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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신사(修信使)에 대한 조선과 일본의 태도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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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www.riss.kr/link?id=A1022024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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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통신사 시대에는 조선과 일본 지식인들이 만나서 적극적으로 한시 창화를 하고 필담을 주고받았지만, 수신사와 조사시찰단 시대에는 그 분량이 현저하게 줄었다. 일본 문물을 시찰하러 파견되었으면 당연히 적극적으로 시찰하여 보고서를 작성하고, 필요한 인물들을 만나서 필담을 주고받으며 일본의 정보를 획득해야 했지만, 성공적인 결과물이 적었다. 사법제도를 시찰하러 파견된 엄세영(嚴世永)의 수행원 최성대(崔成大)가 일본 사법관 출신의 미시마 주슈(三島中洲)를 만나 필담한 기록을 보면 오히려 미시마 주슈가 적극적으로 필담을 주도했으며, 최성대의 질문은 사법제도 핵심에서 멀리 벗어나 있었다. 그나마 최성대는 필담초(筆談抄)를 가지고 귀국하지 않아, 필담록이 일본에 남게 되었다. 최성대는 일본인과의 필담, 더 나아가서는 개화에 관심이 없었던 것이다. 그에 비해서 일본 지식인들은 조선 통신사의 지침서였던 『일관요고(日觀要考)』를 백년이 넘게 보완해 가면서 필사하여 읽었고, 250년이나 된 권칙(權侙)의 필담도 가지고 다니며 조선 문인에게 질문하였다. 조선에 대한 그들의 정보는 통신사시대부터 계속 축적되었으며, 준비된 상태에서 수신사와 조사시찰단을 상대하였다. 보고서 작성이나 필담에 소극적이었던 조선 수행원들의 태도가 개인적인 문제인지, 아니면 적극적인 개화파 인사들을 선정하여 파견하지 않았던 조선 정부의 문제인지는 나머지 자료들을 모두 분석해보아야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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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신사 시대에는 조선과 일본 지식인들이 만나서 적극적으로 한시 창화를 하고 필담을 주고받았지만, 수신사와 조사시찰단 시대에는 그 분량이 현저하게 줄었다. 일본 문물을 시찰하러 파...

      통신사 시대에는 조선과 일본 지식인들이 만나서 적극적으로 한시 창화를 하고 필담을 주고받았지만, 수신사와 조사시찰단 시대에는 그 분량이 현저하게 줄었다. 일본 문물을 시찰하러 파견되었으면 당연히 적극적으로 시찰하여 보고서를 작성하고, 필요한 인물들을 만나서 필담을 주고받으며 일본의 정보를 획득해야 했지만, 성공적인 결과물이 적었다. 사법제도를 시찰하러 파견된 엄세영(嚴世永)의 수행원 최성대(崔成大)가 일본 사법관 출신의 미시마 주슈(三島中洲)를 만나 필담한 기록을 보면 오히려 미시마 주슈가 적극적으로 필담을 주도했으며, 최성대의 질문은 사법제도 핵심에서 멀리 벗어나 있었다. 그나마 최성대는 필담초(筆談抄)를 가지고 귀국하지 않아, 필담록이 일본에 남게 되었다. 최성대는 일본인과의 필담, 더 나아가서는 개화에 관심이 없었던 것이다. 그에 비해서 일본 지식인들은 조선 통신사의 지침서였던 『일관요고(日觀要考)』를 백년이 넘게 보완해 가면서 필사하여 읽었고, 250년이나 된 권칙(權侙)의 필담도 가지고 다니며 조선 문인에게 질문하였다. 조선에 대한 그들의 정보는 통신사시대부터 계속 축적되었으며, 준비된 상태에서 수신사와 조사시찰단을 상대하였다. 보고서 작성이나 필담에 소극적이었던 조선 수행원들의 태도가 개인적인 문제인지, 아니면 적극적인 개화파 인사들을 선정하여 파견하지 않았던 조선 정부의 문제인지는 나머지 자료들을 모두 분석해보아야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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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Before the Japan-Korea Treaty of 1876, the envoys of the Chosŏn diplomatic missions met with Japanese intellectuals and actively exchanged Classical Chinese poetry and written conversations, but these interactions reduced drastically after 1876. Although the envoys were dispatched to observe Japanese civilization and write reports, as well as meet and converse in writing with important individuals to gain information about Japan, they did not have much success. Ŏm Se-yŏng’s attendant, Ch’oe Sŏng-dae, was dispatched to Japan to observe its judicial system, and his written conversations with judge Mishima Chūshū show that it was Mishima who actively led the conversation, while Ch’oe asked questions that were irrelevant. Moreover, Ch’oe left the drafts of the conversations behind in Japan. In other words, he had no interest in communicating with Japanese, nor in Korea’s enlightenment. In contrast, Japanese intellectuals read, copied, and supplemented the manual of Chosŏn envoys, Essential Survey of Observations on Japan(Ilgwannyogo) for over one hundred years, carried Kwŏn Ch’ik’s written conversations, which were 250 years old, and asked the Chosŏn envoys questions. They continued to accumulate knowledge about Chosŏn since before 1876, and were prepared to deal with the Chosŏn envoys. Further analysis of sources needs to be conducted to accurately judge whether the passive attitude of the Chosŏn envoys in writing reports and conversations stemmed from individual issues or because the Chosŏn government failed to select and dispatch personnel who favored enlighten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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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efore the Japan-Korea Treaty of 1876, the envoys of the Chosŏn diplomatic missions met with Japanese intellectuals and actively exchanged Classical Chinese poetry and written conversations, but these interactions reduced drastically after 1876. Alth...

      Before the Japan-Korea Treaty of 1876, the envoys of the Chosŏn diplomatic missions met with Japanese intellectuals and actively exchanged Classical Chinese poetry and written conversations, but these interactions reduced drastically after 1876. Although the envoys were dispatched to observe Japanese civilization and write reports, as well as meet and converse in writing with important individuals to gain information about Japan, they did not have much success. Ŏm Se-yŏng’s attendant, Ch’oe Sŏng-dae, was dispatched to Japan to observe its judicial system, and his written conversations with judge Mishima Chūshū show that it was Mishima who actively led the conversation, while Ch’oe asked questions that were irrelevant. Moreover, Ch’oe left the drafts of the conversations behind in Japan. In other words, he had no interest in communicating with Japanese, nor in Korea’s enlightenment. In contrast, Japanese intellectuals read, copied, and supplemented the manual of Chosŏn envoys, Essential Survey of Observations on Japan(Ilgwannyogo) for over one hundred years, carried Kwŏn Ch’ik’s written conversations, which were 250 years old, and asked the Chosŏn envoys questions. They continued to accumulate knowledge about Chosŏn since before 1876, and were prepared to deal with the Chosŏn envoys. Further analysis of sources needs to be conducted to accurately judge whether the passive attitude of the Chosŏn envoys in writing reports and conversations stemmed from individual issues or because the Chosŏn government failed to select and dispatch personnel who favored enlighten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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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Table of Contents)

      • 국문초록
      • 1. 머리말
      • 2. 통신사 시대보다 일본측에서 소극적이었던 한시 창화
      • 3. 일본측에서 애독한 『일관요고(日觀要考)』와 권칙(權侙)의 필담
      • 4. 준비되지 않은 최성대 필담의 한계
      • 국문초록
      • 1. 머리말
      • 2. 통신사 시대보다 일본측에서 소극적이었던 한시 창화
      • 3. 일본측에서 애독한 『일관요고(日觀要考)』와 권칙(權侙)의 필담
      • 4. 준비되지 않은 최성대 필담의 한계
      • 5. 맺음말
      • 참고문헌
      •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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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1 이헌주, "제2차 修信使의 활동과 『朝鮮策略』의 도입" 고려사학회 (25) : 285-325, 2006

      2 허경진, "일본 시인 이시바타 사다(石幡貞)의 눈에 비친 19세기 부산의 모습" 인문과학연구소 15 (15): 49-71, 2010

      3 허경진, "수신사를 통해 본 개화기 한시의 위상 -제1ㆍ2차 수신사의 창수시를 중심으로-" 동북아시아문화학회 1 (1): 97-116, 2011

      4 허경진, "선본해제 16 -조선통신사" 국립중앙도서관 11-18, 2014

      5 河宇鳳, "개항기 수신사행에 관한 일연구" 韓日關係史學會 10 : 152-, 1999

      6 具智賢, "癸未通信使 使行文學硏究" 寶庫社 127-128, 2011

      7 구지현, "權侙 撰 『詩人要考集』의 일본 전래와 간행의 의미" 영주어문학회 18 : 61-86, 2009

      8 具智賢, "朝鮮筆談集ㆍ朝鮮三官使酬和" 寶庫社 12-, 2013

      9 南玉, "日觀記 卷8 4月 3日字"

      10 "日觀要考"

      1 이헌주, "제2차 修信使의 활동과 『朝鮮策略』의 도입" 고려사학회 (25) : 285-325, 2006

      2 허경진, "일본 시인 이시바타 사다(石幡貞)의 눈에 비친 19세기 부산의 모습" 인문과학연구소 15 (15): 49-71, 2010

      3 허경진, "수신사를 통해 본 개화기 한시의 위상 -제1ㆍ2차 수신사의 창수시를 중심으로-" 동북아시아문화학회 1 (1): 97-116, 2011

      4 허경진, "선본해제 16 -조선통신사" 국립중앙도서관 11-18, 2014

      5 河宇鳳, "개항기 수신사행에 관한 일연구" 韓日關係史學會 10 : 152-, 1999

      6 具智賢, "癸未通信使 使行文學硏究" 寶庫社 127-128, 2011

      7 구지현, "權侙 撰 『詩人要考集』의 일본 전래와 간행의 의미" 영주어문학회 18 : 61-86, 2009

      8 具智賢, "朝鮮筆談集ㆍ朝鮮三官使酬和" 寶庫社 12-, 2013

      9 南玉, "日觀記 卷8 4月 3日字"

      10 "日觀要考"

      11 金綺秀, "日東記遊 卷1, 商略"

      12 姜瑋, "姜瑋全集 下卷" 亞細亞文化社 921-922, 1978

      13 三島中洲硏究會有志, "三島中洲川北梅山崔成大筆談録" 二松 學舍大學 21세기 COE프로그램사무국 4 : 56-113, 2009

      14 구지현, "『일관요고(日觀要考)』의 형성과 일본 전래의 의미" 열상고전연구회 (44) : 143-171, 2015

      15 "『 桑韓唱和壎篪集』 卷10 「韓客筆語」"

      16 허동현, "19세기 한?일양국의 근대 서구 문물 수용 양태 비교 연구- 朝士視察團과 이와쿠라(岩倉)사절단을 중심으로 -" 동양고전학회 (24) : 257-280, 2006

      17 이효정, "1881년 조사시찰단의 필담 기록에 보이는 한일 교류의 한 양상 - 『三島中洲ㆎ川北梅山ㆎ崔成大筆談録』을 중심으로" 한국문학회 (56) : 103-128,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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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KCI등재
      2016-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KCI등재
      2012-01-01 평가 등재 1차 FAIL (등재유지) KCI등재
      2009-01-01 평가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KCI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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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준연도 WOS-KCI 통합IF(2년) KCIF(2년) KCIF(3년)
      2016 0.54 0.54 0.56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0.59 0.58 0.973 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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