 일본에 갔을 때 향서기로 수행했던 박상식(朴祥植)이 남긴 사행기록이다. 본고는 『동도일사』의 일기 부분을 중심으로 저자 박상식의 일본 및 동아시아 인식의 양상을 검토함으로써 19세기 말 조선의 향촌 지식인의 세계 인식의 한 특징을 확인하고자 하였다. 『동도일사』에 나타나는 저자의 일본 및 동아시아 인식의 특징과 의의는 다음과 같다. 첫째, 일본에서 접한 서구문물에 대한 박상식의 반응은 ‘몰이해’에 가까우며, 이는 개화정책이 아직 현실화되지 않았던 1880년 당시 조선 문인들의 일반적인 인식을 반영한 것이다. 또, 박상식은 급변하는 세계정세와 러시아의 위협에 대한 일본 관료들의 주장을 과장된 것으로 치부하면서도 그에 대한 명확한 비판은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데, 이것 역시 개항과 국제관계에 대한 동시대 일반 문인들의 막연한 인식을 대표하고 있다. 둘째, 박상식은 수신사행에 참여함으로써 ‘서양(西洋)’의 존재를 비로소 인지하게 되었으며, 이는 일본에 대한 의구심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 같은 동양인으로서 친밀감을 느끼게 하는 계기로 작용했다. 그는 또한 청나라에 ‘중화(中華)’로서의 일정한 역할을 기대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그의 인식은 동아시아 세계에 대한 전통적인 화이론적 인식과 개항기의 새로운 인식이 착종되고 있었던 당시의 상황을 보여준다. 또한 박상식은 개인적으로 만난 중국인과 일본인을 통해 사해동포적 세계상을 접하기도 하였다. 이는 19세기 말 향촌 지식인이 해외 체험을 계기로 새로운 세계관과 조우하고 있는 장면이라고 할 수 있다. 개항기 조정의 요직에 있던 인물들의 세계관을 살펴보는 일이 이 시기 조선의 대외정책의 향방 및 사상적 지형을 파악하는 데 특히 중요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박상식과 같은 일반 문인이 당시의 정세에서 어떠한 인식의 변모를 보이고 있는지 검토하는 작업 역시 당대 조선인들의 전반적인 의식의 변천 과정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본고는 이러한 측면에서 『동도일사』의 가치에 주목한 것으로, 관련 분야의 사료에 대한 폭넓은 검토를 통해 본고의 분석을 보다 구체화할 필요가 있음을 밝혀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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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Tongdo ilsa (東渡日史, Record of Travels in Japan) was written by village clerk Pak Sangsik who accompanied the 1880 mission to Japan led by the envoy Kim Hongchip. This paper focuses on the journal portion of Tongdo ilsa to verify the world view of late 19th century Chosŏn provincial intellectuals through examining Pak’s perception of Japan and East Asia. The characteristics and significance of Pak’s perception of Japan and East Asia in Tongdo ilsa are as follows. First, Pak had close to ‘zero comprehension’ of the Western institutions he encountered in Japan, which reflected the general awareness of Chosŏn intellectuals as modernization reforms had not occurred. Moreover, Pak dismissed the opinion of Japanese government officials about the Russian threat and the rapidly changing world order as exaggerated. Despite not presenting a clear criticism of this opinion, this view on the opening of the ports and international relations was widespread among his contemporaries. Second, as Pak first became aware of the existence of the “West” by joining this mission, he came to feel an affinity with Japan as a fellow Asian nation despite his suspicions of them. He also expected Qing to play its presumed role as the “center of civilization,” a hodgepodge view that combined the traditional civilized/barbarian dichotomy of China and peripheral East Asian nations with that of the new awareness brought on by the opening of the ports. The Chinese and Japanese Pak personally met with also exposed him to the ideology that all men are brothers, a new world view to a late 19th century provincial intellectual brought about by overseas travel. It is true that examining the world view of those in important government posts during the open port period is quite important in understanding the directions of Chosŏn foreign policy and the intellectual landscape of this period. However, examining the changes in perception of the circumstances in normal intellectuals such as Pak is helpful for understanding the process of change in the general awareness of Chosŏn people at the time. This paper thus focused on Tongdo ilsa from this angle, and calls for a broader examination of relevant sources for a more concrete analys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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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ongdo ilsa (東渡日史, Record of Travels in Japan) was written by village clerk Pak Sangsik who accompanied the 1880 mission to Japan led by the envoy Kim Hongchip. This paper focuses on the journal portion of Tongdo ilsa to verify the world view ...

      Tongdo ilsa (東渡日史, Record of Travels in Japan) was written by village clerk Pak Sangsik who accompanied the 1880 mission to Japan led by the envoy Kim Hongchip. This paper focuses on the journal portion of Tongdo ilsa to verify the world view of late 19th century Chosŏn provincial intellectuals through examining Pak’s perception of Japan and East Asia. The characteristics and significance of Pak’s perception of Japan and East Asia in Tongdo ilsa are as follows. First, Pak had close to ‘zero comprehension’ of the Western institutions he encountered in Japan, which reflected the general awareness of Chosŏn intellectuals as modernization reforms had not occurred. Moreover, Pak dismissed the opinion of Japanese government officials about the Russian threat and the rapidly changing world order as exaggerated. Despite not presenting a clear criticism of this opinion, this view on the opening of the ports and international relations was widespread among his contemporaries. Second, as Pak first became aware of the existence of the “West” by joining this mission, he came to feel an affinity with Japan as a fellow Asian nation despite his suspicions of them. He also expected Qing to play its presumed role as the “center of civilization,” a hodgepodge view that combined the traditional civilized/barbarian dichotomy of China and peripheral East Asian nations with that of the new awareness brought on by the opening of the ports. The Chinese and Japanese Pak personally met with also exposed him to the ideology that all men are brothers, a new world view to a late 19th century provincial intellectual brought about by overseas travel. It is true that examining the world view of those in important government posts during the open port period is quite important in understanding the directions of Chosŏn foreign policy and the intellectual landscape of this period. However, examining the changes in perception of the circumstances in normal intellectuals such as Pak is helpful for understanding the process of change in the general awareness of Chosŏn people at the time. This paper thus focused on Tongdo ilsa from this angle, and calls for a broader examination of relevant sources for a more concrete analys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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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Table of Contents)

      • 국문초록
      • 1. 머리말
      • 2. 박상식의 일본 견문 및 일본 인식
      • 3. 『동도일사』에 나타나는 동아시아 인식의 양상
      • 4. 맺음말 : 박상식의 일본 및 동아시아 인식의 의의
      • 국문초록
      • 1. 머리말
      • 2. 박상식의 일본 견문 및 일본 인식
      • 3. 『동도일사』에 나타나는 동아시아 인식의 양상
      • 4. 맺음말 : 박상식의 일본 및 동아시아 인식의 의의
      • 참고문헌
      •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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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1 정응수, "조선사절이 본 메이지(明治) 일본 ― 김기수의 『일동기유』를 중심으로 ―" 한국일본문화학회 (45) : 311-328, 2010

      2 이효정, "제2차 수신사의 일본 견문 태도와 교류의 실제" 열상고전연구회 (51) : 225-250, 2016

      3 현명철, "제1차 修信使行의 외교사적 위치" 한일관계사학회 (56) : 151-184, 2017

      4 허경진, "수신사를 통해 본 개화기 한시의 위상 -제1ㆍ2차 수신사의 창수시를 중심으로-" 동북아시아문화학회 1 (1): 97-116, 2011

      5 최보영, "고종의 ‘收夷制夷’적 일본인식과 武備自强策(1876~1881)" 한국근현대사학회 (57) : 7-32, 2011

      6 "東槎漫錄"

      7 "朝鮮國修信使金道園關係集"

      8 김익수, "修信使記錄" 제주문화원 205-224, 1998

      9 김석희, "「東渡日史」 解題" 효원사학회 (6) : 1982

      10 "「東渡日史」 影印」" 효원사학회 (6) : 243-269, 1982

      1 정응수, "조선사절이 본 메이지(明治) 일본 ― 김기수의 『일동기유』를 중심으로 ―" 한국일본문화학회 (45) : 311-328, 2010

      2 이효정, "제2차 수신사의 일본 견문 태도와 교류의 실제" 열상고전연구회 (51) : 225-250, 2016

      3 현명철, "제1차 修信使行의 외교사적 위치" 한일관계사학회 (56) : 151-184, 2017

      4 허경진, "수신사를 통해 본 개화기 한시의 위상 -제1ㆍ2차 수신사의 창수시를 중심으로-" 동북아시아문화학회 1 (1): 97-116, 2011

      5 최보영, "고종의 ‘收夷制夷’적 일본인식과 武備自强策(1876~1881)" 한국근현대사학회 (57) : 7-32, 2011

      6 "東槎漫錄"

      7 "朝鮮國修信使金道園關係集"

      8 김익수, "修信使記錄" 제주문화원 205-224, 1998

      9 김석희, "「東渡日史」 解題" 효원사학회 (6) : 1982

      10 "「東渡日史」 影印」" 효원사학회 (6) : 243-269, 1982

      11 이헌주, "1880년대 초반 姜瑋의 聯美自强論" 한국근현대사학회 (39) : 7-39, 2006

      12 김동철, "1880년 제2차 修信使의 鄕書記 朴祥植의 사행일기 「東渡日史」" 한국서지학회 (51) : 387-415,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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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KCI등재
      2016-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KCI등재
      2012-01-01 평가 등재 1차 FAIL (등재유지) KCI등재
      2009-01-01 평가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KCI등재
      2008-01-01 평가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2006-01-01 평가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KCI등재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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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준연도 WOS-KCI 통합IF(2년) KCIF(2년) KCIF(3년)
      2016 0.54 0.54 0.56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0.59 0.58 0.973 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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